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위님 중위님 꽃같은 우리들의 중위님 19
2013. 1. 5. 22:58
소심늘보 Generation Kill/꽃 중위님 시리즈 View Comments
* 다정하게 불러주세요. (3/?)
*거친 언어 주의
브라이언은 이 세상에 엔시노맨 같은 새끼보다 더 심한 욕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있었다. 그리고 그 대상이 되는 충격적인 경험을 한 브라이언은 말 그대로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브라이언은 고민했다. 이 새끼가 뭘 잘못 먹고 이러는 걸까? 역시 다이어트 약을 너무 처먹어서 미쳤나? 역시 다이어트 약 과다 복용 시 부작용으로 정신분열과 자살충동이 일어날 수 있다고 세상에 알려야 하나? 그리고 이 새끼 종교가 카톨릭이었던가? 그래서 존나 죽고 싶은데, 자살은 교리에 어긋나니까, 자기 좀 죽여달라고 이러는 건가? 그럼 왜 나지? 혹시 내가 의대에 다녔다고 빠르고 확실하게 죽여줄 것 같아서 이러나? 브라이언은 값비싼 지식으로 널 아주 느리고 분명하게 고통으로 몸부림치게 해주겠노라는 의지를 가득 담아 레이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레이는 조금도 기가 죽지 않았다.
“아, 씨발. 닥도 한 번 존나 생각을 해보시지 말입니다. 캡틴 아메리카 그 등신 새끼가 존나 끊임없이, 줄기차게 머저리 짓거리를 하기는 하지만 우리 중위님을 좋아한다는 티는 대놓고 팍팍 내지 말입니다. 그러니까 생각을 해보시라고요. 똑같이 헛소리를 지껄이는 새끼가 둘 있는데, 한 새끼는 꼬리를 존나 흔들어대고, 다른 새끼는 인상을 팍팍 쓰며 꼬라보고 있으면, 그나마 앞의 새끼는 날 좋아하는 등신 새끼, 저 새끼는 헛소리나 지껄이는 주제에 날 싫어하는 존나 꼴 보기 싫은 새끼, 이렇게 꼬리표를 붙이는 게 인지상정이지 말입니다.”
“미친 새끼야. 내가 언제 헛소리를 지껄였다는 거냐?”
정체성을 부정 당하는 느낌에 브라이언이 벌컥 성을 냈다. 브라이언은 말수가 많은 남자가 아니었다. 말이 많은 남자가 절대로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한 마디, 한 마디 진실을 날카롭게 찌르도록 까칠하게 다듬은 언변에 내심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는데, 레이는 그것을 정면으로 부인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천하의 아이스맨 앞에서도 쫄지 않는 이 무전병은 가슴에 손을 얹고, 브라이언에게 제정신으로 그런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는 표정까지 지어 보임으로써 시니컬한 위생병의 속을 박박 긁었다. 분노한 브라이언이 독설을 퍼부으려고 입을 열었지만, 레이가 더 빨랐다. 그리고 이어지는 레이의 말은 브라이언의 독 바른 혀를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버렸다.
“지저스! 그럼 지금까지 진심이었단 소리지 말입니다? 와, 존나, 정말요? 그러니까 여태까지 왜 전쟁은 이렇게 존나 좆같은가, 왜 신은 엔시노맨을 만들 때 머리에 두뇌 대신 근육덩어리를 처박았나, 이렇게 중위님한테 따졌던 게 존나 전부 진심을 담은 소리였다는 말이지 말입니다! 맙소사! 세상에! 나 존나 기절할 것 같아. 브라이언. 닥. 난 말이죠, 태양은 왜 하늘에 떠올라 내 피부를 태워 얼굴에 주름을 지게 하는가, 그리고 내 남편은 뭘 하길래 하늘에 해가 떠오르는 것 하나 막지 못해서 날 이렇게 짜증나게 하나, 이 따위 투정을 지껄이는 건 말이죠, 50살 연상 남편의 돈을 보고 결혼하고 네일숍에 옹기종기 모여 툴툴거리는 트로피 와이프들이나 그러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우리 쿨하고 시니컬하고 존나 남자다운 닥이 그러는 걸 보니 제 생각이 틀렸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지 말입니다. 혹시 배운 사람들은 그게 상식인지 말입니다. 그러니까 지구가 존나 오른 쪽으로 도는 게 짜증나면 교수나 조교에게 화풀이 해라, 후배에게 짜증내는 건 존나 남자답지 못하고 찌질한 짓이지만 나보다 위에 있는 새끼들한텐 어떤 지랄을 떨어도 정당하다, 나보다 힘센 새끼들이니까. 그 새끼들은 나한테 무슨 소리를 들어도 된다. 나보다 힘센 새끼들한테만 개기는 나란 새끼는 존나 쿨하고 멋진 새끼. 막 이런 게 상식인지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우리 중위님이 닥보다 더 배웠는데 엔시노맨한테 신경질을 부리진 않으시지 말입니다. 그 새끼가 병신 짓을 할 땐, 이 병신이 또 병신 짓을 하는구나, 이렇게 바라보긴 하시지만 말입니다. 혹시 윗사람 대상 짜증 면죄부는 지역마다 다른 건지 말입니다?”
레이의 의도를 깨달은 브라이언은 입을 꾹 다물었다.
“으와, 이런. 저 존나 실수할 뻔했지 말입니다. 닥의 연애생활에 혹시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제 기준의 비결을 막 알려주려고 했거든요. 사실 쿨한 닥이 지금까지 어떤 연애를 했는지는 딱 보이지 말입니다. 존나 쿨하고 시니컬한 닥은 딱 자기처럼 존나 쿨해서 보살필 필요가 없는 애인을 골랐을 거야. 그런데 그 존나 쿨한 애인이 가끔 세상살기가 힘들다고 투덜거리면 부둥켜 안아주기는커녕, 세상이 존나 좆같다는 걸 이제 알았냐며 짜증나게 징징거리지 말라고 했을 것 같지 말입니다. 그걸 몇 번 반복하고, 그래서 그 겁나 쿨한 애인이 짜증을 내면서 그렇게 쿨하게 살고 싶으면 아이스박스나 끌어안고 살지 왜 사람을 끼고 사느냐고 존나 쿨하게 닥을 뻥 찼을 것 같지 말입니다. 그래서 전 존나 폼 잡고 이러려고 했죠. ‘이봐요, 닥, 브라이언. 세상엔 그런 종자들이 있어요. 자기랑 상관없는 약자들한텐 가슴이 따뜻한 남자면서 자기 곁에 있는 사람이 힘들어할 때 안아주고 위로해 주는 건 존나 게이 같고 낯부끄러운 짓이라고 생각하는 병신 같은 새끼들이요. 개척기 시대라면 전부 다 팍팍하니까 그냥 참고 넘어갔을지도 모르지만, 요즘 세상에 그거 참아주는 여자는 없거든요. 그러니까 같이 사는 사람을 아껴주는 일 따위는 존나 게이 같고 소름 끼쳐서 못해먹겠다 싶으면, 애먼 인생들 똥통에 빠뜨리지 말고 그냥 혼자 살아요. 하지만 독거 노인은 존나 궁상맞아서 죽어도 싫다 싶으면 별게 다 게이 같다는 그 비틀린 사고방식을 좀 뜯어고치던지요.’ 이렇게요. 그런데, 지저스! 닥이 사는 세상에선 그 좆 같은 생각이 존나 상식인 모양이네요. 그럼 어쩔 수 없죠. 사는 세계가 다른데 내가 닥 인생에 대고 무슨 충고를 할 수 있겠어요. 그냥 부탁 하나만 드릴게요. 그 겁나 쿨한 상식을 여기 있을 동안엔 좀 접어주시면 안 되는지 말입니다? 왜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도 있잖아요. 우리 해병은 제대로 된 장교는 까지 않지 말입니다. 존나 구제불능의 살인기계, 아 씨발, 나 이 표현 존나 소름 끼치더라, 망할 브랫, 아무튼 존나 인간 말종들이긴 하지만, 멍청한 상관한테 치이고, 찌질한 동료한테 치이면서도, 정신 나간 미친 새끼들을 그래도 자기 소대라고 기를 쓰고 품는, 개념 박히고 유능한 장교를 밑에서 치지는 않지 말입니다. 난 존나 섬세해서 그런지 닥이 뾰족한 부리로 우리 중위님 가슴을 콕콕 쫄 때마다 존나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아. 그러니까-“
“알아 처먹었으니까, 그만 빈정거려, 새끼야.”
대부분의 경우가 그러하듯, 깨달음은 부끄러움과 함께 왔다. 레이는 히죽 웃었고, 브라이언은 속마음을 들키기 싫어 인상을 썼다.
중대장이 멍청한 건 중위의 탓이 아니었다. 도대체 생각이란 걸 할 줄 모르는 그 끝없는 무능함 때문에 답답한 걸로 따지자면 중대장과 직접 얼굴을 맞대는 중위가 훨씬 답답할 것이다. 이라크 시민의 삶의 터전이 파괴되고, 열사의 땅을 가로질러 피난행렬이 길게 이어지고, 사막의 열기에 결국 대부분의 아이들이 버티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 역시 중위의 탓이 아니었다. 미군이 이라크를 해방한 것이 아니라 침략해 엉망인 현실을 더 지저분하게 휘젓는 것 역시 중위의 탓이 아니었다. 하지만 브라이언은 기회만 생기면 중위에게 전쟁의 참상을 따졌다. 자신은 어쩌면 내심 누군가를 비난함으로써, 이 비극에 자신이 동참하고 싶지 않았다고 핑계를 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끔찍하고 황당하고 어리석은 상황은 내 뜻이 아니다. 난 이 좆 같은 현실을 비난한다. 그래서 누군가를 탓한다. 상병 이하 소대원들에겐 그럴 수 없었다. 같은 계급대의 병장들에게 가끔 속에 맺힌 마음을 털어놓기는 했지만, 브라이언보다 전투 경험이 많은 그들은 닥의 짜증에 동조하며 길게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을 중위에게 쏟아냈다. 레이의 말대로 약자를 괴롭히지 않고 적어도 윗사람에게 항의하는 자신에게 어느 정도 도취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유치한 짓인가. 나는 이 상황을 원하지 않았다고? 그럼 중위는 이런 상황을 원했나? 게다가 중위는 책임감이 강한 장교였다. 부하들을 아꼈고, 소대원의 요청은 가급적 들어주려 애썼다. 윤활유나 사격 전 경고처럼. 하지만 브라이언은 언제나 중위의 재량 밖의 문제로 독설을 퍼부었다. 혹시 중위는 그럴 때마다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며 자책하지 않았을까?
브라이언은 지휘차량을 보았다. 트럭의 조수석에 앉아 지도를 보는 중위의 옆얼굴이 기분 탓인지 평소보다 더 창백해 보였다. 죄책감에 가슴이 아렸다. 그리고 레이는 옆에서 변죽을 울렸다.
“제가 생각해 봤는데 말입니다. 우리 중위님이 브라이언을 닥이라고만 부르시는 이유는, 거리감을 느껴서 그렇기도 하지만, 존나 친하게 브라이언이라고 부르면 자길 싫어하는 닥이 기분 나빠할까 봐 그냥 닥이라고 부르시는 건지도 모르겠지 말입니다.”
“내가 언제 중위님 싫다고 했냐?”
“아, 존나. 꼭 말로 나 너 싫다, 이래야 아, 저 새끼가 날 존나 싫어하는구나, 이렇게 느끼는 건 아니지 말입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세요. 닥이 우리 중위님한테 좀 까칠하게 굴었어요? 우리는 중위님이 위로도 옆으로도 치이는 거 알아서 중위님 앞에선 존나 얌전한 새끼 양인데 유독 닥만 기회가 생겼다 하면 독 가시를 팽팽 날리니 중위님이 그렇게 생각하실 만도 하잖아요.”
레이는 브라이언의 상처를 콕콕 찔렀고, 위생병은 최선을 다해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태연한 얼굴로 까칠하게 반응했다.
“네놈 새끼는 언제부터 그렇게 참견쟁이가 됐냐? 지금 너 하는 꼴을 보면 아주 극성맘이 따로 없다는 건 아냐? 널 보니까 여기가 해병대인지, 누가 내 새끼 괴롭히나 눈을 희번덕거리는 극성맘이 가득한 키즈 클럽인지 구분이 안 되지 말이다.”
레이가 씩 웃었다.
“우리 중위님이잖아요.”
우리 중위님. 브라보 중대 2소대의 모든 예외성을 설명할 수 있는 마법의 말이었다. 거칠고 잔인한 해병을 사랑에 빠진 십대 소녀로도 만들 수 있고, 알을 품지 못해 안달하는 어미 닭으로도 만들 수 있는 강력한 마법의 말. 소대원 중 가장 극성스러운 어미 닭 포크의 부리부리한 눈초리를 떠올린 브라이언은 픽 웃었다.
“새끼야, 치사하게 차별하냐? 브랫도 중위님한테 지랄하는데 그 새끼한테는 왜 아무 말도 안 하냐?”
레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했다.
“아, 씨발. 존나 진심으로 하는 말씀인지 말입니다? 브랫 그 새끼는 중위님한테 툴툴거리는 게 아니라 발정기 공작새처럼 꼬리를 활짝 펴고 존나 보는 사람이 쪽 팔린 구애 댄스를 추는 거지 말입니다. 아니, 존나 헥헥거리며 들이대는 개새낀가? 아, 씨발, 브랫은 이제 아이스맨 타이틀을 반납해야 한다니까요? 어린 왕자한테 길들여 달라고 존나 들이댄 사막 여우는 작고 귀엽기라도 했지, 저건 존나 송아지만한 캉갈 새끼가 애타게 끙끙거리면서 나 좀 봐줘요, 나 좀 길들여줘요, 내 주인님이 돼줘요, 내 목에 줄 채워서 잡아줘요, 존나 이렇게 중위님 주변을 뱅글뱅글 맴도는 데, 존나 드높은 내 심미안이 팍팍 썩는 것 같지 말입니다.”
잠시 말을 멈춘 레이가 브라이언을 음흉하게 쳐다보았다.
“이런. 혹시 닥, 지금까지 우리 중위님한테 툴툴거렸던 거 짜증이 아니라 구애였어요? 끙끙거리며 헥헥거리는 건 존나 부끄러움이란 걸 모르는 브랫이 도맡아 하니까, 전략적으로 차별화를 하려고 퉁퉁거린 거였는지 말입니다. 와, 존나, 그럼 씨발, 이제 아이스맨의 삽질 구애 드라마에 라이벌이 등장하는 건지 말입니다. 하긴 브랫 삽질기 시청률이 높기는 하지만 이제 슬슬 방송 포맷에 변화를 줄 때도 됐죠. 지금까지 ‘내가 존나 넓고 깊은 참호를 팔테니까 거기 같이 자빠집시다.’ 이거 빼놓고 존나 들이대는 브랫의 라이벌로 ‘나는야 차가운 사막의 위생병, 하지만 내 달링에게는 따뜻하겠지 라는 편견은 버려라, 머저리들아!’가 컨셉인 까칠한 닥이 등장하는 건지 말입니다. 드디어 삼각관계야. 씨발! 존나 좋아.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역시 러브스토리가 짱이지 말입니다!”
“네놈 새끼가 존나 뒈지고 싶은 모양이구나.”
“닥, 부끄러워하지 말고요. 열심히 들이대봐요. 혹시 알아요? 우리 중위님이 존나 불타는 닥의 연심에 감동받으시면 존나 남처럼 거리감 느껴지는 닥 대신 다정하게 브라이언이라고 불러주실지. 그럼 또 브랫은 그 꼴을 보고 존나 질투로 활활 타오르겠지? 아 씨발, 존나 소름 돋네. 갓파더는 콧수염 대회가 아니라 호모 에로틱 대회를 열었어야 한다니까. 아무튼 닥, 파이팅! 응원할게요.”
브라이언이 살벌한 얼굴로 한 걸음 앞으로 내딛자 레이는 낄낄거리며 얼른 달아났다.
네이트는 이제 지도를 치우고 마이크와 이야기를 나누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 모습을 보며 브라이언은 생각했다. 미움 사는 건 상관없었다. 충분히 익숙하니까. 하지만 네이트가 자신에게 미움을 받는다고 생각하게 둘 수는 없었다. 레이의 말대로 우리의 중위니까. 그리고 더 이상 마음의 짐을 지울 수는 없으니까.
물론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미움을 사는 건 상관없다는 생각은 반드시 진심이라고 단정지어 말할 수 없는 부분이기는 했다. 하지만 차갑고 시니컬하며 사소한 정에 연연하지 않는 도시, 아니 전장의 남자 브라이언에게는 지금까지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기 위해선 자기합리화가 필요했고, 중위에게 쓸데없는 부담을 주지 말자는 핑계로 스스로와 타협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각자 원래 놀던 가락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었고, 주변 사람은 그 가락에 길들여지기 마련이었다. 즉, 브라이언의 다정한 남자 되기 프로젝트 앞에는 구비구비 애로사항이 찬란하게 꽃피었다는 뜻이었다.
브라이언은 고민했다. 이 새끼가 뭘 잘못 먹고 이러는 걸까? 역시 다이어트 약을 너무 처먹어서 미쳤나? 역시 다이어트 약 과다 복용 시 부작용으로 정신분열과 자살충동이 일어날 수 있다고 세상에 알려야 하나? 그리고 이 새끼 종교가 카톨릭이었던가? 그래서 존나 죽고 싶은데, 자살은 교리에 어긋나니까, 자기 좀 죽여달라고 이러는 건가? 그럼 왜 나지? 혹시 내가 의대에 다녔다고 빠르고 확실하게 죽여줄 것 같아서 이러나? 브라이언은 값비싼 지식으로 널 아주 느리고 분명하게 고통으로 몸부림치게 해주겠노라는 의지를 가득 담아 레이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레이는 조금도 기가 죽지 않았다.
“아, 씨발. 닥도 한 번 존나 생각을 해보시지 말입니다. 캡틴 아메리카 그 등신 새끼가 존나 끊임없이, 줄기차게 머저리 짓거리를 하기는 하지만 우리 중위님을 좋아한다는 티는 대놓고 팍팍 내지 말입니다. 그러니까 생각을 해보시라고요. 똑같이 헛소리를 지껄이는 새끼가 둘 있는데, 한 새끼는 꼬리를 존나 흔들어대고, 다른 새끼는 인상을 팍팍 쓰며 꼬라보고 있으면, 그나마 앞의 새끼는 날 좋아하는 등신 새끼, 저 새끼는 헛소리나 지껄이는 주제에 날 싫어하는 존나 꼴 보기 싫은 새끼, 이렇게 꼬리표를 붙이는 게 인지상정이지 말입니다.”
“미친 새끼야. 내가 언제 헛소리를 지껄였다는 거냐?”
정체성을 부정 당하는 느낌에 브라이언이 벌컥 성을 냈다. 브라이언은 말수가 많은 남자가 아니었다. 말이 많은 남자가 절대로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한 마디, 한 마디 진실을 날카롭게 찌르도록 까칠하게 다듬은 언변에 내심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는데, 레이는 그것을 정면으로 부인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천하의 아이스맨 앞에서도 쫄지 않는 이 무전병은 가슴에 손을 얹고, 브라이언에게 제정신으로 그런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는 표정까지 지어 보임으로써 시니컬한 위생병의 속을 박박 긁었다. 분노한 브라이언이 독설을 퍼부으려고 입을 열었지만, 레이가 더 빨랐다. 그리고 이어지는 레이의 말은 브라이언의 독 바른 혀를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버렸다.
“지저스! 그럼 지금까지 진심이었단 소리지 말입니다? 와, 존나, 정말요? 그러니까 여태까지 왜 전쟁은 이렇게 존나 좆같은가, 왜 신은 엔시노맨을 만들 때 머리에 두뇌 대신 근육덩어리를 처박았나, 이렇게 중위님한테 따졌던 게 존나 전부 진심을 담은 소리였다는 말이지 말입니다! 맙소사! 세상에! 나 존나 기절할 것 같아. 브라이언. 닥. 난 말이죠, 태양은 왜 하늘에 떠올라 내 피부를 태워 얼굴에 주름을 지게 하는가, 그리고 내 남편은 뭘 하길래 하늘에 해가 떠오르는 것 하나 막지 못해서 날 이렇게 짜증나게 하나, 이 따위 투정을 지껄이는 건 말이죠, 50살 연상 남편의 돈을 보고 결혼하고 네일숍에 옹기종기 모여 툴툴거리는 트로피 와이프들이나 그러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우리 쿨하고 시니컬하고 존나 남자다운 닥이 그러는 걸 보니 제 생각이 틀렸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지 말입니다. 혹시 배운 사람들은 그게 상식인지 말입니다. 그러니까 지구가 존나 오른 쪽으로 도는 게 짜증나면 교수나 조교에게 화풀이 해라, 후배에게 짜증내는 건 존나 남자답지 못하고 찌질한 짓이지만 나보다 위에 있는 새끼들한텐 어떤 지랄을 떨어도 정당하다, 나보다 힘센 새끼들이니까. 그 새끼들은 나한테 무슨 소리를 들어도 된다. 나보다 힘센 새끼들한테만 개기는 나란 새끼는 존나 쿨하고 멋진 새끼. 막 이런 게 상식인지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우리 중위님이 닥보다 더 배웠는데 엔시노맨한테 신경질을 부리진 않으시지 말입니다. 그 새끼가 병신 짓을 할 땐, 이 병신이 또 병신 짓을 하는구나, 이렇게 바라보긴 하시지만 말입니다. 혹시 윗사람 대상 짜증 면죄부는 지역마다 다른 건지 말입니다?”
레이의 의도를 깨달은 브라이언은 입을 꾹 다물었다.
“으와, 이런. 저 존나 실수할 뻔했지 말입니다. 닥의 연애생활에 혹시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제 기준의 비결을 막 알려주려고 했거든요. 사실 쿨한 닥이 지금까지 어떤 연애를 했는지는 딱 보이지 말입니다. 존나 쿨하고 시니컬한 닥은 딱 자기처럼 존나 쿨해서 보살필 필요가 없는 애인을 골랐을 거야. 그런데 그 존나 쿨한 애인이 가끔 세상살기가 힘들다고 투덜거리면 부둥켜 안아주기는커녕, 세상이 존나 좆같다는 걸 이제 알았냐며 짜증나게 징징거리지 말라고 했을 것 같지 말입니다. 그걸 몇 번 반복하고, 그래서 그 겁나 쿨한 애인이 짜증을 내면서 그렇게 쿨하게 살고 싶으면 아이스박스나 끌어안고 살지 왜 사람을 끼고 사느냐고 존나 쿨하게 닥을 뻥 찼을 것 같지 말입니다. 그래서 전 존나 폼 잡고 이러려고 했죠. ‘이봐요, 닥, 브라이언. 세상엔 그런 종자들이 있어요. 자기랑 상관없는 약자들한텐 가슴이 따뜻한 남자면서 자기 곁에 있는 사람이 힘들어할 때 안아주고 위로해 주는 건 존나 게이 같고 낯부끄러운 짓이라고 생각하는 병신 같은 새끼들이요. 개척기 시대라면 전부 다 팍팍하니까 그냥 참고 넘어갔을지도 모르지만, 요즘 세상에 그거 참아주는 여자는 없거든요. 그러니까 같이 사는 사람을 아껴주는 일 따위는 존나 게이 같고 소름 끼쳐서 못해먹겠다 싶으면, 애먼 인생들 똥통에 빠뜨리지 말고 그냥 혼자 살아요. 하지만 독거 노인은 존나 궁상맞아서 죽어도 싫다 싶으면 별게 다 게이 같다는 그 비틀린 사고방식을 좀 뜯어고치던지요.’ 이렇게요. 그런데, 지저스! 닥이 사는 세상에선 그 좆 같은 생각이 존나 상식인 모양이네요. 그럼 어쩔 수 없죠. 사는 세계가 다른데 내가 닥 인생에 대고 무슨 충고를 할 수 있겠어요. 그냥 부탁 하나만 드릴게요. 그 겁나 쿨한 상식을 여기 있을 동안엔 좀 접어주시면 안 되는지 말입니다? 왜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도 있잖아요. 우리 해병은 제대로 된 장교는 까지 않지 말입니다. 존나 구제불능의 살인기계, 아 씨발, 나 이 표현 존나 소름 끼치더라, 망할 브랫, 아무튼 존나 인간 말종들이긴 하지만, 멍청한 상관한테 치이고, 찌질한 동료한테 치이면서도, 정신 나간 미친 새끼들을 그래도 자기 소대라고 기를 쓰고 품는, 개념 박히고 유능한 장교를 밑에서 치지는 않지 말입니다. 난 존나 섬세해서 그런지 닥이 뾰족한 부리로 우리 중위님 가슴을 콕콕 쫄 때마다 존나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아. 그러니까-“
“알아 처먹었으니까, 그만 빈정거려, 새끼야.”
대부분의 경우가 그러하듯, 깨달음은 부끄러움과 함께 왔다. 레이는 히죽 웃었고, 브라이언은 속마음을 들키기 싫어 인상을 썼다.
중대장이 멍청한 건 중위의 탓이 아니었다. 도대체 생각이란 걸 할 줄 모르는 그 끝없는 무능함 때문에 답답한 걸로 따지자면 중대장과 직접 얼굴을 맞대는 중위가 훨씬 답답할 것이다. 이라크 시민의 삶의 터전이 파괴되고, 열사의 땅을 가로질러 피난행렬이 길게 이어지고, 사막의 열기에 결국 대부분의 아이들이 버티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 역시 중위의 탓이 아니었다. 미군이 이라크를 해방한 것이 아니라 침략해 엉망인 현실을 더 지저분하게 휘젓는 것 역시 중위의 탓이 아니었다. 하지만 브라이언은 기회만 생기면 중위에게 전쟁의 참상을 따졌다. 자신은 어쩌면 내심 누군가를 비난함으로써, 이 비극에 자신이 동참하고 싶지 않았다고 핑계를 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끔찍하고 황당하고 어리석은 상황은 내 뜻이 아니다. 난 이 좆 같은 현실을 비난한다. 그래서 누군가를 탓한다. 상병 이하 소대원들에겐 그럴 수 없었다. 같은 계급대의 병장들에게 가끔 속에 맺힌 마음을 털어놓기는 했지만, 브라이언보다 전투 경험이 많은 그들은 닥의 짜증에 동조하며 길게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을 중위에게 쏟아냈다. 레이의 말대로 약자를 괴롭히지 않고 적어도 윗사람에게 항의하는 자신에게 어느 정도 도취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유치한 짓인가. 나는 이 상황을 원하지 않았다고? 그럼 중위는 이런 상황을 원했나? 게다가 중위는 책임감이 강한 장교였다. 부하들을 아꼈고, 소대원의 요청은 가급적 들어주려 애썼다. 윤활유나 사격 전 경고처럼. 하지만 브라이언은 언제나 중위의 재량 밖의 문제로 독설을 퍼부었다. 혹시 중위는 그럴 때마다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며 자책하지 않았을까?
브라이언은 지휘차량을 보았다. 트럭의 조수석에 앉아 지도를 보는 중위의 옆얼굴이 기분 탓인지 평소보다 더 창백해 보였다. 죄책감에 가슴이 아렸다. 그리고 레이는 옆에서 변죽을 울렸다.
“제가 생각해 봤는데 말입니다. 우리 중위님이 브라이언을 닥이라고만 부르시는 이유는, 거리감을 느껴서 그렇기도 하지만, 존나 친하게 브라이언이라고 부르면 자길 싫어하는 닥이 기분 나빠할까 봐 그냥 닥이라고 부르시는 건지도 모르겠지 말입니다.”
“내가 언제 중위님 싫다고 했냐?”
“아, 존나. 꼭 말로 나 너 싫다, 이래야 아, 저 새끼가 날 존나 싫어하는구나, 이렇게 느끼는 건 아니지 말입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세요. 닥이 우리 중위님한테 좀 까칠하게 굴었어요? 우리는 중위님이 위로도 옆으로도 치이는 거 알아서 중위님 앞에선 존나 얌전한 새끼 양인데 유독 닥만 기회가 생겼다 하면 독 가시를 팽팽 날리니 중위님이 그렇게 생각하실 만도 하잖아요.”
레이는 브라이언의 상처를 콕콕 찔렀고, 위생병은 최선을 다해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태연한 얼굴로 까칠하게 반응했다.
“네놈 새끼는 언제부터 그렇게 참견쟁이가 됐냐? 지금 너 하는 꼴을 보면 아주 극성맘이 따로 없다는 건 아냐? 널 보니까 여기가 해병대인지, 누가 내 새끼 괴롭히나 눈을 희번덕거리는 극성맘이 가득한 키즈 클럽인지 구분이 안 되지 말이다.”
레이가 씩 웃었다.
“우리 중위님이잖아요.”
우리 중위님. 브라보 중대 2소대의 모든 예외성을 설명할 수 있는 마법의 말이었다. 거칠고 잔인한 해병을 사랑에 빠진 십대 소녀로도 만들 수 있고, 알을 품지 못해 안달하는 어미 닭으로도 만들 수 있는 강력한 마법의 말. 소대원 중 가장 극성스러운 어미 닭 포크의 부리부리한 눈초리를 떠올린 브라이언은 픽 웃었다.
“새끼야, 치사하게 차별하냐? 브랫도 중위님한테 지랄하는데 그 새끼한테는 왜 아무 말도 안 하냐?”
레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했다.
“아, 씨발. 존나 진심으로 하는 말씀인지 말입니다? 브랫 그 새끼는 중위님한테 툴툴거리는 게 아니라 발정기 공작새처럼 꼬리를 활짝 펴고 존나 보는 사람이 쪽 팔린 구애 댄스를 추는 거지 말입니다. 아니, 존나 헥헥거리며 들이대는 개새낀가? 아, 씨발, 브랫은 이제 아이스맨 타이틀을 반납해야 한다니까요? 어린 왕자한테 길들여 달라고 존나 들이댄 사막 여우는 작고 귀엽기라도 했지, 저건 존나 송아지만한 캉갈 새끼가 애타게 끙끙거리면서 나 좀 봐줘요, 나 좀 길들여줘요, 내 주인님이 돼줘요, 내 목에 줄 채워서 잡아줘요, 존나 이렇게 중위님 주변을 뱅글뱅글 맴도는 데, 존나 드높은 내 심미안이 팍팍 썩는 것 같지 말입니다.”
잠시 말을 멈춘 레이가 브라이언을 음흉하게 쳐다보았다.
“이런. 혹시 닥, 지금까지 우리 중위님한테 툴툴거렸던 거 짜증이 아니라 구애였어요? 끙끙거리며 헥헥거리는 건 존나 부끄러움이란 걸 모르는 브랫이 도맡아 하니까, 전략적으로 차별화를 하려고 퉁퉁거린 거였는지 말입니다. 와, 존나, 그럼 씨발, 이제 아이스맨의 삽질 구애 드라마에 라이벌이 등장하는 건지 말입니다. 하긴 브랫 삽질기 시청률이 높기는 하지만 이제 슬슬 방송 포맷에 변화를 줄 때도 됐죠. 지금까지 ‘내가 존나 넓고 깊은 참호를 팔테니까 거기 같이 자빠집시다.’ 이거 빼놓고 존나 들이대는 브랫의 라이벌로 ‘나는야 차가운 사막의 위생병, 하지만 내 달링에게는 따뜻하겠지 라는 편견은 버려라, 머저리들아!’가 컨셉인 까칠한 닥이 등장하는 건지 말입니다. 드디어 삼각관계야. 씨발! 존나 좋아.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역시 러브스토리가 짱이지 말입니다!”
“네놈 새끼가 존나 뒈지고 싶은 모양이구나.”
“닥, 부끄러워하지 말고요. 열심히 들이대봐요. 혹시 알아요? 우리 중위님이 존나 불타는 닥의 연심에 감동받으시면 존나 남처럼 거리감 느껴지는 닥 대신 다정하게 브라이언이라고 불러주실지. 그럼 또 브랫은 그 꼴을 보고 존나 질투로 활활 타오르겠지? 아 씨발, 존나 소름 돋네. 갓파더는 콧수염 대회가 아니라 호모 에로틱 대회를 열었어야 한다니까. 아무튼 닥, 파이팅! 응원할게요.”
브라이언이 살벌한 얼굴로 한 걸음 앞으로 내딛자 레이는 낄낄거리며 얼른 달아났다.
네이트는 이제 지도를 치우고 마이크와 이야기를 나누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 모습을 보며 브라이언은 생각했다. 미움 사는 건 상관없었다. 충분히 익숙하니까. 하지만 네이트가 자신에게 미움을 받는다고 생각하게 둘 수는 없었다. 레이의 말대로 우리의 중위니까. 그리고 더 이상 마음의 짐을 지울 수는 없으니까.
물론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미움을 사는 건 상관없다는 생각은 반드시 진심이라고 단정지어 말할 수 없는 부분이기는 했다. 하지만 차갑고 시니컬하며 사소한 정에 연연하지 않는 도시, 아니 전장의 남자 브라이언에게는 지금까지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기 위해선 자기합리화가 필요했고, 중위에게 쓸데없는 부담을 주지 말자는 핑계로 스스로와 타협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각자 원래 놀던 가락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었고, 주변 사람은 그 가락에 길들여지기 마련이었다. 즉, 브라이언의 다정한 남자 되기 프로젝트 앞에는 구비구비 애로사항이 찬란하게 꽃피었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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