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LT는 셰프를 꿈꾸는가 4
브랫네이트 네이트브랫 리버시블
큼직큼직하게 썬 양배추와 샐러리. 통마늘과 감자, 그리고 그 사이를 떠다니는 마늘 껍질과 감자 껍질. 스튜의 참상은 그러지 않아줬으면 하는 부분에서마저도 대범한 네이트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마늘 껍질과 감자 껍질, 희게 익어 부서진 생선 눈깔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2주 전 사건이 떠올랐다. 반정부군이 점령한 도시를 가로지르며 대응사격을 하던 중 밖에서 날아온 무언가가 다리 사이로 떨어져 확인해보니 RPG포탄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네이트가 떠오르고 지금까지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쳤지만 손은 기계적으로 포탄을 들어 험비 밖으로 던졌고, 아마 불량품이었던 듯 그 RPG포탄은 몇 초 후에나 폭발했었다. 숨도 쉬지 못하고 얼어붙었던 레이는 폭발음을 듣고서야 긴장이 풀려 과연 아이스맨은 해병이 자랑하는 전설이라 좆에서 폭탄을 낳아 적을 박살낸다고 떠벌거렸다. 그리고 그 며칠 후엔 도시 순찰을 돌았는데 적의 공격으로 건물이 무너져 도로를 막는 바람에 우리 분대가 고립된 적도 있었다. 지원부대가 바로 오지 않았다면 생포되든, 사살되든 끔찍한 꼴을 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크고 작은 위기가 꽤 있었다. 그 고비들을 넘기고 지금 난 이 앞에 있었다. 위험한 사선을 넘어 이제는 영혼을 파괴할 것 같은 스튜 앞에 선 나 새끼야. 너 새끼 팔자는 왜 이 꼬라지인지 모르겠구나.
고체 요리도 아니고 국물 요리인데, 액체 밀도에 따른 척력 실험도 아닌 한꺼번에 섞어서 끓이는 스튜인데 갈색, 녹색, 회색의 액체가 서로 섞이지 않고 마블링효과를 내며 기괴한 악취를 뿜는 꼴을 보니, 뭘 어떻게 만들어야 이런 스튜를 끓일 수 있나 싶었고, 긴장이 풀려도 뭘 어떻게 풀려야 이런 가공할 무기가 제작될 동안 처자빠져 잘 수 있는지 나 스스로가 한심하기도 했다. 어쩌면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숙명이여, 잔인한 세 여신이여, 조롱하거라 구경꾼들이여, 성큼성큼 다가오는 절망 앞에서 깊이 잠들었던 나의 어리석음을.
어쩌자고 처자빠져 잤을까? 이렇게 되리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으면서 나는 뭘 믿고 고꾸라질 때까지 떡을 치고 그냥 쿨쿨 처잤을까? 침통함에 젖어 스튜를 바라보는 내 눈에 정어리 대가리가 보였다. 꼬리도. 부서진 몸통도. 그리고 그 틈새로 새어 나온 내장도. 구성요소가 하나도 빠지지 않은 내장도!
"내장 손질을 하지 않으셨군요."
실룩거리려는 입술을 가까스로 누른 채 입을 열자 네이트는 이 말을 기다렸다는 듯 눈을 빛내며 냉큼 대답했다.
"응. 그런데 브랫, 그거 알아? 생선 내장도 먹을 수 있대."
도대체 어디서 그런 쓰잘데기 없는 개소리를 듣고 이런 짓을 저지르신 겁니까!라는 말이 혀끝까지 내달렸지만 용케 삼키고, 나는 처음 듣는 소리라는 표정을 하며 뿌듯함에 가득 찬 네이트를 마주보았다. 먹을 수 있다는 대전제만 기억하고 실용화할 때 가장 중요한 디테일은 기억에서 지우고 이런 대참사를 일으킨 주제에 내게 요리의 팁을 알려줬다고 자랑스러워하는 그 표정을 그저 마주보며 웃었다.
생선 내장을 먹으려면 먹을 순 있었다. 물론 탈수로 죽기 싫어서 코끼리 똥도 퍼먹을 수 있으니, 인간이 먹으려고 작정하면 먹을 수 없는 것이 거의 없기는 했다. 하지만 내 말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극단적인 선택으로서의 섭취가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식생활에서의 별미를 말하는 거였다. 막 잡아 펄떡거리는 생선에서 꺼낸 내장을 깨끗하게 손질해 소금에 절이거나, 향신료를 섞어 소스로 만들면 독특한 맛을 즐길 수 있었다. 살자고 삼키는 게 아니라 음미하며 즐길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손질하지도 않고, 하다못해 구이도 아닌 이런 국물 요리에, 비린내를 잡아줄 재료는 넣지 않고 이렇게 토막을 내 끓여버리면… 지저스 크라이스트.
보면 볼수록 숨도 쉬지 않고 삼킨 다음 얼른 떡을 쳐서 네이트를 재운 후, 이 끔찍한 것을 치우자는 결심이 흔들렸다. 그냥 말할까? 생선으로 이렇게 음식을 만들면 안 된다고 말해버릴까? 사람이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었고, 네이트는 본인의 단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말하면 인정할 것이고 고칠 것이다. 그러면 음식이라고 부르면 음식에 대한 모욕이 되는 이 끔찍한 정신 공격 무기는 제거될 것이고, 앞으로 생선 창자를 그냥 끓인 국물이 식탁에 오르는 참사는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뜨뜻한 김과 함께 비린내가 올라왔고, 결심을 한 나는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그렇습니까? 몰랐습니다."
"그렇대."
이상형의 연인을 만나 사귀면서, 기대감으로 가득 찬 얼굴에 혹해 양심선언을 얼버무린 적이 없는 자, 내게 돌을 던져라.
그리고 자랑스럽게 웃으며 눈을 빛내는 네이트가 귀엽기는 했지만, 설령 그러지 않았더라도 내 입은 결코 진실을 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럴 수 있을 리가. 이렇게 내가 진실 폭로를 저어하는 이유는 이 스튜는 이미 창자의 맛 정도에 좌우되는 차원의 맛이 아니리라는 사실을 쉬이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요, 이번에 문제점 하나를 치우면 다음엔 더 기상천외한 문제를 끌고오리라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이미 알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 인간을 모를까? 내장을 제거하라고 하면 없앤 만큼 영양을 보충한답시고 생선을 우유에 넣고 끓일 인간이 바로 이 인간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지옥 대신 알고 확인한 시련을 계속 감당하는 게 낫지.
"아, 그리고 그동안 MRE를 먹느라 염분을 과다 섭취했지? 그래서 소금은 넣지 않았어."
……
"그렇...습니까. 어떤 맛일지 기대되는군요."
속없는 호구 새끼라고 너무 뭐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요틴의 칼날을 보며 가슴을 벌렁거리는 사형수의 심정을 기대라고 우긴다면 내 마음속에서 요동치는 이 감정도 기대라면 기대 아니겠나. 그건 그렇고 비린내가 작렬하는 생선 스튜에 생강도, 후추도, 허브도, 냄새를 잡아줄 그 어떤 향신료도 넣지 않았는데 설상가상으로 소금까지 넣지 않았다. 괜찮다. 수많은 경험은 나를 강하게 만들어주었고, 비장의 무기도 알려주었으니까.
"네이트, 할라피뇨 좀 주십쇼"
"맞다, 그걸 잊었군. 잠깐 기다려."
자리에서 일어난 네이트가 냉장고로 갔다. 네이트가 오기 전에 이 말을 먼저 해야할 것 같다. 네이트는 나와
할라피뇨에 어떤 편견이 있는데, 그걸 설명하자면 그때 이야기를 해야 한다.
무아파키아.
아직도 가끔 악몽으로 꾸는 그날 밤의 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