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늘보 2016. 9. 4. 21:32



브랫네잇 브랫네이트 




마이크는 당황했다. 군인 인생 최고의 위기를 이 유능한 중위가 안겨주리라고는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다. 부모님의 침실 사정을 알고 싶지 않다는 말이 어떤 비약을 거쳐야 이런 결론에 다다를 수 있는지 상식인 마이크로선 이해할 수 없었다. 안방 사정을 알고 싶지 않다는 말이 왜 부모의 생식기관이 만나야 내가 태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말이 되지? 심지어 황새가 아기를 물고 온다는 설의 신봉자라고? ? 아니, 일단 물리적으로 무리 아닌가? 3개월 미만 태아라면 모를까, 3킬로그램이 넘는 신생아를 황새가 부리로 물어서 운반할 수 있나? 애초에 독수리가 아닌 황새라는 점에서 정말로 조류가 인류의 신생아를 배달한다고 믿을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한 거 아닌가? 아니, 정말로 배달한다고 쳐. 그럼 겨울이 생일인 인간은 없어야지. 이송과정 도중에 모두 저체온으로 사망했을 테니까!

 

마이크는 당황했다. 소대원들도 당황했다. 그리고 중위는 착잡한 표정으로 소대원들을 바라보았다. 중위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성교육을 인체로 설명해야 하나, 암술과 수술, 그리고 꿀벌로 설명해야 하나 막막하다는 표정이었다. 소대원들은 기막혔다. 진짜 막막한 쪽이 누군데! 아무리 경애하고 존경하는 소대장이지만 이 적반하장에는 항의하고 싶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애매함을 담은 중위의 시선이 에스페라와 매니멀에게 머물었다. 표정이 오묘해졌다. 매니멀은 갑자기 기분이 나빠진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포크는 알 수 있었다. 저 표정은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중위의 눈은 이렇게 묻고 있었다. ‘그렇게 틈만 나면 같이 음담패설을 했으면서 소대원들에게 쾌락과 생식의 연결고리를 알려주지 않은 까닭은 소대원들의 순수함을 지켜주고 싶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자네들은 뻐꾸기를 키우는 붉은머리오목눈이이기 때문인가?’ 터무니없는 오해에 포크의 말문이 막혔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중위의 표정이 애잔해졌다. 에스페라의 안에서 복장이 터졌다.

 

아니었다. 이건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딸들의 정통성과 아내가 부부간의 정절의 의무를 위반하지 않았음을 주장하려고 에스페라가 막 숨을 들이마신 순간, 중위가 크리스테슨을 보면서 말했다.

 

크리스테슨. 나중에 애인이랑 잘 때, 가만히 누워서 미국을 생각하면 안 돼.”

 

그 진지한 조언에 크리스테슨의 흔들리는 눈빛만큼이나 소대원들의 멘탈도 요동쳤다. 당신! 바로 직전까진 그나마 우리를 성행위와 생식행위를 연결하지 못하는 멍청이 취급했잖아! 이젠 떡도 칠 줄 모르는 멍청이 취급을 하는 거야! 이러다 용맹한 해병들의 성지식은 빅토리아 시대의 레이디 수준까지 떨어질 지도 몰랐다.

 

너의 상식과 나의 상식 사이에 차원의 벽이 존재하는 중위를 보며 절망하던 소대원은 브랫을 보며 더 깊은 절망에 빠졌다. 브랫은 중위의 저런 비상식적인 논리의 비약마저 매력이라는 듯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틀렸다. 저 두 사람은 답이 없다.

 

사실 이제서야 말이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보며 그렇게 노골적으로 욕망과 열정을 이글이글 불태웠던 주제에 종전까지 떡을 치지 않은 이유는 중위가 소대장으로서 책임감과 자제심을 느꼈기 때문이 아주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중위가 눈치가 없어서라고 소대원 모두가 생각했다. 중위는 눈치가 없었다. 성장과정과 교육과정, 그리고 정신건강에 의문을 느낄 정도로 눈치가 없었다. 직접적인 말로 하지 않은 상대의 신호를 제대로 수신한 적이 없었고, 말로 한다고 해도 동문서답을 하기 일쑤였다. 예를 들어 에이를 말하고 를 말하고 를 말하면 다음은 가 나와야 하는데 중위는 사인, 코사인, 탄젠트의 값을 말했다. 존재하지 않는 중위의 눈치의 가장 큰 피해자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브랫이었는데, 중위가 저렇게 눈치 없이 굴 때마다 치를 떨기는커녕, 자기네 동네는 떡치면 애가 생기는데 부자 동네에선 황새가 애를 물고 오냐고 중얼거리는 트럼블리의 입을 막는 걸 보니, 중위가 답이 보이지 않는 만큼 브랫 역시 절망적이었다. 어쩌면 스톡홀름 신드롬에 빠졌는지도 모른다고 안타까워하며, 소대원들은 중위를 보며 눈에서 꿀을 뚝뚝 흘리는 브랫을 보며 치를 떨었다.

 

구원을 갈구하는 소대원들의 시선이 3분대 분대장 로벨에게 몰렸다. 그래 마지막 희망은 3분대였다. 3분대는 소대에서 지식수준과 교육수준, 그리고 독서율이 가장 높은 분대였다. 로벨은 학자금 지원 때문에 입대했고, 닥은 대학을 나왔고, 스타이니는 여동생이 하버드에 다니고, 테런은 시간만 나면 책을 잃고, 밥티스타는 2개 국어를 구사하는 능력자였다. 그러니 3분대가 아는 선현의 지혜와 현대의 지식이 우리를 이 위기에서 구할 것이다. 그러니 살려줘!

 

로벨은 소대원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담긴 시선에 잠시 부담스러워했지만, 신중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생각하더니 중위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로벨은 언제나 중위에게 정중했다.

 

중위님께서 굳이 나서실 필요 없이 저 새끼가 다시는 허튼 생각을 하지 못하게 저희가 알아서 조져놓겠습니다.”

 

소대원들은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거야? 겨우? 고작 겨우 그거라고? 어린애들처럼 우우 몰려가서 쟨 우리 친구 애인이니까 괜히 수작부리지 마!’ 이렇게 머릿수로 찍어 누르라고? 이거 하이틴무비, 아니, 요즘엔 디즈니 어린이 드라마에서도 여주인공의 찌질한 남자친구랑 어울려 다니는 멍청한 패거리가 전학 온 남주인공한테 하는 짓 아냐? 이게 최선이야? 정말로? 과거와 현대의 지혜와 지식이 교차해 내놓은 최고의 답이 고작 이것인가? 해병이 해병다울 수 있도록 해병을 돌보시는 해병의 신이시여, 여기 이 해병들을 버리시나이까? 소대원들은 깊은 회의에 빠졌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이 방법이 유일한 해결책이기는 했다.

 

소대장을 보라, 그 어떤 용사가 있어 본래의 목적이 어떠하든 실제로는 동서애자 처벌 근거로 이용하는 DADT가 서슬 퍼런 군대 안에서 게이치정드라마를 찍으면 안 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현실을 차원의 벽을 넘고 시간과 공간의 미로를 빠져나가 소대장에게 설득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소대원들은 중위에게 열심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때 브라이언이 중얼거렸다.

 

이거야 원, 쉬퍼가 따로 없군.”

 

소대원들은 생각했다. 과연. 책은 세상을 담고 있다더니 군대내 동성간 연애와 견제, 치정 때문에 고통 받는 군인들을 일컫는 말이 이미 있었구나. .. 윗니와 아래 사이 혀가 날카롭게 떠있다가 맞물렸다 벌어지는 입술 사이로 붕 뜨는 그 말, 쉬퍼. 그래, 우린 쉬퍼였구나. 불분명한 생각과 모호한 감정은 단어와 말을 만나 구체적이 되고, 선명해지고, 따로 떨어진 혼자에서 벗어나 연대하게 된다. 쉬퍼. 우리는 쉬퍼였어. 단어가 남기는 씁쓸한 여운을 곱씹는 소대원들의 귀에 스타이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다른 쉽을 위협하는 쉬퍼 말이죠.”

 

해병들은 불안해졌다. 쉬퍼라는 단어가 묶어준 이 연대감과 위안은 번지수가 틀렸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픽션 캐릭터가 아니라 실제 사람인 경우에도 쉽 적용이 되나?”

 

테런이 말했다. 소대원들의 불안감은 더욱 깊어졌다.

 

내가 들었는데, 기자 양반이 기사를 묶어서 책으로 낸다고 했으니까, 그때 팬덤이 형성되면 가상과 현실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걸쳐서 적용이 되지 않을까?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지면 배우를 거치니까 그땐 더 수월하고.”

 

밥티스타가 대답했다. 소대원들은 가장 지적인 분대의 심도 높은 토론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저 저들이 말하는 용어의 정확한 뜻은 우리가 짐작한 뜻과 아무 상관없을 뿐만이 아니라, 진실한 뜻을 알게 되면 깊은 영혼의 상처를 입으리라는 불길한 예감만 더욱 강해질 뿐이었다. 결국 신심 깊은 크리스토퍼가 브라이언에게 물었다.

 

그런데, . 쉬퍼가 무슨 뜻이에요?”

 

무뚝뚝해 보이지만 속정은 깊은 브라이언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쉬퍼는 특정 캐릭터 두 사람 사이의 케미스트리를 열광하는 사람들인데 드라마 내용과 상관 없이 두 사람은 사귄다고 믿고, 때로는 자기들이 설정한 케미 관계에 방해가 되는 캐릭터를 배척하기도 하고, 자신이 미는 캐릭터와 다른 캐릭터로 케미설정을 하는 다른 쉽팬덤과 충돌을 일으키기도 하지. 지금 같은 경우엔 우리는 중위님과 브랫 쉬퍼로서 두 사람의 애정 관계를 지지하고, 그에 방해가 되는 저 새끼를 적대시-“

 

대단히 학구적인 표정으로 진지하게 설명하던 브라이언이 갑자기 말을 멈추고 옆에서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며 추임새를 넣던 로벨이 얼어붙었다. 두 사람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뻘개졌다.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스타이니도, 테런도, 밥티스타도 굳어버렸다. 3분대원들은 모두 말은 하지 못하고 입만 뻐끔거리더니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자기 머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용납할 수 없는 것들을 담은 자기 머리를 용서할 수 없다는 듯이.

 

브라이언의 설명은 불필요할 정도로 간단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어서 소대원들은 방금 자기가 들은 말들을 머릿속에서 지우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도 지웠다. 더불어 인생을 함께할 수 없는 끔찍한 진실이었으니까.

 

3소대원들은 거의 스스로 목을 조를 것 같은 반응을 보였고, 소대원들은 너희 머릿속의 그것을 다시는 세상 밖으로 꺼내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와 함께 종전과 함께 후유증이 찾아온 것처럼 그들을 대했다. 그래. 힘내라. 너희만 그런 거 아닐 거야. 전쟁은 인간을 미치게 한다니까.

 

결국 책임을 질만한 힘이 있는 자들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전혀. 브랫은 난처해하기는커녕, 차마 좋다고 대놓고 드러내지 못해 입술을 실룩거리는 중이었고, 포크는 세상을 지배하는 백인들이 멍청하므로 세상은 엉망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의 근거로 삼으려고 이 모든 상황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담느라 눈을 빛내고 있었다. 마이크는 아직도 깊은 혼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로벨은 머릿속에 담은 특정 지식이 부끄러워 구덩이를 파고 드러누울 기세였다.

 

이 모든 혼란과 공포와 낙담의 소용돌이를 소대장의 단호한 목소리가 관통했다.

 

우릴 지지하는 자네들 마음은 고맙지만 이 문제는 우리가 직접 해결해야 할 문제야.”

 

소대원들은 정색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런 적 없었다. 절대로! 물론 두 사람을 아끼고 존경했다. 다시 강조하자면 중위는 무아파키아 이후 소대원들에겐 어떤 종교의 영역이었다. 멍청한 중대장이 명령불복종을 핑계로 중위를 계속 물고늘어지면 경력에 불이익을 당하더라고 증인으로 나설 생각이었고, 앞으로 적어도 10년은 중대장 음식에 설사약을 섞을 결사대로 조직할 수 있었다. 소대원들은 진지했다. 이들에게 중위는 이런 존재였다. 그리고 브랫은 거의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초감각으로 소대원들을 몇 번이나 살렸다. 모두는 두 사람에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목숨을 빚졌고, 누구나 그렇겠지만 특히 군인들에게 목숨 빚은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이 훌륭한 소대장과 뛰어난 분대장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부정하지 않았다. 만약 부정하는 자가 있다면 소대원들은 그 자를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죽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군인으로서 두 사람을 인정하고 존경하는 것과 두 사람을 사적으로 하나의 관계로 묶어 인정하고 지지하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아주 다른 문제였다. 하지만 또 그렇다고 만약 두 사람이 결혼식에 초대하지 않는다면, 소대원들은 분노할 것이다. 매우. 그리고 식장을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분노한 버팔로떼처럼 식장으로 몰려가 결혼식 역사상 가장 극성스럽고 야단스러운 하객이 되어 요란법석 축하할 것이고 현역이든 예비역이든 군대에서 만났으니 군대식 세레머니를 해야한다고 우기면서 예검으로 아치를 만들어 세이버아치를 하라고 종용할 것이다. 그래서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 순간을 위해 예검에 녹이 슬지 않게 꾸준히 관리할 것이다. 하지만 또 그렇다고 두 사람이 눈앞에서 애정행각을 벌이는 걸 인정하고 지지한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소대원들은 생각을 멈췄다. 피곤과 혼란이 밀려들었다. 지지와 인정이란 무엇일까? 철회와 부정을 반복하다 보니 지지와 인정이라는 뜻에 게슈탈트붕괴가 올 지경이었다.

 

소대원들은 두 사람이 조금 원망스러웠다. 좀비 바이러스 창궐이든 외계인 침공이든, 세상이 뒤집히고 난리가 나는 상황에서 지휘와 명령에 복종하고 앞서 달리는 등을 보며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이 저 두 사람이었다. 세상이 멸망해도 믿고 따를 수 있는 저 두 사람은 왜 하필이면 서로 연애해서 우리가 이런 시련을 겪게 하는가? 아니, 연애까지는 좋다. 왜 대놓고 해서 우리가 이런 고통을 겪게 하는가! 이런 소대원들의 분노에 아랑곳하지 않고 브랫을 응시하며 이글거리는 중위의 눈은 이라크의 태양 못지 않았다. 브랫 역시 무슨 기대를 하는지 볼을 살짝 붉혔다. 정신건강이 좋지 않은 광경이었다. 중위가 한 걸음 다가서 두 사람의 물리적 거리가 좁혀지자, 소대원들의 마음에 폭풍이 일고 세상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브랫. 와식이 다이어트 약을 세 통 더 구해다 준다고 했어요. 제이로가 살아있다는 거 알고 기분이 좋아서 아주 요즘 선심을 팍팍 쓰더라고요.”

 

레이를 보며 브랫이 그게 자기와 무슨 상관이냐고 눈을 부라렸지만 레이는 더없이 진실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한 알도 남기지 않고 먹으려고요. 전우의 성의인데 쓸모 없이 만들면 안되잖아요. 그런데 말이죠. 전에 약이 떨어져서 존나 우울해하면서 깨달았는데, 역시 사람은 속에 맺힌 거 없이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그때그때 털어놓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론 하고 싶은 말을 꾹꾹 속에 쌓아놓지 말고 그냥 다 말하려고요. 현대 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병은 마음의 병 아니겠어요.”

 

언제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않은 것처럼 말한다고 생각한 것은 브랫 뿐만이 아니었지만 레이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약도 먹고, 존나 하이한 김에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감정을 하나부터 열까지, 아니 백, 천까지 전부 털어놓으려고요. 물론 브랫에게 말이죠. 표정이 왜 그래요? 네가 내 분대장인데 너한테 털어놓지 그럼 누구한테 털어놔요? 아무튼 이제는 아침부터 새벽까지, 깨어있을 때도, 처자빠져 잘 때도 대기할 때도, 이동할 때도, 귀환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뛰어난 통신병이자 훌륭한 운전병이 무슨 생각을 하나, 이 전쟁이 이 새끼한테 어떤 영향을 끼쳤나 브랫이 걱정하지 않게 머릿속 전부와 마음속 모든 것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브랫한테 털어놓을게요. 카페인의 가호와 전우애의 이름 아래! Oorah!”

 

레이가 브랫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네 주둥이가 내 심기를 건드리면 내 주둥이는 너를 좆되게 하리라. 탁월하고 효과적이고 무시무시한 협박이었다. 예수는 겟세마니 동산에 올라 인간의 아들로서의 최후의 밤을 보내며 지난 3년이 30년처럼 느껴진다고 지치고 비통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런데 레이는 하루를 십 년처럼 느끼게 할 수 있었다. 부대 안에서, 그것도 파병지에서, 복수심에 불타 작정한 레이를 어떻게, 또 어디로 피할 수 있단 말인가! 브랫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그래서 한 걸음 물러선 브랫은 거의 절박하게 말했다.

 

걱정마십쇼, 중위님. 이제 다른 새끼가 제 눈에 차겠습니-“

 

엉겁결에 진실을 말해버린 브랫은 헛기침을 하며 말을 얼버무렸고, 소대원들은 일제히 못 들을 걸 들었다는 표정을 했다. , 저 얼빠새끼. 수치심을 모르는 저 고백에 중위님께서 오히려 창피해하시-

ㄹ리가 없지. 그래.

중위를 돌아본 소대원들은 입을 실룩거렸다. 중위는 조금도 창피해하지 않았다. 저 표정은 불은 뜨겁고, 물은 축축하고 나는 잘생겼다는 표정이었다. 솔직히 좀 재수없었지만 티를 낼 순 없었다. 당연한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걸 보고 왜 당연하지 않다는 듯 비굴하게 굴지 않느냐고 지적하는 건 너무 쪽팔린 짓이었으니까. 목을 가다듬은 브랫이 다시 말했다.

 

저 새끼가 더위를 먹었나 봅니다. 헛수작부리지 말라고 제가 조져놓겠습니다.”

 

브랫을 올려본 중위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냐. 네가 나서면 괜히 가학심이랑 승부욕을 자극할 수 있어.”

 

저건 또 무슨 정신 나간 헛소리- 아니지. 화들짝 놀랐던 소대원들은 발언자가 중위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표현을 순화했다. 저것은 또 어떤 크나큰 뜻을 품어 일반적인 범주에서 벗어나는 대담한 의견이란 말인가! 그 의문은 브랫을 바라보는 중위의 녹아 내릴듯한 눈이 설명해주었다. ‘넌 섹시하고 귀여우니까.’ 브랫은 다시 얼굴을 붉혔고, 해병들은 영혼으로 부르짖었다. 해병을 돌보시는 해병의 신이시여! 어째서입니까! 섹시는 이해하려고 혀를 깨물고 눈을 찌르면 아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닙니다. 어찌됐든 저 녀석은 근사한 해병이니까요. 하지만 귀라니오! 그것도 승부욕과 가학심을 자극할 정도로 귀라뇨! 저 키에! 저 덩치에! 인상 쓰면 존나 살벌한 저 새끼가 귀여라니오! 어째서입니까? 우리 멋진 중위님께서 남자 중의 남자시기 때문입니까? 존나 센 알파메일인데 좀 지나치게 센 알파메일이시기 때문에 중위님의 눈엔 저 새끼가 귀여로 보이시는 겁니까? 그렇다면 해병을 돌보시지만 어쩐지 우리를 버리신 듯한 해병의 신이시여. 부디 마지막으로 부디 중위님께서 보시는 세상을 저희는 영영 모르게 하소서!

 

결국 이 모든 게 너 때문이다! 너만 허튼 짓을 하지 않았다면! 소대원들은 원망을 담아, 네이트의 주장에 따르자면 브랫에게 추파를 던졌다는 해병을 일제히 노려보았다. 해병은 얼굴이 그을려 더 희게 빛나는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미백치약 광고 같은 모습이었다. 여긴 서핑하며 헌팅하는 관광지 해변이 아니고 파병지이고 부대안이라는 사실을 우리만 신경 쓰는 걸까? 소대원들은 어때서 고통은 상식 있는 자들의 몫인가 그 부조리함에 분통을 터뜨렸다. 그런데 기분 탓인지 저 해병이 수작을 부리는 게 맞는 것 같았다. 대흉근이 발달한 가슴을 자랑하는 것 같은데가슴 자랑이라니. 소대원들은 그 같잖은 수작이 참 가소롭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모두 해병이었다. 게다가 정예인 해병수색대였다. 저 정도 근육에 감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하필이면 가슴자랑이라니. ! 소대원들은 비웃었다. 가슴을 따지자면 2소대에 넘쳐나는 게 훌륭한 가슴이었다. 일단 루디를 필두로 매니멀과 테런이 있었다. 게다가 가슴하면 브랫도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이왕에 가슴 이야기가 나온 김에 까놓고 말하자면, PT셔츠 차림조차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벗지 않아서 실물 그 자체를 본 적은 없지만, 실루엣만 봐도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중위님 가슴도 뛰어-

 

소대원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생각을 멈췄다. 왜 우리가 사내새끼들과 한 분의 가슴을 품평하고 자빠졌지? 하도 호모에로틱이 창궐하다보니 우리도 물들었나? 이것도 다 저 새끼 때문이야. 다시 한번 원망을 담아 원흉을 노려보는데, 그 해병은 소대원들이 어쩐지 그럴 것 같았지만 그래도 제발 하지 말라고 기원했던 짓을 기어코 저질렀다. 이쪽으로 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지나가던 해병에게 카메라까지 빌려서!

 

중위가 음산하게 목을 울리는 소리가 소대원들에겐 마치 멸망의 4기수가 부는 나팔소리처럼 들렸다. 발소리가 들릴 정도로 해병이 가까이 오고, 얼굴에 떠올린 웃음을 더 깊게 하며 무슨 말인가 하려고 입술을 달싹거렸을 때, 기어코 그 일은 일어나고야 말았다. 브랫의 턱을 틀어쥔 중위는 그대로 끌어당겨 입맞췄다. 다가오던 해병은 웃는 얼굴 그대로 얼어붙었고, 소대원들도 얼어붙었고, 바람도 얼어붙었고, 시간도 얼어붙었다. 입술이 닿는 순간 반사적으로 중위의 뒤통수를 감싸 쥐려고 손을 올렸던 브랫이 소대원들 눈치를 보면서 어정쩡하게 손을 공중에 허우적거렸지만 소대원들에겐 조금의 위안도 되지 못했다.

 

충분한 시간 동안 입술만 부딪쳤다 뗀 중위는 사무적인 표정으로 브랫에게 말했다.

 

내가 서류를 잘못 가져왔군. 선적하려면 빨리 작성해야 하니까 따라와, 브랫.”

 

브랫과 함께 왔던 길로 멀어지는 중위를 보며 소대원들은 유능한 소대장이 작성서류를 착각하는 기본적인 실수를 저지를 리가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으려 몸부림쳤다. 무엇을 하려고 저렇게 두 사람만 가는지 정말 알고 싶지도 않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두 사람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소대원들은 부서진 정신을 수습했다. 일어나지 말아야 할 재앙이 일어났지만 다행히 입술만 닿았다 떨어졌다. 성인 등급이 아닌 아동관람가능 등급이었다. 이런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깊게 생각하면 비참해지니까 다행인 건 다행인 거라고 생각하며 소대원들은 그 문제를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파피가 발등에 부상을 입어 후송되었지만, 소대장은 소대원들을 전원 살렸다. 코커처럼 경력에 먹칠을 칠한 소대원들도 없었다. 소대장은 책임을 훌륭하게 완수하고 본분을 다했으니, 우리도 의리를 지켜야 한다. 그래서 소대원들은 너는 본 것도 없고, 들은 것도 없으니 고발할 것도 없고 소문을 퍼뜨릴 것도 없다고 협박하러 아직도 굳어있는 해병에게 건들건들 몰려갔다.

 

유명한 아이스맨과 역시 그 유명한 데드맨워킹의 주인공인 픽 중위와 같이 사진을 찍으면 복무기간 내내 죽지도 않고, 다치지도 않을 것 같아서 시선이 마주쳤을 때 호감을 사려고 웃고, 전우에게 카메라를 빌려 행운의 부적으로 삼을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가 깊은 영혼의 상처를 입은, 순결하고 무고한 해병에게.

 

 

 

 

그 새끼가 정말 저한테 추파를 던졌습니까?”

 

정말 궁금해?”

 

단추가 풀린 바지 속으로 손을 넣어 흥분하기 시작한 성기를 드로즈 위로 쥐자 낮게 신음을 토했다.

 

생각해보니 상관없는 것 같군요.”

 

네이트가 손아귀에 힘을 주자 날카롭게 숨을 들이키며 브랫은 얼른 대답을 정정했다.

 

전혀 상관없습니다.”

 

그제야 네이트는 만족스러운 눈웃음을 지으며 손바닥으로 성기를 부드럽게 누르며 문질렀다. 눈을 감고 잔잔하게 일어나는 쾌감을 음미하던 브랫이 눈을 뜨고 네이트를 마주보았다. 그러더니 네이트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위로 끌어당기더니 손목 안쪽을 혀끝으로 문질렀다. 간질이듯 혀끝으로 문지르더니 이내 혀를 세워 끝으로 쿡쿡 찔렀다. 어젯밤을 떠올린 네이트는 움찔거리며 항문을 조였다. 모든 것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서늘한 새벽 공기와 손등을 물어도 새어 나오던 신음, 그리고 차가운 정적 속에서 유독 크게 울리던 젖은 소리와 예민한 주름을 적시며 녹이던 뜨거운 혀. 네이트가 가슴을 들썩거리며 뜨거운 숨을 토하자 씩 웃은 브랫은 혀를 길게 내밀어 네이트의 손바닥을 핥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인내심을 잃은 네이트는 다른 손으로 브랫의 뒤통수를 쥐고 끌어내려 성급하게 입맞추며 타액으로 젖은 손을 브랫의 드로즈 안으로 집어넣었다. 뜨겁고 단단한 성기를 쥐자 브랫이 네이트 바지의 단추를 풀고 손을 집어넣어 엉덩이를 감싸 쥐었다.

 

바지 주머니에 루브랑 콘돔 있어.”

 

맞닿은 입술을 속삭이자 브랫이 웃었다.

 

또 전투연대 애들한테서 강탈하신 겁니까?”

 

해병은 되게 하지만 수색하면 찾을 수 있는 문명의 열매를 마다할 이유는 없지.”

 

브랫은 악동이 공범자에게 웃듯 장난스럽게 웃었다.

 

과연 제가 유일하게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지휘력을 지니신 분답습니다.”

 

루브로 축축해진 손가락이 조금씩 밀려들어오자 네이트는 숨을 내쉬며 몸에서 긴장을 풀었다.

 

귀관의 기대에 계속 부응할 수 있도록 계속 정진- !”

 

아직 길이 만들어지지 않은 곳이지만, 브랫은 유능한 해병답게 목표물을 정확하게 찾았다. 짜릿하게 올라오는 쾌감이 하얀 불꽃이 되어 날카롭게 터지는 것 같았다. 소리 없는 신음을 뱉으며 크게 벌린 부드러운 입술을 만족스럽게 내려보던 브랫이 부드러운 입술을 장난스럽게 물었다 놓으며 속삭였다.

 

저 역시 언제나 중위님께서 자랑스러워 하실 수 있는- 흐읏!”

 

단단하게 일어선 성기를 마주 대고 비비자 브랫이 신음을 뱉었다. 그리고 두 번째 손가락이 성급하게 밀고 들어왔다. 날카로운 통증과 저릿저릿하게 올라오는 쾌감에 헐떡이던 네이트가 브랫의 어깨에 이마를 비비며 중얼거렸다.

 

돌아가면 너랑 호텔 잡고 나흘은 나오지 않을 거야.”

 

굵고 긴 손가락 세 개가 한꺼번에 들어오자 쇳소리를 내며 몸을 굳히는 네이트를 달래듯 정수리에 키스하며 브랫이 웅얼거렸다.

 

일주일로 연장하십쇼.”

 

그 말에 네이트는 아래에서 올라오는 불편한 통증을 잊고 키득거렸다. 그리고 손을 뒤로 돌려 브랫이 루브와 함께 쥔 콘돔을 찾아내 껍질을 벗기고 브랫의 성기에 씌웠다. 팔을 브랫의 목에 두르고 탄탄한 어깨에 이를 세우자 브랫이 네이트에게 보내는 사랑 그 자체처럼 주체할 수 없이 크고 뜨거운 열기가 조심스럽게 밀려들었다.

 

네이트, 크읍, , 씨발. 네이트. …, 괜찮습니까? 아프지 않아요?”

 

쾌감에 들떠 열이 오른 눈이 세상 전부를 담듯 네이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이트는 그 누구보다 간절하게 자기를 사랑하고, 애타게 원하는 이 다정하고 겁 많은 남자가 사랑스럽고 안타까웠다. 네이트를 위해서라면 당연히 죽을 수도 있는 이 남자는 자기에게 사랑 받을 가치가 있다고 믿지 않았다. 아무도 끝까지 사랑을 나누며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줄 거라고 믿지 않았다. 더 없는 사랑과 간절함과 그리고 포기를 담은 그 눈을 보며 네이트는 브랫에게 키스했다. 그리고 한쪽 다리를 들어 무릎으로 브랫의 허리를 문질렀다. 그러자 브랫이 혀를 깊게 섞으며 네이트의 무릎 아래로 팔을 끼우며 허리를 움직였다. 고통은 뜨거운 열기로 변하고 이내 모든 것을 삼킬 것 같은 쾌락으로 변했다.

 

네이트는 물론 소대원들을 아끼고 사랑했다. 하지만 이미 그들을 모두 살렸고, 경력에 오점을 남기게 하지도 않았다. 전선에서 소대장으로서 수행해야 하는 의무 중 최우선순위를 무사히 완료했다는 소리였다. 그래서 네이트는 현재의 최우선순위에 집중하기로 했다. 작전과 마찬가지로 인생에서도 정확한 우선순위 선정은 중요했으니까. 게다가 이 문제는 성공한 인생을 사느냐, 덜 성공한 인생을 사느냐 문제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인생을 함께하느냐, 아니면 평생 불완전한 기분을 느끼며 사느냐 문제였다.

 

같은 감정을 느낀다면, 같은 확신을 가지고 같은 미래를 함께 보기를 원했다. 브랫이 지금 이 순간을 두 길이 잠시 만났다 다시 각자의 길로 갈라지는 교차점이 아니라, 두 길이 만나 하나의 길로 이어지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주기를 원했다. 나와 네가 아닌, 우리라고 생각해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브랫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면 되니까. 그래서 현재 네이트의 최우선순위는 <멜팅 아이스맨 프로젝트>였다. 조금 전처럼 네이트가 소유욕에 안달이 난 철부지처럼 굴 때, 브랫이 기뻐하고 만족하고, 그리고 안심한다는 사실을 네이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였다. 그렇게 브랫이 조금씩 안심하고, 마음속 얼음이 녹아 네이트의 옆자리가 자기 자기라는 확신을 가질 수만 있다면 네이트는 얼마든지 더할 수도 있었다.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진심이었으니까. 소대원들과 그리고 아마도 무고할 그 해병에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최우선순위는 무엇보다 우선이기 때문에 최우선순위였고, 네이트는 중요도 순위를 확실하게 구분하는 엘리트이자 훌륭한 장교였으니까.

 

모두의 사정과 속내와 꿍꿍이와 오해를 내려보며 이라크의 태양은 여전히 뜨겁게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