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위님 중위님 꽃같은 우리들의 중위님 23
2013. 1. 12. 06:29
소심늘보 Generation Kill/꽃 중위님 시리즈 View Comments
* 다정하게 불러주세요. (7/7)
*거친 언어 주의
무시무시한 브라이언의 얼굴을 보며 네이트는 난처한 표정을 했다. 누구나 지금 브라이언의 얼굴, 그러니까 이를 악물고 무언가를 참는듯한 표정을 본다면 불구대천의 원수와 맞닥뜨리기라도 했나 싶을 것이다. 네이트는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면 티모시?”
이를 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뜨겁지도 않은지 커피잔을 움켜쥔 손까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네이트는 아주 곤란하다는 얼굴로, 내키지 않는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설마……롭이나 팀?”
네이트는 제발 이따위를 바라는 건 아니라고 해달라는 듯 간절한 표정을 했고, 천만다행으로 브라이언은 그 따위로 불릴 바에는 차라리 귀에 염산을 붓고 말겠다는 단호한 표정을 했다. 그리고 표정만큼이나 결연한 태도로 선언했다.
“그냥 지금까지처럼 불러주십시오, 중위님.”
네이트는 눈에 띄게 안심했다. 그리고 브랫 역시 왜인지 그 이유는 모르겠……다고는 말할 수 없다는 점이 브라이언에게는 크나큰 비극인, 브라보 2소대라면 누가나 알 수 있는 이유로, 겉으로는 무표정하지만 해병 수색대라면, 그리고 파병기간 내내 아이스맨이 소대장을 어떻게 쳐다봤는지 질릴 정도로 목격한 브라보 2소대라면 모르려야 모를 수 없게 아주 드러내놓고, 마치 전광판을 켜놓은 듯한 기세로 안도했다.
……브라이언은 정말이지 이 호모 에로틱한 수라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진심으로.
묘하게 어색한 분위기가 묘하게 불편해질 무렵, 윈 중사가 무전이 왔다며 중위를 불렀다. 네이트는 커피를 잘 마셨다고 루디의 어깨를 두드리고는-이때 중위를 부른 건 자신인데 왜 루디를 칭찬하냐며 레이가 투덜거렸다-트럭으로 갔다. 그리고 네이트가 무전기를 받아 드는 것과 둥시에 레이가 브라이언에게 깐죽거리기 시작했다.
“존나 떠서, 식히기까지 해서, 주둥이 앞에 처갖다 대도 먹지를 못해요, 처먹지를. 브라이언, 그냥 이대로가 좋은 거예요? 존나 중위님 앞에서 삽질하고 머리 쥐어뜯고 몸부림 치는 걸 사실은 즐겼던 거예요? 지저스! 이거 진지하게 물어보는 건데요, 브라이언 혹시 피가학성 변태였어요?”
“닥쳐, 변태 새끼야.”
“아니 변태는 자기가 변태면서 왜 죄 없는 레이레이한테 지랄이래, 지랄이.”
브라이언은 브랫, 레이, 월트, 포크, 루디, 파피 등을 노려보았다. 세상에서 제일가는 변태라고 비난하는 듯한 그 눈길에 해병들은 매우 불쾌하다는 표정을 했다.
“네놈 새끼들은 중위님이 이름으로 부르시는 게 아무렇지도 않냐?”
월트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했다.
“남들이 들으면 무슨 달링, 허니, 베이비라고 부르는 줄 알겠어요, 닥. 그냥 이름이잖아요. 다들 이름으로 잘 부르고, 닥도 우릴 이름으로 부르잖아요.”
“시끄러, 새끼야. 다른 새끼들이 이름 부르는 거 하고, 중위님이 이름으로 부르시는 거 하고 같냐?”
다행인지 불행인지-브라이언은 후자에 무게를 두고 싶었다-같다고 우기는 거짓말쟁이들은 없었다. 해병들은 그저 침묵을 지켰다.
“씨발, 중위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왔을 때, 심장 위로 송충이 백만 마리가 기어가는 기분이었어. 마음에도 손가락, 발가락이 있다면 아마 다 오그라들었을 거야. 아, 씨발. 생각하니 또 소름 끼치네. 네놈 새끼들 심장엔 털이 난 게 분명해.”
브라이언은 특히 너! 라는 강조를 담아 브랫을 보았다. 사실 시커멓고 땀내나는 전우들이 이름을 부르는 거하고 꽃같이 예쁜 중위가 이름으로 불러주는 건 느낌이 다르기는 했다. 간질간질하고 보들보들하고 몽글몽글하고, 가장 순수했던 시절의 첫사랑 느낌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 어떤 험난한 비바람도 굳건히 버티고 서서 보호해주는 등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죽음에 뛰어들라고 해도 망설임 없이 뛰어들 수 있을 것처럼 영혼을 자극하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그걸 날카롭게 지적하자 다들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레이는 남들이 할 말이 없을 때도 혼자서 반나절 이상을 떠들 수 있는 남자였다.
“씨발, 존나 로맨틱하지 말입니다. 남들은 천국의 정원에서 노래하는 작은 새의 깃털이 심장 위에 내려앉는 기분이라고 할 걸 닥은 송충이가 기어가는 것 같다고 하다니 존나 참신하지 말입니다. 그거 일반인은 잘 모르는 메디컬 스타일 로맨틱 코드인지 말입니다? 존나 고차원적이라 이해할 수가 없어. 그리고 물론 우리 중위님이 이 레이레이를 레이라고 부르는 거랑, 저기 짜게 식은 브랫이 레이라고 부르는 건 당연히 다르지 말입니다. 좀 간질간질하기는 하지만, 존나 좋은 건 사실이거든요? 좋은 걸 좋다고 하는 게 뭐가 잘못된 건지 말입니다? 그리고 월트 말대로 중위님이 우리한테 베이비, 달링, 허니라고……씨발, 나 우리 중위님이 나한테 베이비라고 하면 존나 그대로 승천할 것 같아, 다음에 존나 하지들 소굴을 혼자 씩씩하게 턴 다음에 중위님한테 상으로 베이비라고 불러달라고 해야지, 아무튼 어디까지나 이름으로 부르지 낯간지러운 호칭으로 부르시는 건 아닌데 왜 그렇게 유난을 떠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지 말입니다. 혹시 닥은 존나 남자다운 나머지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거부해서 평소엔 애인한테도 성으로 부르라고 하다가 침대에서만 이름으로 부르는 걸 허락했는지 말입니다? 그래서 중위님이 이름으로 불렀을 때, 침대 속 애칭으로 부르시는 것 같아서 그렇고 존나 꼬리에 불 붙은 고양이처럼 난리를 부렸는지 말입니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 정곡을 찔린 브라이언은 자신도 모르게, 그리고 자신의 뜻과 다르게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리고 그 반응에 남들이 할 말이 없을 때 반나절을 떠들 수 있는 레이가 말을 못하고 입을 뻐끔거렸다.
“어……음……진짜요?”
“닥쳐, 새끼야.”
인간이란 백인백색. 각자 추구하는 바가 있고, 독특한 버릇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러니 그 중 성격이 평범하지 않아서 남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게 지나치게 친밀한 행동으로 여겨져 못 견디겠는 자가 있다 해도 아주 이해 못할 건 아니지. 그래, 브라이언에게 자신의 이름이란 애인이랑 침대에서 다 벗고 가장 친밀한 시간을 나눌 때만 쓸 수 있는 그 무언이란 말이지. 뭐,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소대원들은 그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그렇구나 하고 넘기는 해병답게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애인이랑 부인이 있는 소대원은 문득 생각해 보았다. 애인이랑 가장 격의 없는 순간을 보낼 때 부르는 애칭으로 자신을 부르는 중위의 모습을. 그리고 침묵에 빠졌다. 이어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런 다음 브라이언에게 동정의 시선을 보냈다. 레이조차 아주 상냥한 표정으로 브라이언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그랬군요, 브라이언. 존나 놀랐겠어요. 놀려서 미안하지 말입니다. 미리 말하지 그랬어요. ‘씨발, 내게 내 이름이란 내 애인이 날 빨 때만 부르는 그런 거란 말이다!’ 이렇게 말예요. 그럼 내가 우리 중위님한테 바람을 넣을 때 브라이언이라고 불러주십사고 바람을 넣었죠. 친근하게 불러달라고 하면 다들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하는 줄 알잖아요. 그런데 그게 씨발 애인이 헐떡대면서 부르는 애칭이었다니, 존나 소름이 돋기는 하네요.”
“닥쳐. 닥치라고. 자꾸 생각나게 하지마!”
브라이언은 자꾸 악몽 같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지 말라고 폭력을 동반한 중지 요구를 했고, 레이는 맞으면서도 낄낄거렸다.
“그래도 존나 희망을 버리지 말아요, 브라이언. 우리에겐 최후의 희망인 중사님이 계시지 말입니다. 요즘 브라이언이 삽질하는 걸 저 양반이 모를 리가 없고, 또 저격수 출신이라 눈이 존나 좋아서 조금 전 브라이언 표정이 썩어가는 것도 똑똑히 보셨을 거란 말입니다. 혹시 알아? 중사님이 브라이언의 고민을 깨끗하게 해결하실지? 중위님한테 사정을 듣는다면 닥에게 이름이란 핫하고 아찔하고 헐떡이는 그 무언가와 바로 연결이 된다는 것까지야 모르겠지만, 가끔 이름으로 불리는 걸 쑥스러워 하는 녀석이 있으니 성으로 부르라고 조언하실지도 모른다니까요? 희망은 끝까지 놓지 않는 새끼한테 찾아오는 법이지 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무전을 끝낸 네이트와 마이크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불만스러운 얼굴로 말을 하는 네이트의 말을 끝까지 들은 마이크가 소리 내어 웃더니 뭐라고 했고, 그러자 네이트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다시 마이크가 웃는 얼굴로 몇 마디를 더 하자 네이트는 살짝 눈을 흘기더니-흘겼다. 소대장이 눈을 흘겼다!-피식 웃고는 다시 소대원이 있는 쪽을 보았다. 그러더니 이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방탄 헬멧을 벗더니 활짝 웃었다.
“브라이언!”
브라이언은 맹세할 수 있었다. 심장이 얼어붙었다. 아니면 멈췄거나.
픽 중위는 정말이지 심장의 건강에 치명적이리만큼 위험한 사람이었다. 윈 중사가 뭐라고 했는지는 몰라도, 드디어 바람직하게, 사나이다운 적당한 거리감이 느껴지는 호칭으로 불러주는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꼭 저렇게 웃어야 할까? 아니, 저렇게 웃는 게 싫다는 뜻은 아니지만……맙소사, 제기랄. 소대장은 눈웃음까지 치고 있었다.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저러는 건지! 눈웃음이었다. 눈웃음! 브라이언은 눈웃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유혹적인 뉘앙스와 유능하고 개념 있는 장교라고 소대장을 정의한 기존 개념 사이를 어떻게 연결 지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뇌에 과부하가 올 지경이었다!
네이트가 점점 다가올수록 브라이언은 뇌신경 하나하나가 파직파직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머릿속이 하얗게 됐다. 그리고 조금 전에 얼어붙었던, 혹은 멈췄던 심장은 다시 힘차게, 조금 지나칠 정도로 힘차게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혹독하게 받았던 수색대 훈련 덕분에 브랫이 도끼눈을 뜨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눈꼬리를 부드럽게 휘며 웃는 네이트가 있었다. 다른 생각을 할 여유는 없었다.
“브라이언. 여기까지 어쩐 일입니까?”
그렇게 브라이언을 부르며, 네이트는 브라이언을 지나쳤다. 브라이언은 황당한 표정으로 네이트를 돌아봤다.
“네이트, 부상을 당했다는 소리를 들었어.”
“파편이 조금 스친 것뿐입니다. 설마 그것 때문에 오신 겁니까, 브라이언?”
소대원들의 시선이 브라이언을 따라갔다. 그러자 그곳엔 알파 중대의 중대장 패터슨 대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네이트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네이트는 패터슨에게 지금까지 소대원들이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웃음을 짓고 있었다. 패터슨은 네이트의 턱을 가볍게 쥐더니-그 순간, 브랫의 눈에서 시퍼런 불똥이 튀었다-고개를 살짝 돌려 얼굴에 붙인 밴드를 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군의관한테 보였어?”
“……브라이언. 전 이라크에 참전을 왔지 미인대회에 출전한 게 아니거든요? 위트머 소령님은 구를 땐 구르더라도 얼굴엔 상처를 내지 말고 구르라고 하시질 않나, 다들 왜 그렇게 제 얼굴에 민감하신 겁니까?”
패터슨이 피식 웃었다.
“이런, 6년 전 자기 얼굴을 지나치도록 잘 써먹던 어딘가의 아이비리그 신입생이 꼭 내가 알던 그 누군가가 아닌 것처럼 말하는군.”
패터슨이 웃음을 꾹 누른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자, 네이트가 키득거렸다. 픽 중위가 키득거렸다! 브라보 2소대원들은 충격과 경악에 휩싸여 입을 떡 벌렸다. 패터슨은 군의관에게 가봐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고, 네이트는 한숨을 쉬었다.
“어빈 대위가 한심하게 생각할 거예요.”
“하지만 네 얼굴에 흉터가 생기면 앤이 날 죽이겠지.”
작게 웃음을 터뜨린 네이트가 패터슨을 따라갔다.
그리고 어지간해선 말이 막히지 않는 레이조차 말문을 다시 트는 데는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패터슨 대위 이름이 브라이언이었나?”
다른 부대의 장교 이름까지 알 리가 없는 소대원들은 무거운 침묵을 지켰다.
“어……우리 중위님이랑 저 양반이 친한 건 알고 있었지만……그래도 저건……음…….”
레이의 반응이 이랬다. 그러니 다른 소대원들의 반응이야 말할 나위 없었다. 특히 브랫은 더욱 더. 아니 이 시점에선 그 누구보다 브라이언이. 지금 소대원들은 모두 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네이트가 패터슨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다는 그 말을 꺼낼 용기가 있는 소대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아, 씨발. 존나 비유가 이상하다는 건 아는데. 나 예전에 지금이랑 비슷한 기분 느껴본 적 있어. 우리 엄마가 지금 새아버지를 만났을 때였는데, 난 몰랐거든. 그런데 두 분이 데이트를 하는 걸 우연히 보게 됐어. 그때 느꼈던 좆 같은 기분이 지금 기분이랑 비슷했던 것 같아.”
큐팁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웅얼거렸다. 상병의 말대로 비유는 대단히 이상했다. 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현재 소대원들은 괴이쩍고 아주 기괴하기는 했지만, 뭐랄까, 엄마가 엄마인 것만이 아니라 여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그 복잡미묘하면서도 야릇한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정신이 우주 끝까지 날아간 기분이었다.
“그럼 중위님이 브라이언을 브라이언이라고 부르지 않았던 건, 이미 중위님한테는 다른 브라이언이 있었기 때문인가?”
레이는 중얼거렸고, 브라이언이지만 브라이언에게 밀려 브라이언이 될 수 없는 브라이언은 멀어지는 네이트와 자신이 아닌 다른 브라이언을 바라보며 입술을 실룩거렸다.
그리고 브라이언이되, 네이트에게 브라이언이 될 수 없는 브라이언은 그 이후 조금 더 비뚤어지고 시니컬해지고 입이 험해졌다. 소대원은 아무도 브라이언을 탓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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