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ration Kill/꽃 중위님 시리즈
중위님 중위님 꽃같은 우리들의 중위님 18
소심늘보
2013. 1. 1. 23:11
* 다정하게 불러주세요. (2/?)
*거친 언어 주의
아주 사소한 무언가에 신경쓰기 시작한다는 것은 신발 속을 굴러다니는 작은 돌 조각 한 알갱이를 깨닫는 것과 같았다. 처음엔 누구나 그 돌 조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 돌 알갱이는 단단했지만, 거의 모래만큼이나 작았고, 또 날카롭기는 했지만 피부를 뚫고 상처를 낼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신발을 이리저리 기울여가며 돌 조각을 발이 닿지 않는 구석으로 적당히 치우려 한다.
하지만 그 작은 돌 조각은 결코 얌전히 뜻에 따라주지 않고, 끊임없이 신경을 긁는다. 아무리 신발을 흔들고 기울여보아도, 잊을만하면 툭 튀어나와 발바닥을 찌르고, 그러다 결국 가장 연약한 살 밑에 자리를 잡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뾰족한 모서리로 피부를 쿡쿡 찌르며 신경을 갉작갉작 긁는다. 그래서 신발에 돌 조각이 들어간 사람은 신발을 벗고 거꾸로 흔들어 그 망할 조각을 털어내기 전까지는 결코 편할 수가 없다.
로버트 티모시 브라이언. 브라보 중대 2소대의 쿨하고 시니컬하며 언어를 독설로 무장한 위생병. 남들이 뭐라고 하든 가운데손가락을 세우며 자신의 길을 당당하게 걷는 사나이 중의 사나이는 지금 그 작은 돌 조각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현재 브라보 2소대는 행군을 멈추고 작은 부락어귀에서 다음 명령을 기다리며 대기 중이었다. 먼저 부락을 수색해 무장세력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소대원들은 얼마나 이어질지 모르는 그 막간의 시간을 이용해 각자 긴장을 풀었다. 먼저 스스로를 가꾸는데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는 루디는 옷을 훌렁 벗고, 건조해진 피부에 로션을 꼼꼼하게 발랐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소대원들은 소대 공인 호모바리스타의 쏘게이스러움을 주제로 열변을 토했다. 그리고 전투식량을 낭비하는 최악의 케이스로 지탄받아 마땅한 레이는 끔찍한 결과만 내놓는 전투식량 쿠키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레시피 아이디어 회의에 종군기자를 강제로 끌어들여 머리를 맞대고 끙끙거렸고, 트럼블리는 험비 안에서 오늘도 사람을 쏘지 못했다고 툴툴거리며 자신의 총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월트는 Mk19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몇 번이나 확인한 후, 소대장이 준 윤활유가 무슨 신주단지라도 되는 듯, 뚜껑에 입김을 불어 소매로 닦고, 그러다 뚜껑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하다 싱글싱글 웃었다. 저러다 아예 입 속에 넣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부르는 모습이었다. 소대장인 네이트 픽 중위는 험비 대열 사이를 다니며 소대원들에게 이상이 없는지 확인했고, 브랫은 사막의 태양보다 더 이글거리는 눈으로 소대장의 모든 움직임을 쫓았다. 저 정도면 병이지. 아이스맨이라는 별명이 아깝다고 혀를 차며 고개를 젓던 브라이언의 눈에 네이트가 웃는 모습이 들어왔다.
매니멀과 샤핀이 지나가는 소대장을 잡았다. 나란히 흙 바닥에 앉아 군화를 벗고 볕에 소독하던 무좀이 난 발을 까딱거리며 뭐라고 했는데, 소대장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다가 입 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었다. 그 반응에 신이 난 두 소대원은 손짓까지 동원하며 뭔가를 장황하게 말했고, 네이트는 어깨까지 들썩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두 사람에게 몇 마디 대꾸한 네이트가 고개를 저으며 걸음을 돌렸고, 매니멀과 샤핀은 소대장을 웃긴 자신들이 자랑스럽다는 듯 서로 손바닥을 부딪쳤다. 그 모습을 보며 브라이언은 문득 생각했다. 소대장이 날 보고 웃은 적이 있었던가? 바로 다음 순간, 그 따위 게이스러운 생각을 떠올린 스스로에게 브라이언은 치를 떨었고, 공교롭게도 그런 위생병과 눈이 마주친 젊은 중위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닥, 내게 할 말이 있나?”
소대장의 심각한 얼굴을 보는 브라이언의 마음에서 두 가지 생각이 격렬한 전투를 시작했다. 하나는 ‘소대장은 내게 웃은 적이 없어. 한 번도!’라는 브라이언이 용납할 수 없는 치 떨리는 생각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게 무슨 상관인데! 너 게이냐!’라는, 브라이언이 적극적으로 편을 들고 싶은 생각이었다. 침묵하는 브라이언을 응시하는 네이트의 얼굴이 더 굳었고, 브라이언의 마음속에서는 첫 번째 생각이 승기를 잡으며 절망이 포문을 열고 쏟아졌다. 그리고 브라이언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줄 몰랐던 게이스러움에 당황하면서도 필사적으로 내색하지 않으며, 평소와 똑 같은 말투로 대꾸했다.
“아닙니다, 중위님.”
말투에 문제가 있었는지, 표정에 문제가 있었는지, 네이트는 잠깐 미간을 찡그리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휘차량으로 향했다. 그리고 브라이언은 소대장의 찡그린 얼굴과 자신의 말투와 표정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 고찰하기 시작한 스스로에게 좌절했고, 좌절했다는 사실에 다시 좌절했다. 그리고 레이의 말대로 소대원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초개처럼 던질 소대장이 자신만 이름으로도, 성으로도 부르지 않는 것으로도 모자라 한 번도 웃어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신경쓰기 시작한 게이스러움에 다시 좌절했다. 그리고 이 소름끼치는 생각의 씨앗을 뿌린 원흉을 욕했다.
“빌어먹을. 레이 그 미친 새끼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야.”
“닥, 뭔지 모르겠지만, 현재 닥이 처한 상황은 이 진실한 레이레이 때문이 아니라, 평소 닥의 좆 같은 싸가지가 그런 업보를 부른 거지 말입니다?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하라던데, 성질머리가 존나 꼬였어도 책임소재는 분명히 해주셨으면 하지 말입니다.”
“씨발, 깜짝이야.”
누군가 바로 옆에 왔는 줄도 모르고 넋을 놓고 있었다는 사실을 들키기 싫어서, 브라이언은 괜히 성질을 냈다. 하지만 레이는 그런 얄팍한 속임수로 얼버무리려는 시도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듯,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히죽거리며 브라이언의 속을 긁었다. 잠깐 브라이언에게서 지휘차량으로 시선을 옮겼던 레이가 다시 브라이언을 응시했다. 그리고 그때 브라이언은 눈을 반짝거리는 레이에게서 평소 꼭 닫아두던 드레스룸의 방문을 열어두고 주인이 외출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비글의 표정을 보았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아주.
“지금 내 머릿속에 존나 신박한 생각이 스쳤는데 말입니다. 닥의 연애인생은 존나 암담하고 답이 없었을 것 같지 말입니다? 난 존나 내 피 같은 딸기 밀크셰이크도 걸 수 있어.”
바람둥이까지는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여자에게 아쉬웠던 적이 없고, 또 그 어떤 미인에게도 호구 노릇은 하지 않았다고 자신하는 브라이언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걸 본 레이는 고개를 살살 저었다.
“존나 빡세다는 의대에 들어가면 뭘 해? 이렇게 좆같이 둔해 처먹어서 말귀를 못 알아듣는데.”
“네놈 새끼가 오늘 뒤지고 싶어서 환장한 모양이구나.”
브라이언이 싸늘하게 웃었지만 레이는 꿈쩍하지 않았다.
“이봐요, 브라이언. 몇 명을 사귀었냐, 그런 문제가 아니라니까요? 요점은 누굴 사귀든, 얼마나 깊게, 그러니까, 그래, 얼마나 영혼이 충만하게 사귀었느냐가 문제라니까? 화끈하게 땀을 쭉쭉 빼면서 침대에서 뒹군 것만큼이나, 영혼도 찰랑찰랑 꽉꽉 채우는 게 진짜 연애지. 말해봐요, 닥 취향은 말랑말랑하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존나 깜찍한 여자가 아니라, 재수없을 정도로 똑 부러지고, 찬바람이 쌩쌩 불 정도로 존나 독립적이고, 있는 정도 똑똑 떨어질 정도로 까칠한 여자죠? 사내 새끼든, 계집년이든 나이를 존나 처먹었으면, 자기 앞가림은 자기가 해야 한다고 골라도 그런 여자들만 골랐을 거야.”
사실이 그러했으므로 브라이언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묻겠는데 말이죠, 그 여자들이 찢어지면서 혹시 브라이언한테 존나 그렇게 정나미 똑똑 떨어지는 관계를 원한다면 차라리 잘 빠진 마네킹이나 끼고 살라며 가운데손가락을 세우지 않았는지 말입니다?”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른 브라이언이 입술을 실룩거렸고, 레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것 봐. 그러니까 우리 중위님이 닥한테 저러시지. 혹시 알아? 우리 중위님 마음속 카테고리엔 자기가 되게 쿨하고 시니컬하며 남자 중의 남자라고 생각하는 닥이 캡틴 아메리카랑 같은 부류로 분류되어 있는지?”
하마터면 브라이언은 엄청난 폭탄발언을 하는 레이의 얼굴에 주먹을 날릴 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