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ration Kill/꽃 중위님 시리즈
중위님 중위님 꽃같은 우리들의 중위님 9
소심늘보
2012. 12. 11. 21:30
* 막둥이랑 중위님이 수상해 5
*거친 언어 주의
2003년 4월 9일.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가 함락되었다. 하지만 후세인은 도피했고, 이라크인은 항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권이 몰락하며 시아파와 수니파의 종파분쟁과 보복살인이 횡행했고, 치안이 무너진 바그다드는 혼란에 휩싸였다. 도심의 곳곳에서 총성과 폭발음이 울렸다. 브라보 중대가 거점기지로 쓰는 담배공장 안으로도 총탄이 심심찮게 날아들었다. 그래서 점령한 도시 안에서 미군은 여전히 철모와 방탄장비를 벗을 수 없었다. 브랫은 생각했다. 이 무거운 군장을 벗으면 마음도 좀 가벼워지려나? 머리 위의 태양이 뉘엿뉘엿 서편으로 기울었다.
현재 브랫의 심기는 불편했다. 매우 불편했다. 지금 이 상황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왜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잘 알 수 없어 기분이 더 나빴다. 정말 레이의 말대로 픽 중위와 함께하는 시간이 사라져 이렇게 기분이 나쁜가? 확실히 네이트와 같이 있는 시간은 기분이 좋았다. 그건 사실이었다. 네이트 픽은 갓파더 대대 내에서 몇 안 되는 제대로 된 장교였고, 또 가장 훌륭한 소대장이니까. 하지만 소대원이 소대장과 함께하는 시간을 빼앗겼다고 이렇게 온몸의 털이 곤두설 정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건 결코 정상이 아니었다.
브랫은 자신이 독점욕이 강하다거나, 누군가에게 집착하는 성격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중학교 때부터 사귄 약혼녀가 역시 중학교 때부터 친했던 가장 친한 친구와 결혼을 했는데도 여전히 그들과 가깝게 지낼 수는 없을 테니까. 브랫은 여전히 그 부부의 친한 친구였다. 아직까지 종종 방문했고, 함께 휴가도 보냈다. 서핑, 수상스키 등 그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여전히 즐거웠다. 남들이 아무리 이상하게 본다 해도, 이왕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었고,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 계산하는 것은 브랫의 본능이었다. 게다가 브랫은 그녀의 처지를 이해했다. 그래서 마음에 남는 앙금도 없었다.
브랫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해병대에 입대했다. 전선의 최전방에 서는 수색대는 가정적인 남자가 되기 어려운 직업이었고, 화목한 가정을 꿈꾸던 약혼녀는 기다리다 결국 지쳤다. 그래서 곁에 있어줄 가정적이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남자를 선택했다. 브랫은 천직인 해병을 그만둘 생각이 없는 만큼 자신의 바람을 좇은 약혼녀 역시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행복하기를 바랐던 유일한 여자가 자신도 믿을 수 있는 좋은 남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린 것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그렇다면 이번 경우에도 마찬가지일까? 도대체 두 사람이 왜 저러는지 그 이유를 알면 납득하고 이 기분을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 네이트가 자신에게도 그 이유를 비밀로 하고 크리스텐슨과 단둘이 숨어서 어울리는 그 빌어먹을 이유를 알게 되면, 약혼녀에게 그랬듯 수긍하고 협력할까?
그렇지 않았다. 그 어떤 타당한 이유라 해도 자신이 네이트에게서 소외당한다는 사실에 머리로는 납득해도 마음은 여전히 불만일 것 같았다. 하지만 왜? 브랫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답답했다.
네이트는 훌륭한 장교였다. 아무도 그 사실에 반론할 수 없었다. 그리고 가장 냉혹하고 노련한 인간 사냥꾼 파피의 말대로 최고의 소대장이었다. 브라보2 소대의 소대원은 누구나 네이트를 자랑스러워 했다. 브랫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자매소대 브라보3 소대장 맥그로우 대위가 하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네이트를 소대장으로 내려준 신이 너무 고마워, 군목 보들리 소령의 예배에 참석해줄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 감정이 유능한 소대장을 향한 소대원의 충성심이라기엔 조금, 아니 좀 많이 문제가 있어 보였다. 아무리 소대장을 존경한다고 해도, 자기는 듣지 못한 소대장의 노래를 들은 전우의 귀에서 노랫소리를 파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답답하고 궁금했다. 레이는 모르지만 브랫 역시 네이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었었다. 그것도 소대가 동요한다는 은근한 협박까지 곁들여서. 하지만 말을 돌리는 네이트는 욕이 나올 정도로 예뻤다. 진실탐문에 실패한 레이가 호들갑을 떨며 댄 핑계는 정신 사납긴 했지만, 내용은 진실이었다. 말을 돌리며 씩 웃는 네이트는 그야말로 빌어먹을 정도로 예쁘고 섹시하고 호모 에로틱해서, 말을 안 듣는 부하를 홀려 입을 닥치게 하는 수단으로써, 장교 훈련을 받을 때 특훈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는 레이의 궤변에 상당한 신빙성을 실어주었다. 네이트가 그 장난기 어린 미소를 머금은 채, 자신의 소대는 이런 사소한 일에 흔들릴 소대가 아닐 거라고 믿는다고 했을 대, 브랫은 심장이 쿵쾅거리고 정신이 혼미해져 습관대로 ‘물론입니다, 소대장님.’ 이렇게 대답하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머리를 감싸 쥐고 고민했다.
나는 게이인가?
현재 브랫이 처한 환경은 남성의 성기를 목격하는데 아주 탁월한 환경이었다. 해병 수색대는 언제나 극한의 상황에 몰렸고, 그 긴장을 거친 욕과 자위로 풀었다. 마을 공터에서 주민이 보든 말든, 엉덩이를 까고 용변을 보는 것이 익숙한 해병들은 곁에 전우가 있든 말든 태연하게 속옷을 내리거나 그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따라서 브랫은 남성의 성기를 질릴 정도로 많이 목격했다. 하지만 자신이 지닌 것과 동일한 성기는 하도 봐서 익숙할 뿐 어떤 성적인 자극을 주지는 않았다. 밤에 험비 차 문을 열었을 때, 레이가 끙끙거리며 손을 빠르게 놀리고 있으면, 안에 냄새 배니까 밖에서 하라고 짜증을 내는 것이 유일한 감정의 동요였다. 또, 남성은 시각적 자극의 노예였다. 강인한 체력을 지닌 해병은 그 어떤 게이 포르노 배우-본 적은 없지만-보다 몸이 좋았다. 게다가 같은 소대에 전우들의 놀림에도 꿋꿋하게 뉴트로지나를 발라 피부관리를 하고, 군장에 돌까지 더 집어넣어 구보할 정도로 용모에 신경 쓰는 루디가 있었다. 게다가 루디는 어디서든 훌떡훌떡 옷을 잘 벗었다. 그러니 자신이 게이라면 잘생기고 몸도 좋은 루디의 나체를 보면 흥분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렇다고 게이가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하자니 개운치 않은 상황이었다. 요즘 브랫은 욕구불만이었다. 허슬러가 아니라 비장의 적스를 쥐고도 흥분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방치하면 그대로 쌓여, 나중에 전투에서 집중력을 흐트러뜨린다. 전략적으로 계산해 기계적인 배출이라도 해야 했다. 그래서 심드렁하게 속옷을 내리던 중 문득 서핑을 탄지 너무 오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랫의 마음이 빠르게 푸른 바다로 달려갔다. 기분 좋게 차가운 바닷물, 높은 파도, 시원한 바람, 눈부신 태양, 그리고 수영복을 입은 채 물에 흠뻑 젖어 자신을 돌아보며 활짝 웃는 네이트……. 소스라치게 놀란 브랫은 욕을 했다. 그리고 손바닥의 뜨끈한 느낌에 당황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대로, 생전 겪으리라 생각지 못했던 일을 겪었다. 나는 존경하는 상관에게 흥분했다는 사실과 비뇨기과 수입 종목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증상을 일으켰다는 것 중 어디에 중점을 맞춰 경악해야 하는 걸까? 브랫은 혼란스러웠고, 그 혼란은 계속 이어졌다.
포크와 레이가 ‘게이가 꿈꾸는 완벽한 백마 탄 왕자님’이라고 보장하는 루디의 벗은 몸이나, 길가에 굴러다니는 낙타 똥이나 차이를 모르겠는 것을 보면 자신은 게이가 아니다. 하지만 총알이 빗발치는 격전지에서 트럭 뒤의 바닥에 앉아 고개를 숙여 지도를 보느라 위장복과 철모 사이로 드러난 네이트의 하얀 목덜미를 보고 정신이 아찔해진 점을 상기하면, 자신은 게이가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었다. 더구나 요즘 들어 레이에게 절대로 들켜서는 안 되는, 네이트가 나오는 자극적인 꿈을 꾸는 횟수도 잦았다.
확실하지 않은 것은 질색이다. 불분명한 것은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네이트와 엮이면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분명히 하고 싶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도 잡을 수 없었다.
다시 네이트를 찾아가 무슨 일인지 꼭 알아야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이유를 말해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브랫은 그때 네이트가 느낄 실망이 두려웠다. 평소 브랫을 존중했으니 군사기밀만 아니면 네이트는 대답해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브랫을 믿음직한 분대장에서 사소한데 신경 쓰는 슈와체 대위와 동류라고 다시 분류할지도 몰랐다. 엔시노맨과 동급이 되느니 차라리 혀를 깨물어 죽고 말지.
네이트에게서 알아낼 수 없던 브랫은 크리스텐슨에게도 지나가는 말처럼 슬쩍 물어보았다. 하지만 이 어린 이등병은 얼굴이 시뻘게져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절대로 입을 열지 않겠다는 반응을 했다. 소대원 중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정상적인 성장기를 보낸 해병은 크리스텐슨과 스타이니 두 명뿐이었다. 브랫 역시 중산층 가정에서 다른 해병들에 비해 많은 혜택을 받으며 성장했지만, 콜버트는 브랫의 친부모의 성이 아니었다. 그러니 자라온 환경을 볼 때, 브랫보다는 크리스텐슨이 네이트에게는 신경 써서 배려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익숙하고 편할 것이다. 브랫은 크리스텐슨의, 유복하고 순탄하게 자란 사람 특유의 구김살 없는 태도가 새삼스럽게 밉살스러웠다. 그래서 잠깐이지만 정말 칼을 들이댈까 고민까지 했다.
해가 서쪽 하늘로 완전히 기울고 바그다드를 물들였던 노을 대신 푸르스름한 어둠이 밀려들었다. 저쪽에서 중위와 크리스텐슨이 걸어왔다. 네이트는 이야기에 열중해 앞을 미처 살피지 못했는지 바닥의 움푹 팬 곳에 발이 걸려 비틀거렸고, 크리스텐슨이 얼른 네이트의 허리에 팔을 감아 부축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눈에선 불이 나오는 것 같은데, 심장은 얼어붙은 듯 싸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