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위님 중위님 꽃같은 우리들의 중위님 4
2012. 11. 29. 22:56
소심늘보 Generation Kill/꽃 중위님 시리즈 View Comments
※ 거친 언어 주의
* 당신의 입술이 너무 섹시한 탓 (4/4)
해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자 어둠이 사막을 빠르게 잠식했다. 험비 안에서 사건과 생각을 기록하던 종군기자 에반은 문득 펜을 멈추고 차창 밖을 보았다. 푸르스름한 어둠에 물든 격납고 입구 옆에 늘어선 탱크들. 버려진 탱크들을 응시하던 기자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도 이러지 않았어요? 그때도 정찰 없이 바로 비행장을 공격했었죠? 버려진 기지가 아니었다면 전투 시작과 동시에 몰살당했을 거라고 콜버트 병장님이 말했었는데, 왜 또 이런 무모한 공격을 한 거죠? 그리고 다른 부대는 왜 저쪽으로 이동하는 걸까요?”
험비 운전석 부근을 죄다 뒤집으며 무언가를 찾던 레이가 픽 웃었다.
“기자 양반. 모두의 친구 친절한 레이레이가 진리의 복음을 전할 때 어디 있었대요? 잠이라도 처자빠져 잤어요? 뭐, 그래도 레이레이는 상냥하니까 또 설명해주지 못할 것도 없죠. 자, 잘 들어봐요. 기자 양반, 이 뇌라는 녀석은 말이죠, 군대에서 나가야 생기는 녀석이란 말이지. 그 말이 무슨 뜻이냐, 군에 있다는 말은 즉 뇌가 없다는 말이랑 동의어란 말씀이라니까. 뭐, 솔직히 말해서 이 엿 같은 곳에서 굴러야 하는 데 뇌가 없다는 건 꼭 나쁜 건 아니지. 엿 같은 곳에서 엿 같이 구르는데 뇌라는 녀석이 머리에 무거운 엉덩이를 비비고 버티는 바람에 매일매일 이 엿 같은 꼬라지가 왜 이렇게 엿 같아야 하는지 엿 같은 고민에 빠진다고 생각해봐. 이 지옥이 더 지옥이겠어, 아니겠어? 그래서 똑똑하고 사려 깊고, 꼭 이 레이레이처럼 현명한 선구자가 이렇게 생각한 거지. ‘아, 이 엿 같은 새끼들과 엿같이 구르는 이 따위 엿 같은 데서 머리에 뇌를 붙들고 있어봤자 엿 같은 기분이 더 엿 같아질 뿐이구나. 지금은 빼뒀다가 나중에 군대에서 나갈 때 다시 집어넣어야겠다.’ 그리고 고개를 옆으로 싹 기울여서 귀를 두들겨 뇌를 탈탈 털어버린 거야. 뭐, 여기까진 좋았어. 문제가 아주 없다고는 할 순 없지만 그래도 머리가 훼까닥 돌아서 아군에 대고 총질하는 것보다야 나으니까. 그런데 뭐가 문제냐? 이 똑똑한 레이레이와는 반대로 어떻게 손볼 수 없을 정도로 장교새끼들이 바보라는 사실이 문제지. 우리 사병들이 뇌를 탈탈 털고 좀 살만해진 꼬라지를 보더니 옳다구나 하고 지들도 머리에서 뇌를 탈탈 털어버린 거야. 지저스. 생각을 좀 해보셔. 아니, 군대가 무슨 깡통 굴리기 양성소도 아니고 말이야, 사병도 머리가 텅텅, 장교도 머리가 텅텅, 그래서 내려오는 작전이랍시고 하는 지랄들은 죄다 씹머저리 짓거리. 아니, 이왕 그렇게 텅텅 비우는 걸로 밀어붙이려면 부대 옆에 태국 창녀촌을 만들면 좀 좋아? 그럼 머리도 텅텅, 거시기도 텅텅 균형이 딱 맞잖아, 아무튼 머리가 빈 새끼들은 그래서 문제라니까. 그러고 보면 우리 중위님은 참 불쌍하시지. 장교라고 주변에 있는 새끼들 머리는 텅텅 깡통 소리가 나는데 혼자 머리가 꽉꽉 차있잖아? 어쩜 우리 중위님이야말로 이 환상적인 다이어트 약이 필요할지도 몰라. 기자 양반, 기사를 쓸 때 말이죠, 이 말도 꼭 써요. 머저리 장교 새끼들이 깡깡 소리가 나는 병신 짓을 무수히 저질렀지만 제일 악독한 머저리 짓은 바로 우리 꽃 같은 중위님 얼굴에서 웃음을 마르게 한 거라고. 잔인한 새끼들. 사막이 왜 꼴리는데? 어딘가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 아니냐고. 물론 우리 중위님은 웃든 찡그리든 무표정이든 전부 예쁘지만 사람 마음이 그게 아니란 말이지. 이왕이면 예쁘면 좋겠고, 또 이왕 예쁘면 거기다 방긋방긋 꽃 같이 웃어주면 눈도 즐겁고 마음도 즐겁고 아주 흐물흐물 녹는 게 아니겠느냐고. 망할 머저리 장교 새끼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어요. 아마 그 새끼들은 매주 꼬박꼬박 허슬러랑 플레이보이를 특급으로 배송받아서 볼지도 몰라. 혹시 알아? 적스도 받아볼지? 그래서 지들은 아쉬운 게 덜하다고 우리 오아시스를 그 따위로 말려버린 거야. 야비하고 이기적인 새끼들. 딸치다가 콱 전갈한테 거시기나 물려버려라!”
입만큼이나 손을 부지런히 놀리며 침까지 튀기며 흥분하던 레이가 마침내 찾던 물건을 찾은 모양이었다. 마지막으로 위장복 주머니를 뒤지던 레이는 곱게 접힌 종이를 꺼냈고 발광하면서 좋아했다.
“오~ 재스민. 요 앙큼한 아가씨. 여기 숨어있었네. 사이코 트럼블리 새끼한테 잡힐까 봐 무서우셔쪄요? 이제 걱정 붙들어 매셔. 레이디의 젠틀맨, 핫하고 쿨하고, 테크니션인 이 멋진 레이 퍼슨 상병이 아가씨를 구출했으니까. 자, 이제 함께 가시죠. 봐요, 사막에 별이 반짝이잖아요. 바로 우리가 함께 사랑을 불태울 때가 됐다는 소리예요. 차가운 사막의 밤이 뜨겁게 이글거리도록 우리 화끈하게 놀아봅시다.”
레이는 차 밖으로 나가면서 브랫이 도색 잡지에서 뜯어준 사진에 쪽쪽 소리를 내며 입을 맞췄다. 그리고 험비 안에는 폭풍이 지나간 듯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눈을 끔벅이던 에반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트럼블리. 저게 무슨 소린지 알아듣겠어요?”
“퍼슨 상병님이 망할 다이어트 약을 먹었을 때는 절대로 말을 걸지 말라는 소리죠.”
브라보2 소대의 말썽꾼은 해병의 암묵적 금기 간식인 참스의 껍질을 까 입에 넣고 굴리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리고 왜 똥개를 쏘면 안 되는지 모르겠다며 투덜거렸다.
에반은 다시 수첩을 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글을 적었다. 툭하면 30시간 넘게 잠도 자지 못하고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레이가 항우울제 성분 때문에 입에 달고 다니는 다이어트 약 제조사 이름을 적고, 이어서 브랫, 트럼블리, 왈트는 그 제조사로부터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정신적 피해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쓰고 밑줄도 세 번이나 그었다.
*******
프라이버시 보호가 사막에서 피어난 수상식물 찾기보다 어려운 파병 생활이라고 해서 욕구가 일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니만큼 욕구는 더 강렬하게 일어났다. 그래서 군인들은 체면과 욕구 중에서 욕구를 선택했고, 레이는 그나마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전우들의 시선이 직접 닿지 않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재스민. 정말 다행 아냐? 그 사이코패스 꼬맹이는 아가씨랑 화끈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아이스맨을 어떻게 구슬려야 가엾은 개들에게 총질할 수 있나 그것만 생각하잖아. 그러니까 앞으로도 아가씨 상대는 쭉 나뿐일 거야.”
히죽거리며 레이가 걸음을 옮기는 비행장엔 이젠 어둠이 내려앉았고, 중대 본부와 브라보3 소대가 빠져나가 브라보2 소대의 차량밖에 남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본 레이는 그저 어깨를 으쓱거렸다. 머저리 엔시노맨이 오늘 저지른 머저리 짓이 부족해 또 머저리 짓을 저질렀나 보지. 머저리가 머저리 짓을 한다고 해서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지. 우린 우리 유능하고 멋진데다 부하들을 아끼고 예쁘기까지 한 소대장만 믿고 가면 되니까. 게다가 우리한텐 대대장도 끔벅 죽는 아이스맨도 있잖아? 잘될 거야. 머리 터질 정도로 고민해봤자 무엇하나 바꿀 수 없는 곳에선 머리를 굴리는 놈만 손해지. 비우자. 생각을 아예 하지 말고 머리를 텅텅 비우는 거야. 레이는 앞으로 한동안 자신에게 멋진 판타지를 선사할 사진 속 여인에게 입을 맞췄다.
“아가씬 숙녀가 되는 거라고. 자기 직업이 비록 이런 화끈한 사진을 찍는 멋진 직업이라지만, 대대 전체가 돌려보는 기자 양반 애인 사진을 생각해봐. 거기에 비하면 아가씬 수녀만큼이나 순결한 거야. 재스민~ 이 사랑스러운 아가씨. 자긴 정말 행운이야.”
음흉한 얼굴로 사진에 입을 맞추던 레이의 얼굴이 굳었다. 저쪽에서 분대장들과 의무병이 오는데 그 기세가 사뭇 형형해 레이를 불안하게 했다. 최악의 상황을 떠올린 레이는 겁을 먹었고, 창백해진 얼굴로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오, 하나님. 제발. 거룩할사 띨띨함이 구름을 뚫는 머저리 갓파더가 해병대의 품위를 위해서랍시고 야외딸을 금지한 것만 아니게 해주세요. 제발, 제발.”
브랫의 멱살을 틀어쥐고 끌고 온 포크가 험비 옆에 팽개치듯 브랫을 거칠게 놓자, 용변도 전략적으로 해결하는 유능한 해병 브랫은 한쪽 발가락 끝만 꿈의 세계 경계 밖으로 걸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험비에서 장비를 꺼내 야전삽으로 구덩이를 파더니 침낭을 깔고 그 안으로 기어들어가 바로 잠들었다. 그 꼴을 보는 분대장들의 눈빛은 더 험악해졌다.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뛰어난 저격수 파피는 표적을 보는 눈초리로 잠든 전우를 노려보았고, 멍청하기론 대적할 상대가 없어 중대 위로 포격 요청을 한 중대장에게 덴져 클로스가 무엇인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던 로벨은 저걸 반드시, 꼭 살려두어야 하나 고민하는 얼굴을 했다. 호기심이 인 레이가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으려는 찰나, 브라이언이 으르렁거렸다.
“레이.”
“넵!”
살기에 눌린 레이는 자신도 모르게 자세를 똑바로 했다.
“이 새끼 일어나면 똑똑히 전해. 앞으로 한번만 더 나자빠져 처자지 않고 험비 밑에 기어들어가 망치 들고 씹지랄을 떨면 그 망치로 대가리를 아예 곤죽으로 으깨버릴 거라고.”
과연 중대장의 면전에 대고 ‘네놈 새끼는 머저리 십새끼다.’라고 퍼붓는 브라이언의 패기. 대대 최고로 정신이 나갔다는 평을 듣는 폭풍수다의 달인도 그 서슬 퍼런 기세에 질려 아무 말도 못 했다.
포크도 으르렁거렸다.
“정신 나간 머저리새끼. 백인쓰레기 새끼. 어디에 대고 씹지랄이야, 씹지랄이. 케이시 케이섬 그 후빨 새끼가 봤어 봐. 기강이 어쩌니, NJP가 저쩌니 아주 물 만나서 우리 중위님한테 씹지랄을 떨어댔을 걸? 아주 미친 새끼.”
포크는 바닥에 갈색 침을 뱉었고, 파피는 저격 충동을 정말 억누르기 어렵다는 표정을 했고, 로벨은 구덩이를 파 생매장을 시키고 싶다는 충동을 참기가 어렵다는 표정을 했다. 레이는 두려움과 호기심 때문에 오금이 저릴 지경이었다.
그때 발소리가 들렸다. 마이크 윈 중사를 본 레이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중사님, 우리 용맹한 아이스맨이 도대체 무슨 짓-”
“레이.”
“네.”
마이크가 말을 잘랐다. 간신히 트였던 레이의 숨통은 다시 쪼그라들었다.
“앞으로 브랫의 수면시간을 잘 체크해.”
불쌍한 레이는 순종적인 표정을 하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이크가 레이를 응시했다. 이번엔 숨통만이 아니라 염통도 같이 쪼그라들었다.
“한 번만 더 그딴 병신 씹지랄을 떨면 좆잡고 대가리를 똥 구덩이에 처박힐 거라고 똑똑히 전해.”
마이크 윈 중사. 일명 브라보2의 온화한 엄마. 언제 어떤 때라도 자상한 표정을 누그러뜨리지 않는 마이크는 협박할 때조차 표정이 부드러웠다. 비록 그 시선의 온도는 들끓는 용암을 얼려버릴 것처럼 싸늘했을지라도.
2소대의 분대장들과 의무병, 그리고 부관은 잠에 깊이 빠진 1분대의 분대장을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저 시선에 비하면 낙타를 몰던 어린애를 쏜 트럼블리에게 쏟아졌던 시선은 아버지의 날에 정성스레 만든 종이꽃을 내미는 다섯 살짜리 어린 아들을 보는 시선이었다.
“엔시노맨 같은 새끼.”
브라보 중대 최고의 욕을 마지막으로 분노로 가득 찬 남자들이 돌아섰다. 마침내 발소리가 들리지 않자, 레이는 긴장해서 얼어붙었던 숨을 그제야 뱉었다. 그리고 세상 모르게 잠든 브랫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브랫. 사랑하는 병장님. 보아하니 아무래도 우리 꽃 같은 중위님 앞에서 마음속에 숨겨왔던 어메이징 빅 핫 쇼킹 에로틱 호모 에로틱 쇼쇼쇼를 하신 모양이지 말입니다.”
사진을 곱게 접어 다시 주머니에 넣은 레이는 손으로 입을 막고 옆으로 털썩 쓰러져 앉으며 훌쩍거리는 시늉을 했다.
“너무하시지 말입니다. 병장님의 둘도 없는 친구, 착하고 다정하고 상냥하고 똑똑한데다 길도 잘 찾는 레이레이가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아시면서, 이 레이레이가 없는 데서 그렇게 멋진 쇼를 하셨단 말씀이지 말입니다. 정말 무정하시지 말입니다. 막 서운하지 말입니다. 저 삐쳤지 말입니다. 병장님이 빅 게이 엘 흉내를 아흔아홉 번을 한다 해도 풀리지 않을 정도로 삐쳤지 말입니다. 저 막 친정으로 돌아가고 싶지 말입니다.”
잠든 브랫 옆에서 레이는 지치지도 않고 혼자 계속 떠들었다. 그리고 일련의 사태를 쭉 지켜본 트럼블리는 에반을 돌아보며 삐죽거렸다.
“역시 상병님은 호모가 맞았어요. 그리고 여기 2소대 작자들은 죄다 호모였나 봐요. 다 미친 놈들이에요. 그리고 다 미치긴 미쳤는데 제일 미친 놈은 아무래도 퍼슨 상병님 같고요.”
에반은 레이를 꽤 좋아했다. 말도 안 되는 궤변도 듣다 보면 꽤 흥미로웠고, 쉴새 없이 쏟아지는 수다의 홍수에 갇혀있노라면 지옥도 이런 지옥이 없다 싶다가도, 레이의 수다가 없었다면 아마 진작에 극도의 긴장으로 종군기자 노릇을 포기했을지도 몰랐다. 아무튼 에반은 레이를 좋아했다. 하지만 트럼블리의 말을 부정할 수 없는 현실 앞에 그저 어색한 웃음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사막의 달이 높게 떠올랐다. 그리고 그 아래 대꾸하는 이 없는 레이의 수다는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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