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위님 중위님 꽃같은 우리들의 중위님 10
2012. 12. 12. 20:45
소심늘보 Generation Kill/꽃 중위님 시리즈 View Comments
* 막둥이랑 중위님이 수상해 6
*거친 언어 주의
인종차별, 성차별, 성희롱. 만약 해병대 안에서 행동하던 대로 사회에 나가서 똑같이 하면, 연이어지는 고소에 빈털터리가 되고, 상종 못 할 쓰레기라는 낙인이 찍혀 사람들에게 기피대상이 되고, 결국 인생을 망칠 것이다. 그만큼 해병대 안은 바깥 사회와는 전혀 다른 상식으로 움직이는 세상이었다.
자동차 부품을 성기에 문지르고, 뒤통수에 성기를 비벼도 더러우니 치우라고 욕하지, 성적인 수치심이나 모욕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정신 나간 혼란 속이라 해서 어색한 상황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로맨스 영화에서 반드시 라고 해도 좋을 만큼 빈번하게 나오는 장면, 즉 주인공들이 떨어진 물건을 동시에 주우려다 서로 눈이 마주쳐 그대로 키스할 듯 긴장감을 조성하다가 제3자의 소음에 얼른 정신을 차리고 떨어져 헛기침하며 성적인 긴장감을 느끼지 않은 척 내숭을 떠는 그 장면처럼, 해병대 안에서도 아주 미묘하고 난감해 당황스러운 순간은 있었다. 바로 지금 픽 중위와 크리스텐슨 이등병처럼.
맙소사. 차라리 엉덩이를 움켜쥐고 낄낄거리면 그 지나친 행동이 오히려 장난이라는 사실을 강조해 짜증은 날지언정 민망하지는 않지, 만약 브랫이 발을 헛디딘 나를 잡아준답시고 허리에 팔을 둘러 손으로 등을 받치는 바람에 나는 몸을 뒤로 젖히고 브랫은 앞으로 몸을 숙인 채 저렇게 서로의 얼굴을 코앞에서 바라보게 된다면, 정도가 지나친 저 쏘게이 호모 에로틱한 민망함과 어색함에 이 레이레이는 오도도도도도 두드러기가 돋아 발작을 일으키며 이 드넓게 펼쳐진 사막에 좌로 굴러, 우로 굴러, 앞으로 굴러, 뒤로 굴러를 반나절 동안 하며 발광할 것이 분명했다. 맙소사! 브랫이 존나 좆 같은 버틀러고 레이레이가 씨발스러운 스칼렛이 됐다니! 세상이 망하려는 게 분명해. 이 더러운 존나 호모 에로틱 세상!!! 이렇게 발악하면서.
한편으로 레이는 또 생각했다. 지금 진짜 문제는 소대장이 넘어지지 않도록 이등병이 저렇게 픽 중위의 허리를 턱 잡아버린 것이 아니라고. 사막의 나라 수도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찍은 두 사람의 진정한 문제는 바로 지금 보여주는 태도였다. 자신들의 포즈가 방금 남들 보기에 얼마나 낯부끄러운 게이 섹슈얼 텐션이 터졌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아예 자각조차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마치 공공장소에서의 외설 행위로 경범죄 전과가 36범인 커플이 서로 머리카락을 넘겨주는 행위에 아무 의식도 못 하는 것처럼. 물론 두 사람에게 진짜 성적인 긴장감은 없었다. 단지 문제는 남자다움을 강조하는 경향이 지나쳐, 자신을 창녀라고 불러도 꿋꿋하게 대응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자신의 남성성을 자랑하는 해병대에서 저런 닭살이 돋는 민망한 포즈가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라면, 비록 성적인 긴장감은 없을지라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빈번한 스킨십을 한 거냐는 의혹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는 것이 진정한 문제였다. 하지만 픽 중위는 자신이 그런 불미스러운 의혹의 씨앗을 파종하는 농부처럼 휙휙 뿌렸다는 자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크리스텐슨의 어깨를 잡아 균형을 잡고는 다시 나란히 걸으며 원래의 대화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등병은 소대장이 뭐라고 했는지 꽃 같은 중위를 향해 활짝 웃었다.
루디의 말대로 며칠 씻고 로션을 바르니 19세의 이등병 얼굴은 여성스러운 요소에 경기를 일으키는 해병이 보기에도 훤해졌다. 그리고 사막의 먼지를 뒤집어쓰고도 예뻤던 중위의 깨끗한 얼굴이야 두말하면 입이 아팠다. 자신도 뉴트로지나를 발라야겠다고 생각하며 레이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이글거리는 화염에 휩싸인 브랫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아니, 시선으로 아예 막둥이를 튀겨버리고 있으면서, 저러고도 어떻게 자기 마음을 모를 수 있지? 레이는 그동안 소대장에게 반하고도 본인이 자각하지 못하는 브랫을 불쌍히 여겨 이미 여러 차례 암시를 줬다. 쏟아내는 말이 정신이 없어서 그렇지, 아홉 마디의 헛소리로 뒤덮인 가장 아래의 한마디는 날카로운 진실이었고, 그 진실의 내용은 이랬다. <등신아! 너 사랑에 빠졌다니까! 우리 꽃 같은 중위님한테 아주, 푹, 완전, 홀딱 빠졌다고! 이 머저리새끼야!> 하지만 브랫은 알아듣지 못했다. 그리고 레이는 남이 친절하게 충고를 해줘도 본인이 멍청해 알아듣지 못하는 것까지야 책임질 수 없다고 외면했다……기보다는 그냥 재미있어서 내버려두었다.
요즘 브랫이 네이트를 보는 눈초리를 보면 언제 입을 쩍 벌리고 예쁜 중위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우적우적 씹어먹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덕분에 분대장 회의 때마다 다른 분대장들은 그 호모 에로틱한 분위기에 식은땀을 흘렸다. 그런데 브랫은 어떻게 그걸 눈치채지 못하지? 언젠가부터 의무병 브라이언이 분대장 회의에 참석하기 시작한 것을 두고 소대원들은 수군거렸다. 점점 이글거리는 브랫의 눈을 보고 저거 저러다 진짜 일을 내겠지 싶어서 마이크, 포크, 파피, 로벨은 머리를 맞대고 묘수를 짜다 의무병인 브라이언을 찾아가 회의에 참석해 달라고 부탁했고, 브라이언은 짜증을 내면서도 승낙했다고 소대원들은 결론 냈다. 그런 다음, 그날 이후 소대원들은 브라이언의 주머니에 새로 추가된 물품이 도대체 무엇인지 서로 의견을 내며 내기를 시작했다. 많은 가설 중 두 가지 설이 가장 유력했는데, 하나는 유사시 브랫이 결국 눈이 뒤집히면 분대장들이 몸으로 눌러 브랫을 제압하고 닥이 재빠르게 관절의 가장 아픈 부위들을 표시해, 분대장들과 중사가 효과적인 집중타격을 할 수 있게 할 스프레이라는 설과 코끼리도 넘어뜨릴 강력한 진정제가 든 주사기라는 설이었다.
이렇게 남들은 비록 장난으로 여길지언정 브랫의 그 심상찮은 열기를 알아차리고 걱정하고 경계하다 대책까지 세웠는데 정작 본인이 모르다니! 그리고 저러고도 훈장까지 받은 유능한 해병 수색대원이라니! 같은 수색대원으로서 기가 차고 슬픈 노릇이었다. 다른 소대원들이야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농담처럼 즐기지만 브랫의 옆에 계속 붙어있는 레이는 꼭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단정을 지을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더 답답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꼭 브랫만 탓할 일은 아니었다. 인간이 원래 저렇게 생겨먹은데다 환경까지 이 모양이라 감정에 둔하다고 해도, 만약 이글거리며 바라보는 대상이 흠칫하며 불편해하면 자기가 뭘 잘못했나 돌아보고 생각하다 자기감정을 자각할 수도 있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소대장은 둔했다. 계란 프라이를 만들다 못해 계란을 아예 시커멓게 태우고도 남을 정도로 이글거리는 시선을 받는 당사자가 지금 자신이 얼마나 심각하고 위험한 상황에 처했는지 조금도 몰랐다. 레이는 처음엔 그런 픽 중위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만약 브랫이 자신을 그런 식으로 바라본다면 소름이 쪽 끼쳐서 그날 바로 전역을 하거나 보직요청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픽 중위는 지켜보는 사람이 식은땀을 흘리는데 오히려 당사자가 태연했다.
그렇다고 네이트도 브랫처럼 감정에 둔한 사람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그렇다면 전투 증후군을 보이는 소대원들을 그렇게 보살필 순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왜 픽 중위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뜨거운 시선에 둔할까? 사실 그 둔감함 때문에 본의 아니게 불행에 빠뜨린 사람은 비단 브랫뿐만이 아니었다. 날카로운 레이의 눈엔 몇 명 더 보였다. 아무튼, 유능하고 똑똑하고 개념이 넘치며 예쁘기까지 한 우리 소대장님은 뭐가 문제라서 저렇게 둔하나 고민하던 레이는 어느 날 벼락처럼 그 답을 깨달았다.
바로 예뻐서 문제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플라토닉 이상의 교류를 원하는 뜨거운 갈망을 담은 시선에 중위가 반응하지 않는 건 문화차이, 아니 선천적 조건 차이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성인이 유아의 머리를 보호자의 허락도 받지 않고 쓰다듬었다고 치자. 미국의 경우 변명의 여지가 없는 아동성추행이었다. 또 어느 나라에서는 당장 부모가 총을 꺼내 쏴 죽여도 정당방위가 되는 심각한 모욕이었다. 하지만 어떤 나라에서는 연장자가 아랫사람에게 하는 친밀함과 애정의 표시여서 지켜보는 부모가 따뜻하게 미소 짓는다. 그러니까 남들은 식은땀을 주룩주룩 흘리며 ‘저 새끼가 지금 중위님을 홀딱 벗겨서 잡아먹으려나 보다.’ 이렇게 경계하는데 정작 중위는 ‘음, 내 말을 귀 기울여 듣는군.’ 이런 반응을 하는 이유는 바로 중위의 생김새 때문이었다.
네이트 픽은 예뻤다. 빌어먹을 위장복을 입어도 예쁘고, 얼굴에 검댕이 묻어도 예쁘고, 심지어 욕을 해도 예뻤다. 키가 185센티미터인 지금도 이렇게 예쁜데 어렸을 땐 얼마나 더 예뻤을까? 그리고 그렇게 예쁜 네이트를 주변에서 어떻게 봤을까? 그걸 생각하면 중위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까 꽃같이 예쁜 중위는 저렇게 한입에 확 잡아먹고 싶다는 열망을 담아 이글거리는 시선에 아기 때부터 둘러싸여 자랐기 때문에, 저런 눈을 하는 인간을 경계해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없는 거다. 너무 익숙해서.
레이는 새삼스럽게 소대장이 부잣집에 태어나 대학교에서 사이클부 주장까지 할 정도로 운동도 열심히 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저런 얼굴로 빈민굴에 태어나 몸도 약했다면 주변에서 무슨 짓을 했을지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아무튼, 지금 상황은 이랬다. 사랑의 늪에 빠진 브랫은 자신이 늪에 빠진 줄도 모르고 허우적거렸고, 네이트는 허우적거리는 브랫을 보며 자신의 병장이 체력관리를 열심히 한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상황이다.
……나중에 정부에서 이 전쟁에 그 어떤 근사한 공식 명칭을 붙인다 해도 레이에게 이 이라크 전쟁의 명칭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눈새가 둔분(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대장을 신뢰하고 존경하는 레이는 소대장에게 차마 둔한 새끼라는 명칭을 붙일 수 없어서 둔한 분으로 타협을 보았다.)을 만났을 때>
브라보2 소대원들은 저기압인 브랫을 충성심이 강한 맹견이 바쁜 주인을 보며 끙끙거리는 것쯤으로 여기면서도 거기에 호모 에로틱함을 끼얹어 재미있어했다. 그리고 그 생각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단지 그렇다고 정답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충성심이라는 부분집합 B를 포함하는 사랑의 열병이라는 커다란 집합 A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집합 A를 아는 사람은 레이 외에도 몇 명 있었다. 먼저, 루디 레예즈는 친절하고 상냥했다. 그리고 남을 잘 배려했다. 그렇게 배려할 줄 안다는 건 평소 사람들을 눈여겨보며 헤아린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루디는 몇 번인가 브랫에게 현재 느끼는 혼란이 바로 사랑이노라 가엾은 전우에게 알려주려고 시도했다. 그런데 그때마다 파피나, 포크, 심지어 마이크까지 방해하는 걸 보면 세 사람도 뭔가 눈치챈 것이 틀림없었다. 원래 사랑의 고민이란 것이 당사자에겐 지옥의 고통이지만 구경꾼들에겐 코미디 컨셉트의 리얼리티 쇼였으니까. 게다가 주인공이 그 아이스맨 브랫 콜버트라면 시청률은 떼놓은 당상이었다. 그리고 레이는 가장 열광적인 시청자였다.
“브랫, 우리 막둥이 좀 그만 죽여요. 존나 냉혹한 아이스맨은 아마 마음속으로 우리 막둥이를 이미 108가지 방법으로 살해했을 거야. 씨발, 욕 나오게 잔인해. 진정하시라니까? 막둥이 저 얼굴을 봐요. 저 얼굴 어디가 중위님한테 ‘사랑하는 자기야, 믿음직한 자기를 만나 난 정말 행복해.’ 이런 말을 들은 얼굴 같아요? 저건 존나 아무리 봐도 ‘여러분, 고맙습니다. 팬 여러분의 성원이 지금 저를 이 자리에 서게 했습니다.’ 이렇게 그래미상을 쥐고 감사인사를 하는 슈퍼스타를 보는 열성 팬의 얼굴이구먼.”
묵묵부답인 브랫을 보며 레이가 히죽 웃었다.
“하긴 저 두 사람의 분위기가 이미 서로 네이트랑 존이라고 부르는 것 같은 존나 호모 에로틱한 분위기이긴 해요, 그렇죠?”
브랫이 레이를 돌아보며 눈을 부라렸다. 레이는 웃음을 터뜨리지 않으려고 볼 안쪽을 깨물어야 했다. 재미있다. 정말 재미있어서 죽을 것 같았다. 다이어트 약 과다복용이 선사하는 흥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다시 소대장을 물끄러미 보는 브랫을 보며 레이는 미칠 것 같았다.
세상에! 맙소사! 씨발! 저 얼굴이라니! 아이스맨이 존나 저런 얼굴을 하다니! 세상이 망하려나 봐. 웃으면서 망하는 세상이라니, 존나 유쾌하고 씨발스럽게 좋네!
아이스맨을 놀릴 기회는 흔하지 않았다. 물론 레이는 끊임없이 놀렸지만 브랫은 대부분 반응을 하지 않거나, 혹은 몇 배는 강한 독설로 맞받아쳤다. 그러니 저렇게 토이푸들에게 주인의 사랑을 빼앗긴 캉갈처럼, 저 큰 덩치로 시무룩한 얼굴을 하는 브랫을 볼 기회는 정말, 진짜로 흔하지 않았다.
소름이 쪽쪽 끼칠 정도로 존나 호모 에로틱하긴 하지만 아이스맨의 저 의기소침한 얼굴을 내 살아생전 보게 되다니! 중위님! 중위님은 진짜 존나 끝내주게 황홀한 소대장님이시지 말입니다!
소대장 네이트 픽 중위를 향한 레이 퍼슨 상병의 존경심과 애정이 또 한층 깊이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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