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위님 중위님 꽃같은 우리들의 중위님 1
2012. 11. 15. 22:28
소심늘보 Generation Kill/꽃 중위님 시리즈 View Comments
※ 거친 언어 주의
* 당신의 입술이 너무 섹시한 탓 (1/4)
노을 진 사막은 아름다웠다. 타오르는 듯 진홍빛으로 물든 지평선 너머로 붉게 너울거리는 태양을 보고 있노라면, 시상(詩想)을 위해 로마를 불태웠다는 미치광이의 변명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만큼 사막의 노을은 절경이었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런 풍경 속에서도 브라보중대 2소대의 분대장들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선호할만한 장관을 보면서도 기분이 조금도 좋지 않았다. 아주 엿 같았다.
“니미럴. 병신 짓엔 약도 없다더니.”
1분대 부분대장 에스페라 병장은 씹는 담배의 찌꺼기가 섞인 침을 바닥에 뱉었다. 그리고 평소 주장하던 지론을 상관과 동료에게 다시 강조했다.
“보라고. 우린 이라크 새끼가 아니라 윗대가리들 좆병신짓 때문에 죽을 거라니까?”
장교 모욕을 말릴 의욕을 오래전에 잃은 데다 내심 같은 생각이었지만, 그렇다고 맞장구를 칠 수도 없는 처지인 소대장 픽 중위는 그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옆에서 언제나 온화하고 사려 깊은 윈 중사는 자기보다 열 살이 어린 상관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다는 표정을 했다. 2분대 저격수 패트릭 병장과 3분대의 친절한 로벨 병장은 말없이 동감했고, 성격이 불같은 의무병 브라이언은 성질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라는 표정을 했다. 그리고 픽중위의 오른쪽에 선 1소대의 콜버트 병장은 빛을 등지고 있어 철모 아래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몇 시간 전 지나간 모래 폭풍 샤말 때문에 비행장 영내는 온통 모래로 뒤덮여, 이동하는 험비 바퀴 밑에서 누런 먼지가 계속 일어났다. 비행장 밖 300미터쯤 떨어진 곳에선 야영준비가 한창이었고, 영내에 정차했던 브라보 중대의 중대본부와 3소대의 차량은 그곳을 향했다.
이동하는 차량을 보고 있자니 토니 에스페라 병장, 일명 포크의 속에서 열불이 치밀었다. 내려오는 명령들을 보고 있노라면, 차라리 멕시코 갱이 되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회의감까지 들었다. 장교라는 놈들은 어쩌면 그렇게 멍청할까? 장교 교육과정에 멍청이가 되는 훈련과정이 있나? 위에 있는 자들이 멍청하니 이건 정말 답이 없다. 만약 어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이라크인이 대대에 침투해 대대장 페란도 중령을 사살한다면, 포크는 그 정의롭고 용감한 용사에게 기꺼이 뜨겁고 진한 호모 에로틱 키스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성 정체성에 반하는 감사인사를 하고 싶어할 자가 혼자만이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대대장의 별명을 떠올리니 실소가 절로 나왔다. 갓 파더 좋아하시네. 그 머저리에게는 이블 파더나 이라크 스파이, 팀킬도 아까웠다. 아무튼, 그 병신 대대장은 미쳤다. 분명했다. 세상은 넓고 미친 놈은 많으니 뇌 실종이 의심되는 병신 짓을 되풀이하는 정신병도 분명 있겠지. 그런데 신은 브라보2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그런 미친놈을 대대장이랍시고 내밀고 한술 더 떠 근육을 놓을 자리가 부족해 목 위에 머리를 만든 슈와체 대위, 일명 엔시노 맨을 중대장이랍시고 덤으로 얹은 걸까?
갈색으로 탁해진 침을 뱉고 더 적나라한 욕을 하려던 포크의 눈에 이쪽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3소대의 에릭 코커 병장이 들어왔다. 불쌍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 얼굴을 보니 부글거리던 속이 가라앉고, 대신 청명한 한줄기 바람이 불었다. 그래, 우린 그나마 처지가 낫지.
코커의 시선의 끝에는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꾹 다문 픽 중위가 있었다. 찌질하기로는 상대할 자가 없어, 대대 전체가 무시하는 브라보3의 소대장 맥그로우 대위, 일명 캡틴 아메리카의 삽질은 끝이 없었고, 그 뒤치다꺼리를 하며 하루하루 침울해지는 코커를 보고 있노라면 안쓰러움을 넘어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마틸다 캠프에 있을 땐 헛소리도 곧잘 하고 참 유쾌했는데……. 지금 코커의 얼굴엔 회의감에 찌들다 못해 자포자기만이 가득했다. 누가 저 얼굴을 23살로 볼까? 그래도 우린 소대장이라도 믿고 의지할 수 있지, 3소대는 대대장-중대장-소대장 라인이 완전히 전멸이었다.
포커는 자신들의 소대장을 바라보았다. 원래도 개념 있고 유능하고 훌륭했는데, 자매 소대인 브라보3의 소대장이 극과 극인 대조를 보여주고, 또 침착한 지휘 덕분에 몇 번이나 목숨을 구하다 보니 브라보2의 모든 소대원은 이 젊은 소대장을 믿고, 존경하고 아꼈다. 포크의 마음속에 새삼스러운 존경심이 솟았다. 25살 청년 장교의 작고 하얀 얼굴은 사막의 먼지를 뒤집어쓰고도 여전히 뽀얗고 예뻤다. 게다가 끝내주는 노을까지 배경으로 깔렸다. 자기 눈에도 이렇게 흐뭇한데, 하루에도 몇 번씩 모시는 상관 때문에 자살 충동 내지는 살인 충동에 시달릴 코커의 눈에 이 침착하고 유능하고 예쁘기까지 한 중위는 아마 성자로 보이고도 남을 것이다.
그래,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브라보3에 비하면 천국이지. 우린 소대장이라도 최고잖아. 포크는 그나마 신이 브라보2를 버리지 않았다고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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