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ration Kill/꽃 중위님 시리즈
중위님 중위님 꽃같은 우리들의 중위님 3
소심늘보
2012. 11. 23. 13:43
※ 거친 언어 주의
* 당신의 입술이 너무 섹시한 탓 (3/4)
“존나 꼴려서 확 따먹-“
마침내 포크가 재앙의 진원지를 틀어막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등골은 이미 서늘해진 뒤였다. 사막의 밤은 아직 이건만. 그리고 시간의 흐름도 느려졌다.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에스페라, 브라이언, 패트릭, 로벨은 서서 눈을 뜨고 자는 기술을 발휘하는 브랫을 향해 한마음 한뜻으로 영혼의 절규를 외쳤다.
-전우여! 자네가 이런 똥 폭탄을 터뜨릴 줄은 몰랐네. 다름 아닌 자네가. 바로 자네가!
성정이 거칠기로 유명한 해병 수색대는 입이 거칠기로도 악명이 높았다. 전우는 물론이고 그 어머니까지 매춘부로 만드는 대화가 일상다반사였다. 노골적인 인종차별과 성차별 발언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여기에 비하면 전성기 때의 디트로이트 랩 배틀은 상류층의 고상하고 우아하며 가식적인 대화나 다름없었다. 애국심 때문에, 혹은 감옥에 가기 싫어서 해병대에 입대한 사람들이 여기에서 버티려면 한 귀로 흘려 듣거나 ‘우리 엄만 그래도 돈이라도 벌지, 너네 엄만 쉬어빠져서 돈까지 얹는데도 다들 도망가잖냐.’ 이런 대화를 날씨 이야기 하듯 주고받을 수 있어야 했다.
그리고 전쟁이란 그렇지 않아도 사람을 미치게 했다. 그런데 상부에선 생각을 머리로 하는지 아니면 엉덩이로 하는지 수색대가 혹독하게 받았던 훈련과 아무 관련도 없는 작전에 투입했다. 생소한 작전 수행에 적응할 훈련 시간도 제대로 주지 않고. 게다가 내려오는 작전 꼴을 보면 여섯 살 이상의 머리에서 나왔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하긴, 정찰도 생략하고 기갑전차로 무장한 비행장 공격에 험비로만 무장한 중대를 투입하지 않나, 집중포화 지역에 부대를 정지시킨 미친 짓을 적의 허를 찌른 용감한 작전이었다고 추켜세우지를 않나, 캠코더로 전쟁 영상을 찍어 방송국에 팔아먹으려고 야간투시경에 쓸 건전지를 빼돌리질 않나, 포격지점 600미터 안에 있으면 위험하다는 덴저 클로스를 몰라 자기 부대에서 200미터 떨어진 지점에 포격요청을 하질 않나, 탱크부대 이동과 마을 불빛을 구분하지 못하고 그나마 거리 계산도 서툴러 사막에 폭탄 11,000파운드를 퍼부어 모래를 대량학살 하지를 않나, 정상인이라면 작정하고 멍청해지려 해도 그 정도까지 멍청해지기 어려운 머리들인데 정상을 기대하는 게 무리지.
당연히 불만이 팽배해졌다.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터질지는 모르지만 왜 터질지는 모두 알았다. 그리고 브라보2 소대원들은 물의를 일으킬 강력한 후보로 장교 혐오증이 점점 심각해진 나머지 위로도 치이고 옆으로도 치이는 가엾은 픽 중위를 가끔 아래에서도 쳐 소대원들의 핀잔을 사는 의무병 브라이언과 머리가 말의 구절과 구절 사이에 합리적인 연결고리를 맺기엔 혓바닥 속도가 너무 빠른 레이 퍼슨 상병을 꼽았다. 그리고 그 대상은 툭하면 나이도, 계급도 아래인 픽 중위에게 들러붙어 징징거리는 캡틴 아메리카나 주름 하나 없이 매끈한 두뇌 표면의 소유자 엔시노맨을 예상했다. 설마 브라보2 소대에서 픽 중위에게 그것도 성적 모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망언을 뱉는 미친놈이 나오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브라보2 소대는 혹독한 훈련을 견뎌낸 해병 수색대답게 갓파더 대대에서 가장 거친 부대였고, 대원들은 그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며 그 어떤 장교 앞에서도 입에 문 걸레를 놓지 않는 기개를 드높였다. 그리고 이들이 픽 중위 앞에서라고 해서 특별히 에티켓 스쿨에 다니는 숙녀처럼 얌전하게 말하는 건 아니었다. 의사 전달의 시작과 진행, 끝맺음에 거친 욕을 양념으로 듬뿍 쳤지만, 그 욕의 대상이 소대장을 가리킨 적은 없었다. 병신 같은 작전, 병신 같은 대대장, 병신 같은 중대장이라는 욕이 입에 인이 박였지만, 이들에게 픽 중위는 어디까지나 중위님이었다. 사병들이 장교들에게 멸시와 조롱, 혹은 애정을 담아 붙이고는 하는 별명도 픽 중위에게는 붙이지 않았다. 유능하고 부하를 아끼는 네이트 픽을 소대원들이 부르는 호칭은 오직 중위님이었다. 그만큼 브라보2 소대원들은 소대장을 아끼고 존경했다. 아무도 우리 중위님을 모욕하면 안 된다. 앞에서든, 뒤에서든, 우리든, 남이든. 그런데 그 불문율을 콜버트가 깼다. 소대장 앞에서는 냉정은커녕 플러피맨(Fluffy Man)이 되는 아이스맨이.
나다니엘 C 픽. 약칭 네이트. 조부와 부친에 이어 3대째 군 복무 중. 볼티모어의 부유한 집안 출신. 명문 고교를 거쳐 아이비리그에 진학하고, 입학한 다트머스 대학에 ROTC가 없어 방학 때마다 OCS(officer candidate school) 훈련을 받고, 졸업과 동시에 해병대 소위로 임관한 엘리트. 이라크 참전은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두 번째인 중위. 사병들의 음담패설에 눈 하나 깜박하기는커녕 본인부터 입에 쌍시옷을 달고 다니는 장교. 젊은 나이, 능력, 학력, 집안, 참전 경험 등으로 사회에 복귀하면 고속 출세 탄탄대로가 보장되겠지만, 현재는 무모하고 무능한 상관과 동료에 치여 인생의 회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경험 중인 25세의 청년은 지금 혼란스러웠다. 이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네이트는 규율에 빡빡하지 않았다. 그래서 부하들이 사소한 규율위반을 했을 때는 자기 선에서 덮어주기도 했다. 마틸타 캠프에서 레이가 막사 내에서 화기사용을 금지하는 규율을 어기고 얼굴에 화상까지 입었을 때, 중대장의 보고를 받고 추궁하는 대대장에게 규정대로 막사 밖에서 사용하다 일어난 사고였다고 능청을 떨었다. 회의용 막사를 나온 후 마이크 윈 중사는 대대장에게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태연하게 거짓말을 한 소대장의 행동에 배를 잡고 굴렀다.
소대원들을 너무 격의 없이 대해서 기강이 무너진 건가? 거리 조절 문제라면 차라리 나았다. 다시 조이면 되니까. 하지만 문제는 브랫의 저 행동이 보이콧일 경우였다. 지휘부의 계속되는 삽질에 결국 인내심이 끊긴 콜버트 병장이 네이트도 장교라며 배척하려는 경우라면 어쩌지? 네이트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임기에 따라 이동하는 장교와는 달리 운명공동체인 분대원과 소대원들의 유대는 각별했다. 그러니 소대 분위기를 주도하는 콜버트가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지휘체계가 무너져 분위기가 엉망이 된다. 맥그로우 대위의 지시를 대놓고 무시하는 3소대를 떠올리니 정신이 아찔했다.
아, 망했구나. 지금부터는 병신 같은 상관만이 아니라 반항하는 부하들 장악에도 골머리를 썩여야겠구나. 네이트는 울고 싶었다. 물론 이해는 한다. 지금까지 대대장과 중대장이 저지른 머저리 짓을 생각하면 자신 역시 지휘부에 신물이 났다. 머리로는 이해하고도 남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브랫과의 사이가 꽤 좋았다고 여겼던 터라 네이트는 배신감까지 들었다. 암살단에서 브루투스를 본 카이사르의 심정이 이랬겠지? 어쩐지 눈가가 뜨거워졌다. 네이트는 입술을 깨물며, 키가 장대 같은 병장을 노려보았다.
-브랫. 너마저!
포크는 패트릭과 로벨이 하얀 손목을 세게 틀어쥔 커다란 손아귀를 간신히 풀어내는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
“중위님.”
……입을 열기는 열었는데 뭐라고 해야 하지? 이 어색하고 불편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돌리려면 무슨 말을 끄집어내야 하나? 레이라도 호출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포크는 고개를 들어 중위를 마주 봤다. 그리고 맹렬한 욕망에 휩싸였다.
‘마음껏 조지십쇼! 이 새끼 묻을 구덩이는 제가 파겠습니다!’
이렇게 우렁차게 외치고 싶은 불같은 욕망에. 맙소사. 소대장의 눈가가 빨갰다. 게다가 눈이 그렁그렁했다. 옆 소대 소대장이 전리품 챙길 때 경험이 부족한 어린 소대원들 현장훈련을 시키고, 위기 상황에서 옆 소대 소대장이 발작을 일으킬 때 침착하게 소대를 지휘하고, 병신 같은 엔시노맨의 머저리 짓을 제 한 몸을 방패로 삼아 막아내던 우리 소대장님이 머저리 같은 부하의 배신에 상처를 받으신 것이다! 포크의 마음속에서 전우를 향한 적개심이 활활 타올랐다. 하지만 막상 1분대 부분대장의 입을 뚫고 나온 말은 전혀 다른 말이었다.
“중위님. 이 새끼가 거의 40시간째 잠을 처자지 못했습니다. 레이 새끼는 약 처먹고 옆에서 계속 나불거렸고요. 그래서 결국 이 새끼도 핀트가 나가서 눈뜨고 잠들었나 봅니다.”
다이어트 약을 먹고 기분이 고양된 레이는 심할 때는 10초에 50마디 이상을 떠벌리기도 했다. 그런데 그 옆에서 40시간 동안 잠도 못 자고 붙어있어야 한다? 아무리 혹독한 훈련을 거친 수색대라도 눈뜨고 잠들기라는 생존기술을 익히게 마련이다. 그럴싸한 핑계였다. 포크는 마음속에서 자신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사실 포크는 정말로 중위가 브랫을 처리할 동안 그 옆에서 구덩이를 파고 싶었지만,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지휘하는 소대장 밑에 있다 보니 감정 발산보다는 문제 해결을 우선시하는 점을 싫어도 배우게 된다. 포크는 망할 주둥이를 틀어쥔 손에 감정과 함께 힘을 실었고, 소대장을 향해서는 입꼬리를 끌어올려 보였다.
네이트는 브랫이 멍한 눈이나마 뜨기는 떴지만, 점점 심하게 앞뒤로 흔들리는 몸을 제어하지 못하는 모습을 올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분대장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조금 전 전달했다시피 야습만 없다면 휴식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현재 한계를 넘긴 대원들은 3교대로 배치해 충분히 재우도록. 우린 해병 수색대다. 제군들 모두 자부심을 느끼는 걸 알아. 하지만 우리에게도 한계점은 있다. 우리가 받았던 훈련을 한계점을 높이는 훈련이지 없애는 훈련이 아니야. 그러니 한계를 인정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모두 한계를 넘기기 전 휴식을 취하도록. 우린 전쟁터에 있다. 순간의 방심이 나뿐만이 아니라 동료의 생명과도 직결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도록, 이상.”
말을 마친 픽 중위는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언제나처럼 침착하고 단호한 모습으로. 하지만 축 처진 어깨에선 숨기지 못한 시무룩한 기색이 묻어났다.
중위의 곁을 지키는 윈 중사가 문득 뒤를 돌아봤다. 그 눈빛은 사막에 내려앉기 시작하는 어둠에도 불구하고 확연하게 살벌했다. 이제 눈을 감고 몸을 앞뒤로 흔드는 브랫을 보는 분대장들의 눈빛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스름한 어두움이 내려앉는 사막의 초저녁. 열 받은 해병들의 입에서 걸쭉한 욕설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