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s me 3
브랫네잇 브랫네이트
Kiss me
멍청한 중대장이 실패한 근접공격 요청을 경애해 마지 않는 소대장이 성공시켰다. 그것도 600미터 이내라는 느슨한 범위가 아닌 바로 머리 위 정확한 좌표를 정밀 조준해서. 비록 물질계가 아닌 정신계에 일어난 폭발이라지만 정신 건강이 신체 건강 못지 않게 중요하고, 스트레스야 말로 만병유발원흉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요즘, 중위가 던진 이 충격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정신적인 피해를 소리 높여 외치기엔, 소대원들은 중위를 너무 사랑했다. 그래서 그들은 원망의 화살을 원흉이 아닌 대상에 불과한 브랫에게 돌렸다. 연좌죄만으로도 불공정한데 범인이 아닌, 굳이 따지자면 피해자에 가까운 브랫을 소대원들이 탓하는 이유는, 본디 기분이랑 비이성적이기 때문이요, 폭력은 아래로 향하기 때문이요, 브랫이 놀라기만 했지 질색팔색 펄쩍 뛰지 않았으니, 한치도 즐기지 않은 무고한 피해자는 아니라고 자기합리화를 했기 때문이었다.
이글거리는 중위의 눈을 보며 당황하던 브랫은 사태수습을 요구하며 노려보는 소대원들을 보고 짜증을 냈다. 소대원들의 눈은 점점 더 흉흉해지고, 결국 브랫이 중위에게 물었다.
‘둘이 따로 볼까요?’
눈으로.
‘아니, 지금 당장 여기서.’
중위도 대답했다. 역시 눈으로. 이렇게 두 사람이 눈으로 대화했다는 소리는 시선을 계속 마주치고 있다는 소리였고, 소대원들이 속에서 치밀어 오른 울화가 용틀임하도록 자극했다는 소리였다. 그래서 레이는 대대를 돌아다니며 타르 찌꺼기를 모아야겠다고 중얼거렸다. 월트가 단호한 목소리로 협력을 약속했다. 브랫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저 두 사람이 왜 저러는지 이유를 알 것 같기 때문이었다. 아이스맨이라고 칭송 받는 뛰어난 해병의 머릿속에서 가까운 미래에 발생할 무시무시한 인질극의 광경이 펼쳐졌다.
브랫의 작고, 소중하고, 깨끗한 험비가 극악무도한 범인들에 의해 뒤집혔다. 레이와 월트는 가엾은 험비의 바닥에 검고, 더럽고, 끈적끈적한 타르 찌꺼기를 부었다. 심지어 더 잘 달라붙으라고 발로 꾹꾹 밟아 누르기까지 했다. 만행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레이는 입담배를 잇몸에 바르더니 시커먼 침을 험비에 뱉는, 청결의 소중함을 아는 인간이라면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 레이의 무시무시한 웃음소리가 브랫의 머릿속에서 쟁쟁 울렸다. 브랫은 몸서리를 치며 끔찍한 사고를 막기 위해 인질범들의 요구를 수락했다. 그래서 상황의 원인제공자이자, 사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해결자이자, 인생에서 더없이 중요한 사람을 불렀다.
“네이트-아니, 중위님.”
아차, 연인이 아니라 소대장을 불러야 했는데. 브랫의 실수에 소대원들의 흉흉한 기세는 바싹 마른 들판에 붙인 불길처럼 격렬하게 일어났다. 그래, 이젠 이름도 막 부르는 사이라 이거지? 소대원들은 한편의 부조리극 같던 이 전쟁에서 한발 앞서 위험을 감지해 소대를 위험에서 여러 번 구한 믿음직스러운 전우의 목덜미에 난 잇자국을 아주 아니꼽게 노려보았다.
생각해보면, 목이 쭉쭉 늘어나는 특수 능력이라도 있어서 본인이 직접 물지 않은 이상, 브랫은 피해자였다. 그리고 몸에 난 타인의 자국 문제를 좀 더 깊게 파고들면 그래도 옷으로 가릴 수 있는 부분에만 이러저러한 자국을 낸 브랫보다, 옷으로 가릴 수 있는 부분은 물론이고 가릴 수 없는 부분에까지 저런 자국을 낸 네이트야말로 비난 받아 마땅했다. 하지만 소대원들에게 중위는 성역이라 마치 브랫이 ‘늬 목엔 이런 거 없지?’라고 도발이라도 한 듯, 편파적인 감정에 휩싸여 눈을 희번덕거렸다. 그리고 브랫은 그런 소대원들의 분노는 조금도 두렵지 않지만 험비의 안전은 염려되기에 다시 한번 중위를 불렀다.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소대장님.”
공적인 지위로 호명하는 의도야 간단했다. 지금 이 자리가 공적인 자리임을, 적어도 소대원들이 소대장을 바라보는 자리임을 환기시키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네이트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경우에서 그랬듯 이번에도 브랫의 말 사이에 숨은 뜻을 알아주지 않았다.
“저 새끼가 너한테 추파를 던지잖아.”
분노가 치밀어 견딜 수 없다는 듯한 중위의 시선을 따라가니, 과연 이쪽을 바라보는 해병이 보였다. 덩치만큼이나 넉살도 좋은지 시선이 몰리자 씩 웃기까지 했다. 중위가 이를 갈며 으르렁거렸다. 소대원들은 눈을 감으며 탄식했다.
오 씨발. 호모치정이다.
머리 위의 태양은 뜨거웠고, 눈앞의 상황은 기막혔다. 그런데 이 황당하고 어이없는 아수라장에서 가장 비극적인 부분을 꼽자면 분대장에게 키스요구를 하는 소대장을 보면서 경각하는 소대원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놀라기는 놀랐다. 하지만 그 놀라움은 뭐랄까, 드레스코드에 얽힌 놀라움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왜 코끼리가 턱시도를 입지 않았지?’라는 놀라움이었지 ‘왜 코끼리가 무도회장에 있지?’ 이런 놀라움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놀랍게도. 그리고 그마저도 정말 놀랐냐고 공식 취재를 요구하면 잠시 말을 고르며 생각을 하다 어깨를 으쓱이고는 그냥 올 것이 결국 온 것이라고 의견을 정정하고는 몸을 돌려 쓸쓸히 멀어질 것이 분명했다.
왜일까? 도대체 그 무엇이 이 경악해 마땅한 상황 앞에서 용감한 해병들로 하여금 체념하고 허탈하게 돌아서도록 만드는 걸까?
그 원흉은 당연히 가장 훌륭한 장교인 소대장과 가장 뛰어난 해병인 분대장 바로 저 두 사람이었다. 일어나지 말아야 할 상황 앞에서, 사회적으로 합의한 적절한 놀라움에 휩싸이기에는 평소 두 사람이, 특히 중위가 뻔뻔해도 너무 뻔뻔했다.
평소 중위의 입버릇은 개인적인 감정관리를 잘 하라는 것이었다. 임무에 방해되지 않게 사적인 감정을 잘 처리해라,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니 잡념에 휘둘리지 마라,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다 감정을 질질 끌지 말고 적당히 맺고 끊어라. 그리고 그 말을 본인도 잘 지켰다. 당연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소대원들이 이렇게 중위를 존경할 리가 없었다. 속내야 어떻든 중대장 위신을 소대원들 앞에서 세워주려 노력했고, 근접공격 요청건으로 망신을 당한 중대장이 앙심을 품고, 명령불복종 문제로 물고 늘어지며 괴롭힐 때도 증인출석 제의를 하는 분대장들에게 한눈 팔지 말고 앞가림들이나 잘 하라고 쫓아내면서 자기 선에서 해결했다. 낙타를 몰던 이라크 소년이 총상을 입었을 때도, 도의나 정의에 앞서 브랫과 브라이언의 동요를 진정시키려고 대대장에게 시위했다. 이렇게 중위는 언제나 이성적인 판단을 우선했다.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중위의 모습을 소대원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감정관리에 철저하고 유능하고 공사구분에 칼 같은 장교였다. 중위는.
……어디까지나 공적인 영역에서.
이렇게 훌륭한 장교인 중위는 사적인 영역에선, 그러니까 휴식 시간이라든가, 아무튼 임무를 수행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되면 태도가 돌변했다. 그리고 주인 가는데 충직한 개 따라가듯 브랫의 태도도 변했다. 그런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며 한때 소대원들은 이렇게 생각했었다. 떡만 치지 않으면 상관없다는 걸까?
부대 내에서의 성적인 행동은 처벌대상이었다. 소대편성 초기 대부분의 소대원들은 생각했었다. 정말? 겨우? 그게 최선인가? 정말 그 정도에 만족하는 건가, 군법은? 보이즈 비 엠비셔스. 소년뿐만이 아니고 소녀도, 그리고 군법도 좀 더 큰 야망을 품어야 하지 않을까? 시대 변화에 발맞춰 군법도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처벌대상 범위확대 같은. 부대 안에서 떡치는 걸 잡는 건 좋다. 그런데 그건 그거고, 아니 오히려 그것보다 먼저 저렇게 바라보는 걸 더 강력하게 제재해야 하지 않나? 솔직히 저 두 사람처럼 저렇게 서로를 바라보는 거 불법 아냐? 차라리 홀딱 벗고, 뒹굴고, 물고 빨고 박고, 비비는 걸 보면 마이 아이즈!하고 눈을 찌르면 되는데, 저렇게 이글거리는 눈으로 바라보기만 하면 언제 호모에로틱 대참사가 일어날지 몰라서 눈을 뗄 수 없고, 긴장하느라 가슴은 계속 벌렁거리잖아. 정말 저거 제제대상 아닌 거 맞아?
그때 소대원들은 몸으로 치는 떡 못지 않게 눈으로 치는 떡도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편으로, 차라리 두 사람이 진짜 떡을 치면 지켜보는 사람이 숨이 막혀서 정신이 아득해지는 긴장감이 터져서 사라지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그래서 차라리 진짜 떡을 치라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물정 모르는 배부른 소리였지만 그때는 정말 절박했었다. 남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성적인 긴장감은 처음 경험하는데다 브랫도 네이트도 무시무시한 알파메일이었다. 영혼이 쪼그라들 것 같은 압박을 느끼는 게 당연했다.
두 사람의 눈이 처음 마주쳤을 때 스파크가 튀었다고 모두 증언할 수 있었다. 아니, 그걸 스파크라고 불러야 할까? 스파크가 너무하다고 몸서리를 칠지도 몰랐다. 그래 두 사람의 눈이 처음 마주쳤을 때 배경은 천둥번개가 치는 밤하늘로 바뀌었고 100톤 규모의 TNT가 폭발했다.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소대원들은 해병의 명예를 걸고 맹세할 수 있었다.
그 후 두 사람은 서로의 주변을 맴돌며 조심스럽게 탐색전을 펼쳤다- 면 얼마나 좋았을까, 소대원들은 회고했다. 원래 사람은 성적인 매력을 느낀 사람과 만나면 대부분 타인과 인연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에서 조심스럽게 맴돌며, 다가가도 되나, 나를 받아줄까, 우리는 어울릴까 살피면서 상대에게 본인의 매력을 피력하며 은밀하게 탐색전을 펼쳤다. 그런데 콜버트와 픽은, 특히 픽이! 은밀한 탐색전은 개뿔이, 두 사람은, 새삼스럽지만 그래도 몇 번을 생각해도 새록새록 사무치니까 또 한번 강조해서 특히나 픽은 플러팅을 한 적이 없었다. 초지일관 메이팅 콜만 불러댔다. 그것도 아주 우렁차게.
중위가 그토록 훌륭한 장교가 아니었다면 소대원은 중위를 사막에 묻어도 여러 번 묻었고, 적어도 발을 걸어 넘어뜨리기라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픽은 훌륭한 장교였다. 똑똑하고, 유능하고, 부하를 아꼈다. 공적인 역할을 상식적으로 수행하는 동시에 사적인 연애에 거침없는 소대장을 보며 소대원들은 중위의 그런 성격을 마틸다 캠프에선 그래, 사람이 어떻게 완벽할 수 있겠냐고 현실과 타협했고, 이라크에 진군한 이후에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소대장님의 아주 사소하고 작디 작은 결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고, 무아파키아 이후에는 그 또한 소대원을 아끼는 소대장의 미덕이라며 칭송했다.
진군과 함께 매일매일 매 시간 능력을 증명하며 소대원들의 존경을 받던 중위는 무아파키아에서 목숨을 걸고 소대원들을 살렸고, 이후 소대원들에게 픽의 존재는 어떤 종교의 영역에 이르렀다. 그래서 소대장의 연애에 그들은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임했다. 그래, 소대장님께서 하시는 일인데, 당연히 그리 이르도록 마땅한 일이겠지. 중위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옳사오니, 부디 떡을 치심에 있어 제 개인호 옆에만 임하시지 말아주소서. 이렇게 두 사람이 떡을 친다는 사실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종교적 복종에 가까운 납득까지 했지만 끝내 두 사람은 눈으로만 떡을 치지 몸은 서로에게 미지의 대상으로 남겨두었다.
이에 소대원들은 다시 한번 열광하며 중위를 잔양했다. 보라, LT께서 우리를 이토록 아끼시는도다. 하늘 아래 이리 크나큰 자애를 둘은 볼 수 없음이로다. 떡판이 깔아졌으매 그저 떡을 치심에 임하시면 되시거늘, 전선이라는 상황을 살피옵고, 저희의 마음 상함을 저어하셔 깔린 떡판을 마다하시오니 누가 있어 저희를 이리 아끼실 수 있사오리까. 중위님께선 장교 중의 장교시고 그 이름 거룩하게 우뚝 서심이니 이 은혜로운 미덕과 함께 그 이름이 빛나시나이다.
소대원들은 중위가 전쟁이 끝나 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콜버트와 떡을 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생각했다. 아이 섹스나 바디 섹스나 정신건강에 끼치는 해악은 같지만, 눈으로 치는 떡은 적어도 효과음을 동반하지 않으니 몸으로 치는 떡보다 훨씬 나은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중위가 인내의 미덕을 발휘하자 소대원들은 더욱 열린 마음으로 두 사람의 아이 섹스, 아니 연애를 지켜봤다. 그래 곰곰이 생각하니 저 두 사람이 인연이라는 게 정말 잘 된 일인지도 몰라. 브랫 저 새끼 얼굴을 보라고. 자기 앞가림도 잘 하고 남도 잘 챙기고, 주접도 잘 떠는 놈이지만, 과거사기 기구해서 마음이 꽁꽁 얼어붙은 놈이었는데 저 꼴을 보라고. 아주 흐물흐물 녹아서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잖아. 좋으냐? 기쁘냐? 좋겠지. 기쁘겠지. 잘 살아야 한다. 행복해야 한다. 그리고 떡은 꼭 미국에 돌아가서 치고. 소대원들은 이렇게 두 사람이 행복해지라고 진심으로 축복하고 얼른 전쟁이 끝나 두 사람과 헤어지는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돌아갈 때까지 섹스를 하지 않겠다는 중위의 결심을 응원하고 지지하고 찬양했다.
그리고 중위가 그런 결심을 했다는 추측은 터무니없는 오해였다는 사실은 바그다드가 함락된 다음날 명명백백하게 드러났다. 아주 분명하게.
정사의 흔적이 뚜렷한 두 사람을 보면서도 소대원들은 차마 중위를 탓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책임이 있다면 정결한 몸가짐으로 단호하게 거부하지 않는 브랫에게 책임이 있다고 비난했다. 어쩔 수 없었다. 팬심은 기울어질 수 밖에 없는 마음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렇게 편파적인 팬심으로조차 먼저 덮친 쪽은 중위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연애 초반에 눈으로 떡치지 말고 차라리 몸으로 떡을 치라고 절규했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소대원들은 뼈저리게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떡치기 전 텐션이 숨막히게 하는 답답함이라면 떡치고 난 텐션은 복장을 터뜨리는 압박이었다.
이미 상황이 벌어졌지만 그래도 소대원들은 중위를 찬양했다. 비록 떡판에 임하셨으나,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떡을 치셨으니 이는 우리를 아끼시는 마음이라고 눈물겨운 신앙심을 발휘했다. 하지만 매일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감이 커지는 건 사실이었다. 두 사람은 이렇게 해병이 밀집한 공간에서 용케 들키지 않고 떡을 쳤다. 브랫의 능력을 생각하면 당연한가 싶다가도, 그 능력을 이렇게 쓰나 싶어 마음이 뾰족해지기도 하지만 아무튼 지금까지 불행한 목격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이 행운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중위가 떡을 치지 않기로 결심한 쐐기는 전시상황이라는 단 하나뿐이었는지, 종전 이후로는 거의 매일 치는 것 같았으니까.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는데, 얼른 시간이 지나 두 사람의 애정행각을 목격하지 않고 미국에 돌아가는 날만을 애타게 기다렸는데 기어코 이런 날이 닥치고야 말았다.
소대원들은 울분을 삼켰다. 왜? 어째서? 왜 저 새끼는 브랫에게 추파를 던진 걸까? 어째서 우리 중위님은 그 꼴을 보시고 욕을 하시거나 패지 않으시고 꼭 저런 방법을 선택하신 걸까? 저 새끼 조지셔도 우리가 완벽하게 커버쳐드릴 수 있는데. 그리고 브랫 저 새끼는 중위님을 진정시켜드릴 생각은 하지 않고 뭐가 좋다고 저렇게 실실 쪼개는 걸까? 아니라고 빼지 마 이 새끼야. 너 볼따구 실룩거리는 거 다 봤어.
희망은 한 점도 보이지 않고 사방은 막막하기만 했다. 중위는 단호했고, 소대원들이 아는 한 중위가 결심했을 때 그 의지를 꺾을 수 있는 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여기까지인 걸까? 이제 끝인가? 이렇게? 결국 당할 수밖에 없는 걸까? 정말 이대로 무기력하게 패배자처럼 저 두 사람이 주둥이 고의 접촉을 일으키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는 걸까? 세상엔 정의도 희망도 다 저버린 걸까?
절망한 소대원들의 시선이 레이에게 몰렸다. 당당하고 용맹하고 두려움을 모르는 해병들의 눈은 오직 하나의 호소만을 담고 있을 뿐이었다.
‘살려줘.’
비록 조금 전까지 세상에 둘도 없는 멍청이라는 듯 놀려댄 전우였지만 전우애는 피보다 더 끈끈한 법, 얼렁뚱땅 화제를 뺑이쳐 논점 흐리기에 있어 천하제일인 레이는 아직도 혈관을 돌며 근거 없는 자신감을 일으키는 카페인의 조력에 힘입어 자리를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힘차게 외쳤다.
“중위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