나의 LT는 셰프를 꿈꾸는가 1
브랫네이트. 리버시블.
섹스 하기 좋은 아침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이렇게 모든 것이 지금은 섹스를 하기에 적당한 아침이라는 주장을 하는 데. 먼저 시간을 보자면 지금은 오전이었다. 오전. 성욕이 가장 활발한 시간. 물론 이 주관적 주장에는 미미하고도 사소한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예를 들어 AM 11:57분이라는 시간을 오전이라고 주장한다면 해병적 관점에서 나태하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문제 같은 거. 하지만 시계의 큰 바늘은 아직 12라는 숫자를 정확하게 가리키지 않았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만약 오전과 오후가 지금 시간을 두고 소유권 법정공방을 벌이면 법원이 들어줄 손이 어느 쪽이겠는가? 그러니 지금은 오전이 맞았다. 물론 시간대의 정체성에 관한 정당성을 확보했다고 모든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근본적인 문제가 존재했다.
그 문제는 바로 내가 지금 있는 장소가 전선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뿐인가? 캠프도 아닐뿐더러 본부도 아니었다. 여기는 다름아닌 네이트의 플랫이었다. 더없이 사적인 공간에서,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사적인 시간에, 심지어 네이트와 단둘뿐인데 성욕이 왕성하지 않다? 그렇다면 그것이야말로 눈썹이 빠질 정도로 서둘ㄹ- 잠깐, 눈썹은 이 문제와 상관없지 않은가. 눈썹이든 머리카락이든 죄 없는 체모를 끌어들이지 말자. 다른 의도에서 이러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만에 하나 말이 씨가 될 수도 있다는 지나친 걱정이라든가, 탈모에 신경을 쓴다든가 하는 그런 의도는 없다. 단지 제3자, 아니 제3의 사물을 끌어들이는 건 정당하지 않다는 도적적 문제일 따름이다. 아무튼 상기의 조건에서 성욕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서둘러 병원으로 달려가야 할 심각하고도 위험한 심리적, 비뇨기과적 문제였다.
이렇듯 오전이라서 성욕이 왕성하다는 내 주장에는 설득력이 모호하다는 사소한 문제가 존재했다.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주장을 반박하기엔 들고나올 수 있는 근거가 애매하다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성욕이 활발한 오전에 섹스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하다는 내 주장은 유효했다.
이렇게 시간도 성욕을 부추기는데 주변 환경도 내가 금욕이라는 문명의 위선을 뒤집어쓰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주변 꼴을 봐라. 적나라한 타락의 현장인데 어떻게 점잖은 신사인 척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현관문에서 침실에 이르는 경로는 참으로 볼만했다. 현관문은 긁혔고, 사이드 테이블은 반으로 갈라져 주저앉았다. 열쇠를 담았던 접시는 파편이 되어 바닥에 흩어졌고, 벽에 똑바로 걸린 액자가 없었다. 그리고 침실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한마디로 태풍이 난리를 친 자리 같았다. 흠. 태풍이라……. 적절한 비유로군. 웃음이 자유를 청원했고 나는 허락했다. 어제 현관문이 열리는 동시에 시작했던 섹스는 그야말로 태풍이었다. 열렬하고 거침없고 격정적이었다. 파병을 마치고 돌아온 해병이 보여줄 수 있는 정열적인 섹스의 명예의 전당에서도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기에 하등의 손색이 없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새어 나온 웃음이 그만 겸양의 미덕을 잃는데도 난 그 실수를 관대하게 포용했다. 자랑스러운 폐허를 남긴 격렬한 정사를 곱씹으면서 히죽거리지 말라는 것이야말로 잔인한 처사였으니까.
그렇게 실실 웃으며 영광의 자취를 감상하는데, 침실문 옆쪽 구석에 떨어져 유리가 박살난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 얼굴에 떠오른 웃음이 배부른 수컷의 웃음에서 정적에게 누명을 씌워 모함에 성공한 음흉한 모사꾼의 웃음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얼른 표정을 지웠다.
글쎄. 물론 방심은 위험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내가 히죽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폭소를 터뜨린다고 네이트가 수상쩍은 낌새를 채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예리한, 아니 예리한 건 바라지도 않는다, 가까스로 평균에 미치기라도 하는 눈치와 네이트의 관계는 명석한 상황판단력과 엔시노맨의 관계보다 서로 배척하는 사이였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네이트가 둔하다는 말로는 지나온, 여전한, 그리고 계속될, 내가 겪고, 겪는, 겪을 시련을 설명하기엔 부족해도 한참 부족할 정도로 눈치가 없다지만 나서서 빌미를 제공할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나는 저 액자는 어디까지나 의도하지 않은 사고로 깨졌다는 입장을 고수해야 했다.
내 변명, 아니 입장을 정리하자면 이랬다. 어제 제대로 움직이려면 발목에서 거치적거리는 바지와 속옷을 벗어야 했습니다. 그러자면 당신도 아시지 않습니까, 빌어먹을 군화부터 벗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지만 전 그때 완전히 불이 붙어서 당신에게서 잠시라도 입술을 떼고 싶지 않았습니다. 설마 그 불이 나한테만 붙었다고 책임을 떠넘기시진 않으시리라고 믿습니다. 짐승이었던 건 당신이나 나나 피장파장이었어. 그래서 한 손으로 벽을 짚고, 다른 손으로 군화와 옷을 벗어 던졌습니다. 예? 던지는 게 좀 수상했다고요? 던질 때 좀 지나치게 힘을 실어 던졌다고요? 마치 무언가에 대비하듯, 예를 들어 아직 발생하진 않았지만 확실하게 발생할 유리파편 같은 것에 대비하듯 옷이랑 신발을 멀리 던진 것 같다고요?(……아무리 상상이지만 상상력이 지나치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네이트에겐 이런 눈치가 없다) 이런, 맙소사. 네이트. 하버드가 무섭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설마 전 해병장교를 예민한 겁쟁이로 만들 정도로 무시무시한 괴물일 줄은 몰랐습니다. 논문 때문에 신경이 너무 예민해지신 거 아닙니까? 지나친 생각입니다. 전 그런 적 없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제가 어제 침착하고 부드러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씨발, 그 똥통 속에서 전 오직 어제 그 순간만을 바라고 꿈꾸고 기대하며 버텨냈단 말입니다. 그리고 저만 급했습니까? 당신도 존나 보채지 않았습니까. 허리에 난 이 할퀸 자국을 보십쇼. 이대로 복귀해서 사람이 아니라 호랑이랑 뒹굴다 왔다고 해도 애새끼들은 믿을 겁니다. 그렇게 정신이 없었는데 실수로 액자를 쳐서 떨어뜨린 게 그렇게나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필이면 그 떨어져 깨진 액자가 왜 평소 제가 꼴 보기 싫어하던 액자냐고요? 글쎄요. 아마 정의의 신이 살아있나 보죠.
음. 완벽하군. 반박의 여지가 없어. 이대로 밀고 나가자.
…….
존나 밟아댔는데 설마 사진이 무사하지는 않겠지? 혹시 모르니까 내가 치운다고 하고 확실하게 처리하자. 씨발, 그러게 패터슨 그 양반은 왜 소속중대도 다른 장교랑 단 둘이 사진을 찍고 지랄이야, 지랄이! 네이트 컴퓨터에서 사진 파일은 싹 지웠으니 저거만 치우면 이제 저 눈꼴신 사진이 두 번 다시 벽에 걸리지는 않겠지.
속이 후련해져서 시선을 옆으로 옮기자 밀려서 접힌 러그와 군복상의, PT셔츠, T셔츠, 그리고 드로즈와 같이 뭉쳐 나뒹구는 면바지가 보였다. 자기 파편이랑 거스러미가 꽤 튀었는데. 음. 옷에 박힌 거스러미는 아무리 깨끗하게 제거해도 복병이 섬유 사이에 잠복했다 나중에 피부를 찌르기 때문에 성가셨다. 지금이야 내가 털어준다고 해도 나중에 가시가 튀어나와 찌르면 네이트가 옷을 뒤집어서 꼼꼼하게 찾아서 뺄까? ……퍽이나. 레이가 침묵의 서원을 지키면 지켰지 네이트가 그럴 리가. 네이트 옷은 그냥 버려야겠다. 그리고 이따 사이트 테이블을 살 때 철제로 사는 거 잊지 말자. 전 해병의 체중과 현 해병의 욕망을 버티기에 다리가 길고 가느다란 나무 테이블은 약해도 터무니없이 약했다.
마지막으로 시선이 현관문에 닿았다. 나무문에 난 얇게 긁어 내린 다섯 줄. 아랫배가 확 조이며 뜨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