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위님 중위님 꽃같은 우리들의 중위님 5
2012. 12. 6. 19:55
소심늘보 Generation Kill/꽃 중위님 시리즈 View Comments
* 막둥이랑 중위님이 수상해 1
*거친 언어 주의
브라보 중대의 집결기지로 사용하는 담배 공장으로 2소대의 험비들이 진입했다.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타이어가 멎고 이어 거친 엔진 소리가 멈췄다.
"망할!"
험비에서 나가려던 브랫은 방탄 문을 세게 치고 다시 좌석에 털썩 앉았다. 1분대 분대장이 자비까지 들여가며 개조하고 수리한 험비를 얼마나 끔찍이 아끼는지 잘 아는 종군기자 에반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동시에 얼른 펜과 수첩을 꺼냈다. 트럼블리와 왈트는 시내에서 돌아오는 내내 살벌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문 브랫의 눈치를 보며 쩔쩔맸다. 운전병 레이는 험비는 물론이고 담배 공장을 얼려버릴 기세로 인상을 쓴 브랫을 보고 고개를 젓더니 뒷좌석의 두 해병에게 내려도 좋다고 눈짓을 하고는 브랫에게 말을 붙였다.
"브랫. 우리 용감무쌍한 병장님. 그만 좀 계집애처럼 구시지 말입니다. 지금 브랫 얼굴 완전 네일 숍에 가지 못하게 했다고 골난 트로피 와이프 같은 거 아시는지 말입니다."
브랫이 눈을 부라렸지만, 레이는 위축하기는커녕, 실실 웃으며 담배를 내밀었다.
"자자, 눈에 힘줘봤자 우리 멋쟁이 병장님이 똥 쌀 때 힘주는 얼굴이랑 별 차이 없으니 괜히 눈구멍이랑 똥구멍에 힘 빼지 마시고 담배나 빠시지 말입니다. 딥(잇몸에 발라 냄새를 맡는 담배) 가격도 올랐는데 모처럼 담배 공장에서 죽칠 때 실컷 피워둬야지 말입니다. 아니면 다이어트 약 드릴까요? 이제 조금밖에 없지만 싸랑하는 병장님을 위해서라면 까짓 거 탈탈 털 수 있지 말입니다."
"레이."
"넵!"
"닥쳐라. 제발 좀."
레이는 지금까지 같이 지내놓고도 아직도 그 헛된 희망을 버리지 못했느냐는 표정으로 눈을 반짝거렸고, 브랫은 한숨을 쉬었다.
"불."
결국, 담배를 입에 문 브랫이 무뚝뚝하게 내뱉자 불을 붙여준 레이가 신나게 떠들기 시작했다. 에반은 역시 이 두 사람은 30년 차 부부 같다는 평가를 하고 밑줄을 그었다. 동성결혼 합법시절 이전에 동성 결혼을 올린 처지가 된 줄 알 리가 없는 브랫은 여전히 굳은 얼굴로 깊이 들이마신 연기를 천천히 내뿜었다.
이라크전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대대장은 까맣게 잊은 모양이지만 이 부대는 해병 수색대였다. 한 명을 양성하는데 백만 달러가 드는 해병 수색대. 그렇게 어마어마한 세금을 퍼부어 공수 훈련, 잠수 훈련, 산악전투 유격전, 생존 훈련 등을 마친 백만 달러의 사나이들을 이끄는 제1 해병 수색대대 대대장 페란도 중령은 부대에 수색 임무가 아닌 특공 임무를 줬을 때, 세금과 인적 자원의 낭비라며 이의를 제기하기는커녕 사령부의 명령에 어떻게 불복종하겠느냐고 꼬리를 쳤다고 했다.
브랫은 불만이었다. 수색대로서 자긍심이 강하고 여러 번 공을 세워 훈장까지 받은 브랫은 내려오는 명령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명령에 따랐다. 여긴 까라면 까고 구르라면 굴러야 하는 군대니까. 미사일을 나르는 택배기사 노릇도 했고, 정찰도 없이 적의 부대를 공격하는 자살 특공대 노릇도 했고, 도로도 봉쇄했다. 윤활유가 없어 툭하면 고장 나는 자동유탄 발사기 Mk19로 무장한 험비에 타고.
어쩌다 정찰 임무를 수행할 때도 있기는 했다. 여자와 아이, 노인밖에 없는 비무장 마을이라고 보고를 올렸더니 다음 순간 미사일로 마을을 날려버리는 꼴을 봐야 해서 그렇지. 몸보다 정신을 힘들게 하는 일은 끊임없이 일어났다. 경고 사격이니 하는 교전 규칙을 모를 것이 분명한 민간인을 사살해야 했을 때도 잦았다. 왜 이런 짓을 해야 하나. 그 힘든 훈련을 받은 게 고작 이따위를 위해서였나. 이 꼴을 보려고 군대에 붙어있었나 회의가 치밀었지만 그래도 참았다. 그랬더니 이젠 점령군으로서 치안 유지도 하라고 거리로 내몰았다. 이쯤 되면 해병 수색대로서의 자긍심이 쩍쩍 갈라져 부서져 내리다 못해 가루가 될 것 같았지만 그래도 철의 의지력으로 버텼다. 적어도 망가진 탱크 위에서 노는 아이들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았던 놈들보다야 나았으니까. 그리고 민간인을 위협하다 사살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도우라는 명령이었으니까. 그랬는데. 그랬는데!!!
"이 새끼 주둥이는 왜 또 이렇게 튀어나왔냐?"
1분대 부분대장 에스페라 병장이 와서 레이가 권한 담배를 입에 물며 브랫을 턱으로 가리켰다.
"오늘 모처럼 우리 분대장님이 네일 숍을 찾았지 말입니다. 그런데 그만 담당이 비번이라 허탕을 졌지 말입니다. 그래서 섬세하고 예민한 우리 아이스맨이 아주 깊은 상심에 빠지셨지 말입니다."
브랫이 노려보자 레이는 히죽 웃었고, 포크는 담배 연기를 뿜으며 고개를 저었다. 뒷좌석에서 생각에 잠겼던 에반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미쉬가 뭐라고 해서 이맘(이슬람교 교단 조직의 지도자)이 미국을 돕는 게 배교 행위라고 하는 걸까요?"
브랫이 미간을 다시 구겼다.
"기자 양반, 그야 뻔하죠. 미쉬가 수염 난 영감탱이들을 찾아가 이렇게 주절거렸겠지. '요, 친구들. 물이 급하지? 얘네가 물 준대. 그런데 너네 그거 알아? 아메리카의 위대한 정신이 바로 기브 앤 테이크야.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지. 얘넨 공짜가 없는 삭막한 세상에서 사는 불쌍한 놈들이거든. 뭐? 줄 게 없어? 걱정 마셔, 내가 다 해결 방법을 알려줄 테니까. 내가 같이 다녀서 아는데 얘네 지금 진짜 존나 굶주렸어. 정말이야. 염소 엉덩이에도 헐떡거릴 정도라니까? 그러니까 내일 이 친구들이 물탱크를 가져오면 너넨 딸이나 마누라 손을 잡고 와서 물이랑 바꾸면 돼. 기브 앤 테이크. 깔끔하지? 비바 아메리카.' 이 지랄을 떨었을 거라고요."
그 거침 없는 입담에 에반은 고개를 저었고, 포크는 낄낄거렸다.
"그런데 정말 후세인씨가 바스당의 첩자일까요?"
에반의 목소리에서 아쉬움이 뚝뚝 떨어졌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미쉬와 함께 다녔던 23일보다 후세인과 함께 다닌 하루 동안 이라크의 실상과 미국과의 문화 차이를 훨씬 정확하게 많이 알 수 있었으니까. 눈에 빤히 보이는 엉터리 통역을 하고 현지인에게서 끊임없이 뇌물을 뜯던 미쉬가 시장의 호객꾼이라면 부대를 찾아와 통역을 자원하고 고급 영어를 구사하는 후세인은 대학교수 같았다.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악했고, 정확하고 알기 쉬운 비유를 들었다. 소대는 후세인과 함께 시내를 돌며 주민의 요구를 듣고 다음 날 모스크를 찾아가기로 했다. 중무장한 외지인들이 숨어들어 밤마다 발포하는 문제 외에도 이슬람권에서 구호 활동이든 치안유지 활동이든 뭔가를 하려면 이맘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니까. 하지만 출발 준비를 마친 소대를 기다렸던 건 이라크를 싫어하는 쿠웨이트 통역사 미쉬의 재등장이었다.
바그다드 시민이 1주일 동안 가장 절실하게 요구한 건 식수였다. 하지만 브라보2 소대가 식수 탱크를 끌고 시내로 갔을 때, 이맘은 거리를 쩌렁쩌렁 울리는 스피커를 통해 미군에게 어떤 협력도 하지 말라고 경고했고, 시궁창에서 구정물을 길어 마시던 사람들은 빈 물통을 들고 멀찍이 떨어져 눈치만 봤다. 결국, 아무도 물을 받아가지 않았다. 돌아오며 소대원들은 무능한 지휘부 때문에 진창을 구르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젠 사기꾼 통역가 때문에 헛짓거리도 한다며 툴툴거렸다. 그리고 그 중심에 수색 임무는 아니지만 적어도 사람들을 돕는 일이라고 기대했던 브랫 콜버트 병장이 있었다.
점점 살벌해지는 브랫을 보며 포크가 혀를 찼다.
"레이디 콜버트. 그만 얼굴 좀 푸시지? 그렇지 않아도 살랑살랑 봄바람이 부는 말랑한 얼굴로 샐샐거리니 소대 분위기가 아주 죽여주거든. 이래서 백인 새끼들이란. 조금만 수틀리면 팩 토라져서 꿍하지. 속이 쪼잔해 터진 네놈들이 세계를 지배하기 때문에 현실이 이렇게 시궁창인 거라고."
포크가 빈정거렸지만 브랫은 꿋꿋하게 주변을 절대 영도로 떨어뜨리는 냉기를 풀풀 풍겼다. 그리고 '아무나 걸려라, 확실하게 조져주마'라고 쓰인 전광판을 머리 위로 켰다. 포크는 혀를 찼다. 아이스맨 좋아하시네. 이럴 때 보면 브랫은 영락없이 미운 세 살이었다. 결국, 포크는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새꺄. 작작 좀 하라니까. 까놓고 말해서 네놈 속이 더 쓰리겠냐, 우리 중위님 속이 더 쓰리겠냐?"
네이트가 거론되자마자 브랫은 어깨를 움찔거렸고, 포크는 기세를 몰아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엔시노맨 그 머저리 새끼가 주민을 도우랄 땐 언제고, 또 구호활동 명령은 내려오지 않았다고 뻐팅기는 바람에 중위님이 직접 보급 중대로 가서 거기 중대장을 설득해 식수 탱크를 확보하셨잖냐. 부대 이동 전에 주민한테 식수라도 주려고 그 고생을 하신 게 헛수고가 됐는데 우리 중위님이 투덜거렸냐? 중위님은 내색하지 않으시고 그냥 속으로 삭이시는데 네놈 새끼는 그깟 왔다갔다 드라이브 좀 공쳤다고 삐죽대냐? 에라이-"
브랫에게서 독기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브라보 중대 2소대 소대장 네이트 픽 중위를 향한 소대원의 충성심과 신뢰는 절대적이었다. 전장에서 지휘관이 부하들로부터 진정한 복종을 끌어내려면 두 가지 조건에 전제되어야 했다.
<이 사람이라면 자기 명예욕이나 무능함으로 우릴 개죽음으로 몰아넣지 않겠구나.>
<이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닥쳤을 때 자기 혼자 살겠다고 발 빼지 않겠구나.>
네이트는 온몸으로 두 조건을 지켜냈다. 다른 장교들이 부하를 죽음에 몰아넣고, 공을 가로채고, 자기 죄를 덮어씌울 때 네이트는 말 그대로 소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 네이트가 부하들에게서 가로채는 것이 있다면 그건 두 가지뿐이었다. 바로 혼란과 죄책감.
지휘부를 차지한 장교들은 머리도 나쁘고 현실 감각도 없는 주제에 공명심만 높아 전장에서 직접 굴러야 하는 사병들은 죽을 맛이었다. 어이없는 작전 때문에 많은 사병이 혼란에 빠졌고, 최소한의 도덕심조차 무너진 현실에 죄책감에 빠져 염세적이 되었다. 도로 봉쇄 중에 다섯 살도 되어 보이지 않는 소녀를 사살한 찰리 중대만큼은 아니어도 브라보2 소대 역시 끔찍한 짓을 많이 했고, 그 후유증을 겪었다. 하지만 소대원들은 다른 어떤 부대보다 침착했고 강인하게 버텼다. 소대장 덕분이었다.
네이트는 무서우리만치 똑똑한 사람이었다. 이 전쟁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모를 리가 없었다. 탐욕으로 일으킨 전쟁과 불필요한 전투, 탁상공론과 비현실적인 망상에서 나온 작전과 끔찍한 결과. 누구보다 이 어이없는 실상을 똑바로 보고 있을 터였다. 동시에 군인이 양심 때문에 자기 방어를 망설이거나 하달되는 명령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기 시작하면 전사하거나 영창으로 끌려간 후 불명예제대를 하는 길밖에 없다는 사실도 잘 알 것이다. 장교란 책임을 지는 자리였고, 네이트는 나이는 어려도 진정한 장교였다.
목숨을 걸고 치렀던 전투가 무의미한 소모전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허탈해하는 소대원이 있으면 보이는 사실이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적에게 혼란을 주려는 작전을 수행했다, 크게 전략적으로 보면 우리 소대는 제 몫을 훌륭하게 해냈고, 넌 절대로 헛고생을 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달래며 혼란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민간인을 사살하고 충격에 빠진 소대원에게는 자네 잘못이 아니다, 자네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다음엔 좀 더 나은 방법을 찾아보자. 이렇게 다독였다.
양심이 비난하는 죄책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끈질기게 괴롭혀 정신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지만, 존경하는 상관이 듣고 싶은 말을 이렇게 해주면 그 말에 매달릴 수 있다. 정신이 무너지기 직전 '내가 옳은 일을 하지는 않았어. 하지만 난 군인이야.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어.' 이렇게 추스를 수 있다.
그렇다고 네이트가 정의와 불의를 가리지 않는 꽉 막힌 군인이냐면 그건 아니었다. 단지 이 젊은 장교는 자신의 신념 문제에 다른 사람의 생명을 끌어들이지 않을 뿐이었다. 그것도 명령 앞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소대원들의 목숨을.
그렇게 소대원에게서 가져간 혼란과 죄책감을 네이트는 혼자 끌어안았다. 그것들이 어떻게 손톱을 세워 아직 어린 이 장교의 영혼을 어떻게 할퀴는지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선임 하사관 윈 중사라면, 가장 깊이 들여다보는 사람은 브랫이었다.
브랫은 이맘의 경고가 쩌렁쩌렁 울리는 거리에서 움츠렸던 바그다드 시민과 음흉한 표정으로 벽에 기대 담배를 피우던 미쉬를 보던 네이트의 허탈한 표정을 떠올렸다. 소대 차량을 집결 기지로 귀대 명령을 내린 네이트는 소대와 함께 돌아오지 않았다. 보급 중대로 귀대할 급수 탱크 트럭에 오르던 네이트의 굳은 얼굴을 생각하니 브랫은 더는 화를 낼 수 없었다.
"다 병신 같아."
말은 그랬지만 브랫의 분위기가 완전히 누그러졌다는 것을 에반도 알 수 있었다. 레이는 엄지를 치켜들며 낄낄거렸다.
"오올- 과연 놀라운 네이트테라피 효과. 여러분, 지쳤습니까? 힘들고 짜증 나죠? 살기 싫죠? 그럴 땐 브라보2의 존나 끝내주는 소대장 네이트 픽 중위를 떠올려 보세요. 플러스 파장 효과가 끝내줍니다. 사기 아니냐고요? 천만의 말씀. 우리 소대장님으로 말씀드리자면 그 이름이 나오는 것만으로 천하의 아이스맨을 흐물흐물 녹여버릴 정도라니까요. 아, 존나- 기자 양반, 난 말이죠. 어느 날 우리 중위님이 '제군들. 소대의 완만한 분위기 조성을 위해 아이스맨과 결혼하기로 했다.' 이러신다면 말이죠, 꽃 같은 우리 중위님의 위대하고 거룩한 희생정신에 존나 뜨거운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무릎 꿇고 당장 우리 중위님을 성자로 추대해야 한다고 교황한테 매일 편지를 쓸 거예요. 그리고 남은 소대원 21명을 모아 병장님 멱을 딸 암살단을 조직해야지. 나쁜 브랫, 못된 브랫. 아무리 병장님이라도 우리 중위님을 혼자 독차지하려는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지 말입니다. 파피 병장님도 그때쯤이면 완쾌할 테니 우린 중사님이랑 병장님 이렇게 존나 섬뜩한 저격수도 두 명이나 있다고요."
레이의 너스레에 포크도 낄낄거렸다.
"얌마, 우리 중위님이 왜 이런 똥 폭탄을 떠맡냐? 그냥 '제군들. 이 새끼 목줄 없이 다녀서 안 되겠다.' 이러시고 존나 튼튼한 목줄이랑 커다란 개집을 마당에 들이시면 상황 쫑인데."
레이는 맞장구를 터뜨리며 웃다가 에반을 돌아봤다. 어느덧 몰려든 소대원들도 박장대소를 했다.
"기자 양반, 지금 존나 호모에로틱하다고 생각했죠. 대대장도 한 수 접고 들어가는 아이스맨이 중위님한테는 땡볕 아래 아이스크림처럼 흐물거리는 게 존나 게이 같다고 생각할 거야. 그런데 그게 아녜요. 사실 우리도 전부 중위님만 보면 철판 위의 솜사탕처럼 흐물거리니까. 지저스. 우리 중위님은 너무 멋있어. 파피가 존나 게이라서 우리 중위님이 최고로 멋진 소대장이라고 노래를 부른 게 아니라니까. 기자 양반도 눈이 있으면 한 번 봐요. 어디 우리 중위님만한 소대장이 있나. 멀리 갈 것도 없이 옆 소대 캡틴 아메리카만 봐도 충분하지. 와, 씹. 나 진짜 그 찐따 대위 새끼가 우리 중위님보다 여섯 살이나 더 처먹었다는 걸 믿을 수가 없다니까? 난 말이죠, 그 새끼가 전투 전 증후군, 전투 중 착란증, 전투 후 후유증을 아주 골고루 가지가지 꼬박꼬박 일으키는 꼬라지를 보면 존나 우리 해병의 어두운 미래도 같이 보이는 것 같다니까? 엔시노맨 머저리 새끼한테선 지도를 빼앗아야 하고, 캡틴 아메리카 상병신한테선 무전기를 빼앗아야 해. 툭하면 전체 회신을 열고 징징 짜고 발작을 일으키는데 그때마다 콱 핸들을 돌려 험비로 박아버리고 싶다니까. 불쌍한 코커 병장님. 그 나이에 병장까지 올라간 존나 유능한 해병인데. 병신 새끼 하나 떠맡는 바람에 우리 병장님 군 생활이 꼬여버렸어. 아주 존나 꼬여버렸어. 진짜 그 얼굴 어디가 23살이냐고. 불쌍한 코커 병장님은 캡틴 아메리카 지진아 새끼가 싼 똥을 치우다 25살도 채우지 못하고 늙어 죽을 거야."
숨을 쉬느라 잠시 말을 멈췄던 레이가 다시 말을 이었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 중위님? 끝내주지. 작전 전엔 상황이랑 주의 사항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격려하고, 전투 중에는 그 쩔어주는 목소리로 박력 넘치고 침착하게 지휘하고, 아, 내가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말야, 나나 이 무전기 새끼나 모래를 처먹는 건 똑같거든. 스피커에도 모래가 존나 들어가서 누가 지껄이든 아주 사포로 갉아대는 것처럼 지직거리는데 왜 우리 중위님만 그 와중에서도 은쟁반에 옥구슬을 굴리지? 이 무전기 새끼가 혹시 호모라서 우리 중위님한테 존나 반했나? 뭐 하긴 누구든 우리 중위님한테 반하지 않을 수 있겠어? 무전기 새꺄, 너도 보는 눈이 꽤 높구나, 새끼야.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아, 그래 전투 중에 시발, 중위님 날 가져요 하고 소리치고 싶을 정도로 쩔어주게 지휘하시고 전투가 끝난 다음엔 혹시 빌빌거리는 새끼들이 있나 꼭꼭 확인하잖아요. 캡틴 아메리카 저 병신은 코커 병장님이 다 잡은 포로에게 숟가락만 날름 올려 그 공을 지가 홀랑 처먹고, 포로한테 대검은 지가 휘둘러 놓고 병장님이랑 레드맨을 직위해제 하게 만들었잖아? 그런데 우리 중위님? 기자 양반, 진지하게 물어봅시다. 우리 공을 가로채고 자기 죄를 우리한테 뒤집어씌우는 우리 소대장님을 상상이나 할 수 있어요?"
소대원들의 시선이 에반에게 쏟아졌다. 위협적인 인상의 해병 수색대원들이 눈까지 반짝이며 응시하자 에반은 마른 침을 삼켰다. 하지만 레이의 말은 옳았다.
그 치열했던 무아파키아 교량의 전투 당시 에반도 현장에 있었다. 함정에 빠진 소대의 차량이 뒤엉키자 매복했던 적들이 기다렸다는 듯 양쪽에서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아군 차량과 방해물 때문에 험비는 전진도 후진도 할 수 없었다. 방탄벽에 총알이 튕기는 소리를 들으며 에반은 죽음을 각오했다. 적들은 대전차 로켓으로도 공격했다. 한 발, 단 한 발만 명중해도 끝장이었다. 지금껏 살아온 인생이 눈앞에 펼쳐지고 애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끝내 애인의 사진을 되찾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생각하던 그때였다. 무전기에서 중위가 걸어서 이동한다는 고함이 터졌다. 퇴로를 확인하고 험비를 빼내기 위해 네이트는 트럭에서 내려 험비와 험비 사이를 뛰어다니며 직접 우회시켰다. 섬뜩한 소리를 내며 총탄이 귀를 스치는 그 집중포화 지역에 중위는 단호한 얼굴로 뛰어들었고, 결국 소대의 모든 차량을 포격지대에서 무사히 빼냈다. 트럭으로 다시 뛰어가는 중위의 뒷모습을 보며 트럼블리는 끝내준다고 환호했고, 레이는 우리 중위님이 미쳤다고 소리를 질렀다. 브랫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중위가 트럭에 무사히 오를 때까지 숨조차 쉬지 못했다. 에반 역시 중위의 행동이 제정신이 아니라는데 동의했다. 그리고 만약 전장에 나가야 한다면 중위의 지휘 아래로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전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죽었으니 총 몇 발을 더 맞는다고 변하는 건 없다고 자기 암시를 걸었죠.'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포화 속으로 뛰어들었느냐고 나중에 질문하자 네이트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른바 데드 맨 워킹 이론이었다. 에반은 혀를 내두르며 아주 용감한 행동이었고, 소대원들이 모두 네이트를 자랑스러워 한다고 전해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도 구해준 소대장에게 진정한 지휘관이라며 탄복했다. 하지만 젊은 지휘관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제가 제대로 된 지휘관이었다면 애초에 소대를 그런 위험에 빠뜨리지 말아야 했어요. 무모한 지시라는 걸 알았을 때 거부했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고, 결국 제 소대원 중 두 명이나 부상을 당했습니다. 전 칭찬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괴로워하는 네이트를 보며 에반은 인정했다. 난 정말 이 중위에게 반했구나. 나보다 열다섯 살 어린 이 젊은 장교는 앞으로 내가 이상적인 장교를 생각할 때 기준이 되겠구나.
마틸다 캠프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에반은 네이트에게 호감을 느꼈다. 종군 기자로 온 에반에게 네이트는 장교가 아닌 사병들과 함께 지내야 진정한 실상을 알 수 있다고 조언했고, 에반은 그 조언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조언은 옳았다. 내려보면 알 수 없었을 현실이 올려보니 너무나도 분명히 잘 보였다. 자료가 쌓이고 시간이 지나며 에반은 기사로 그치지 않고 여기서 보냈던 시간을 토대로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런 기회를 준 네이트에게 감사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병들과 함께 다니다 보니 제대로 된 장교가 얼마나 드문지 사무칠 정도로 절감했고, 네이트에게 보내는 소대원들의 마음은 어느덧 에반의 마음까지 물들였다. 호감은 존경과 애정으로 깊어졌고, 레이가 농담으로 중위의 팬클럽을 창단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 손을 번쩍 들어 팬클럽 입단을 희망했다. 스물다섯 살의 중위는 기본적으로 전쟁에 회의적인 입장인 기자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그런데 그런 중위가 부하를 배신한다? 에반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고, 레이는 그것 보라며 기세가 등등해졌다.
"기자 양반, 브라보3 새끼들이 제일 걱정하는 게 뭔지 알아요? 바로 캡틴 아메리카 저 병신 새끼가 머저리 짓 한다고 설치다 소대를 개죽음으로 꼴아박을 거라는 거예요. 아주 근거 없는 걱정도 아니지. 우리? 머저리 씹등신 백치 윗대가리들 때문에 우리 중위님 다칠까 봐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난다니까. 뭐, 이 병신 같은 전쟁통 속에서 우리도 단체로 저승행 고속버스 티켓을 끊을 수도 있겠지만, 이 레이레이가 장담하건대 다른 부대 새끼들 얼굴이 '아, 씹. 저 등신 장교 새끼랑 함께야.' 이렇게 썩어서 악마 새끼들이 이 썩어 터진 얼굴들을 추수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존나 고민할 때 우린 '씹병신 새끼들아! 우린 중위님이 계신다. 악마 새끼든 호모 천사든 다 덤벼! 우린 소대장님이랑 같이 있다고! 겟썸!' 이러면서 천국이든 지옥이든 싹 쓸어버릴걸? 존나 호모 에로틱 게이스럽긴 하지만 우리 중위님이 저렇게 이쁘고 박력 쩔고 유능한데다 개념까지 가득 찼는데 어쩌겠어? 아, 중위님 빠돌이가 되는 게 내 운명이었구나, 이렇게 받아들여야지."
소대원들이 야유했고 에반도 웃었다.
"어, 웃으셔? 믿지 못하는 모양이지? 얌먀, 너희 새끼들도 안 그런 척하는 거 아니다. 그리고 닥, 아닌 척 발 빼지 마요."
브라이언이 왜 자길 걸고 넘어지느냐며 소리를 버럭 질렀지만 레이는 깔끔하게 무시했다. 그리고 에반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내가 놀랍고도 충격적인 비밀 하나 말해줄게요. 저기 우리 존나 쿨한 의무병님이 평소 중위님한테 되게 퉁퉁거리잖아요. 꼭 지는 중위님 빠돌이가 아닌 척하면서. 그런데 그렇게 툴툴거리는 건 이 좆같은 현실이 너무 답답하니까 괜히 우리 중위님한테 투정을 부리는 거야. '오빠, 난 지미추 샌들을 신고 싶은데, 이 엿 같은 마트엔 명품 구두가 하나도 없어. 존나 짜증나.' 이렇게요. 왜 기자 양반도 알 거 아냐. 문제가 있을 때 나누는 대화가 두 가지라며? 하나는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고 나머지는 상황 공감을 위한 대화라잖아. 엔시노맨 저 머저리 새끼 대갈통에 뇌가 생기기 전까진 이 좆같은 상황이 변할 길은 없으니 닥은 중위님한테 나 존나 힘드니까 같이 까며 위로해달라고 투정을 부리는 거지. 그런데 공감이 목적인 대화는 여자들이 한다는데, 지저스. 우리 쿨한 의무병이 호모였어!"
"닥쳐. 미친 새끼야. 주둥아리를 확 꿰매버리기 전에."
브라이언이 으르렁거렸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모두에게 차갑지만, 아이들에겐 따뜻한 마초 흉내를 내는 우리 의무병님. 부끄러워할 거 없지 말입니다? 사실 우리 중위님이 멋져도 좀 멋져야지. 내가 호모였으면 아마 진작에 전투 식량에 약 타서 우리 중위님 기절시킨 다음에 업고 뉴욕으로 튀어가 납치혼을 올렸을 거야.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유능하고 분노와 질투심과 복수심에 불타는 22인의 자객단에게 쫓기겠지. 저 새끼들 쩔어주는 질투 때문에 날 곱게 죽이지도 않을 거야. 혹시 알아? 죽을 때까지 숟가락으로 때릴지. 잔인한 새끼들"
"비쩍 마른 멸치 새끼가 잘도 중위님 업고 뉴욕까지 가겠다."
"얌마, 사랑의 힘 모르냐? 그 위대한 파워 오브 러브. 뉴욕이 문제냐? 사랑의 수호자 이 레이레이님은 중위님을 위해서라면 업고 뉴욕이 아니라 남극까지 갈 수 있다니까?"
"에라이- 이 미친 새끼야."
소대원들이 야유하며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자 레이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에반에게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새끼들이. 그럼 너희도 손가락만 빨지 말고 당당하게 나서든가! 기자 양반. 아무튼, 그때를 대비해서 지금 유언을 남길 테니 잘 적어두셔. '저질렀노라, 뒈졌노라, 후회는 없노라.'"
에스페라의 뒤통수 후려치기를 마지막으로 매타작에서 벗어난 레이가 다시 입을 놀렸다.
"아무튼, 우리 의무병님이 말이죠. 아무리 소대장님한테 툴툴거려도 숨기고 있는 진심 깊은 곳에선 부정할 수 없는 우리 중위님 빠돌이라니까. 우리 중위님이 갓파더의 병신 짓에 결국 질려서 '브라이언, 쏴.'라고 하셔봐, 우리 의무병님은 그 명령에 마침표를 찍기도 전에 갓파더를 갓과 대면시킬걸? 닥, 가슴에 손을 얹고 말씀해 보시지 말입니다. 이 정직한 레이레이가 아주 없는 헛소리를 나불거리나요?"
"새꺄, 다이어트 약 좀 작작 처먹어."
"수줍으니까 괜히 말 돌리기는."
소대원들의 웃음소리에 브라이언의 욕설이 뒤섞였다.
"아무튼, 이 레이레이가 하고 싶은 말은 말이죠, 기자 양반. 우리 중위님은 세상에서 제일 잘나고 유능하고 존나 멋진데다 이쁘기까지 하셔서 누구나 호모에로틱하게 반하는게 너무 당연하니까 우리 중위님한테 홀딱 빠졌다고 꼭 게이가 된 건 아니라는 거예요. 무슨 뜻인지 알죠?"
정신없는 수다에 왜 이 이야기가 나왔는지 잊은 에반이 관자놀이를 긁었다.
"어......음......레이. 무슨 소린지 알 것 같다가도 역시 잘 모르겠어요."
"기자 양반 집중력이 그것밖에 안 돼서 뭐에 쓴담? 비버 헌트 기사를 썼을 때처럼 집중을 해보라고요. 다이어트 약 좀 드릴까?"
"음, 사양할게요, 레이."
왁자지껄 웃고 떠드는데 큐팁이 다급하게 말했다.
"엔시노맨 포착. 11시 방향에서 빠른 속도로 접근 중."
낄낄거리던 브라보2 소대원들의 얼굴이 짜증스럽게 변했다. 웬일로 선임 하사관 그레고리 중사를 대동하지 않고 나타난 중대장을 보며 소대원들은 각자 가장 효과적인 비우호적 표정을 만들었다.
"병신새끼. 또 무슨 등신 헛소리로 우리 중위님 속을 뒤집으려고."
포크가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런데 뜻밖에 중대장 슈와체 대위는 의외의 인물을 호명했다.
"크리스텐슨 이등병!"
브라보2 소대의 막내 크리스텐슨은 의아한 표정으로 일어나 중대장에게 달려갔다.
"저 병신새끼가 막둥이는 왜 부르지?"
"난들 아냐?"
"중위님 불러야 하나?"
"중사님이 더티 얼을 보냈어."
3소대 쪽에 있던 윈 중사가 감옥 대신 해병대에 왔다가 차라리 감옥에 갈 걸 그랬다고 매일 후회하는 3소대의 운전병에게 지시하고는 중대장과 크리스텐슨이 있는 곳으로 갔다. 대위가 이등병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대위의 말에 크리스텐슨이 몇 번 고개를 끄덕였고, 중대장은 흥분했다. 손짓 발짓까지 해가며 뭔가를 말하는데 대위의 얼굴만 보면 5분 뒤 바스당이 담배 공장에 대량살상무기를 터뜨릴 것 같았다. 중대장의 얼굴은 그만큼 심각했지만, 소대원들의 얼굴은 심드렁했다.
"뭐라고 지껄이는 거지?"
"글쎄. 병신은 병신 면상이라 잘 모르겠고, 중사님 얼굴은……아, 씹. 우리 중사님은 눈앞에서 폭탄이 터져도 저 표정을 바꾸지 않을 거야. "
"막둥이 표정은 딱 이거네. '뭐지, 이 병신은?'"
"별일 아닌가?"
"새꺄. 저 병신한텐 별일 아닌 게 별일이라는 거 벌써 잊었냐? 난 존나 엄호도 없이 시가전을 벌이며 도시를 통과하는 것보다 콧수염을 깎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거기에 매달려 발발거리던 저 새끼 꼬락서니를 생각하면 아직도 어이가 털린다."
"얼씨구? 캡틴 아메리카다."
또 네이트를 붙잡고 징징거리려고 온 듯한 맥그로우 대위는 두리번거리다가 중대장을 보고는 그쪽으로 갔다. 대화에 합류한 대위의 얼굴은 이내 심각해졌고, 과장된 반응을 보이며 크리스텐슨에게 호들갑을 떨었다.
"야, 우리 막둥이 표정 봐라."
"짜증 나서 아주 죽으려고 하네."
"저 얼굴은 완전 이거 아니냐? '와, 존나. 병신새끼가 늘어나니 보시는 병신 지수가 완벽하시네요.' 이거."
"저거 언제 무르익어서 쓸만한 해병되냐."
"얌마, 될 싹은 충분하고 넘치잖냐. 존나 어렵다는 해군사관학교에 합격한 녀석이라 그런지 존나 쑥쑥 크더라. 거기다 중위님이랑 중사님이 끼고 키우고 있으니 쟨 진짜 거물이 될 거야. 아이스맨, 긴장 타라. 쟤가 네 자리를 꿰찰 날도 멀리 않았다고."
"어, 중위님이다."
빠른 걸음으로 중대장 일행이 있는 곳으로 간 네이트가 대화에 합류했다. 슈와체 대위가 뭔가를 장황하게 설명했고 맥그로우 대위도 그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윈 중사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했고 크리스텐슨 이등병은 짜증 나는 얼굴로 중위에게 무언의 호소를 했다. 중위님 절 이 병신 함정에서 꺼내주세요. 눈을 깜박이던 네이트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중대장과 눈을 마주쳤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을 때 나오는 네이트의 버릇이었다.
"와, 존나 씨발. 왜 중위님은 저 머저리들한테도 저 얼굴을 보여주시지? 아깝게스리. 내가 알파 중대 패터슨 대위라면 말을 안 해. 그 양반은 존나 제정신이 확실하게 콱 박힌 양반이니까. 그런데 왜 저런 똥통대가리들한테 저 이쁜 얼굴을 하냐고. 악, 아까워!"
"와, 존나 샤핀. 너 지금 토 나오게 호모 같은 거 알지?"
중대장이 말을 마쳤다. 소대원들은 이제 네이트가 박력이 넘치는 기세로 우리 소대는 지금 충분히 피곤하니까 중대장의 머저리 탭댄스에 장단을 맞출 여력이 없다고 맞받아칠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소대원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는 소대장은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크리스텐슨을 걱정스럽게 바라본 것이다. 소대장의 그런 반응에 표정에 아무 변화가 없던 윈 중사의 얼굴도 심각해졌고, 구경하던 소대원들도 심각한 얼굴을 했다. 크리스텐슨은 겁을 먹고 쩔쩔맸다.
"크리스텐슨 이등병이 무슨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걸까요?"
"기자 양반. 저 백인 꼬맹이는 중위님 트럭을 타고 다닌다고요. 보고 듣는 게 중위님이랑 중사님인데 문제를 일으키긴 무슨 문제를 일으켜. 저 꼬맹이가 문제를 심각하게 일으켜봤자 큐팁이 잡아온 개를 구워먹는 정도가 끽이라고요. 그러고 보니 말 나온 김에, 야 큐팁. 이제 식견종 노릇은 작작 좀 하면 안되냐? 난 존나 네놈 새끼가 개 다리를 구워서 뜯어먹을 때마다 언젠가 내 다리도 뜯어다 구워먹을 것 같아서 소름이 존나 쪽쪽 끼치지 말이다."
에스페라의 항의에 낄낄거리는 큐팁을 보며 에반은 수긍했다. 지금까지의 전투 양상과 아주 다른 이라크전을 겪으며 혼란을 겪는 다른 부대원들에 비해 브라보2 소대의 소대원들은 잘 버티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소대장의 트럭에 동승한 큐팁과 크리스텐슨은 가장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큐팁은 교전 중에 Mk19가 고장 나는 경험과 수면 부족으로 컨디션이 엉망일 때 민간인을 사살해 불안정한 왈트가 PTSD를 겪을 때 달래주기도 했다. 픽 중위와 윈 중사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은 아마 훌륭한 군인으로 계속 성장할 것이다.
한편, 입술을 안쪽으로 물고 뭔가를 고민하던 네이트가 크리스텐슨에게 뭔가 말했고, 그 어렵다는 해군 사관학교에 합격해 놓고도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직접 뭔가를 하기 위해 해병대에 입대한 이등병은 고개를 저었다. 네이트의 표정이 더 심각해졌고, 크리스텐슨이 얼굴에선 핏기가 가셨다.
"야, 진짜 심각한 거 같은데?"
"그래, 엔시노맨이랑 캡틴 아메리카 병신새끼야 그렇다 치고, 우리 중위님이 저런 얼굴을 할 정도면 진짜 심각한 일이지."
그때 맥그로우 대위가 나섰다. 가슴까지 탕탕 치며 허리를 쭉 펴는 모습을 보니 무슨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문제를 자기한테 맡기라고 나선 것 같았다. 문제는, 문제가 생겼을 때 캅틴 아메리카에게 해결을 맡기면 절대로 안 된다는 사실을 에릭 코커가 알고, 브랫 콜버트가 알고, 네이트 픽도 잘 안다는 사실이었다. 크리스텐슨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야, 우리 막내 중위님한테 텔레파시 쏘고 있다."
"그래, 딱 보이네. '중위님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우리 막둥이 저러다 울겠다."
한숨을 쉰 네이트가 크리스텐슨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맥그로우 대위에게 입을 열었고, 3소대의 소대장은 아쉬워하며 물러섰다. 이등병이 안도의 한숨을 쉬는 모습이 여기에서도 잘 보였다.
"야, 뭔지 모르지만, 우리 막둥이 살았나 보다."
대화를 조금 더 나누던 다섯 사람은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축 처진 크리스텐슨의 뒷모습을 보며 인종차별주의를 표방하지만, 멕시코인 가르자와 단짝인 샤핀이 중얼거렸다.
"그런데 진짜 무슨 일이지?"
"글쎄. 나중에 막둥이한테 물어보면 알겠지."
하지만 몇 시간 뒤 돌아온 브라보2 소대의 막내 크리스텐슨은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시뻘게진 얼굴로 입을 꾹 다물 뿐이었다. 네이트 역시 비밀을 지켰다. 레이가 아무리 살랑거리며 물어봐도 입을 꾹 다물고 씩 웃었다. 자신 있게 나섰다가 빈손으로 돌아온 레이는 비난하는 동료들에게 변명했다.
"아, 그럼 어쩌라고. 실토하라고 중위님 고문하냐? 간지럼이라도 태울까? 그리고 우리 중위님 존나 비겁하신 게 내가 끈질기게 달라붙어서 묻잖아? 씩 웃으신다? 그 웃으시는 게 지금까지 보여준 웃음이랑 또 완전 달라요. 슬쩍 장난기가 섞여서 얼마니 이쁜지 아냐? 우리 중위님은 장교 교육받으실 때 호모에로틱하게 웃어서 부하들의 혼을 쏙 빼놓는 훈련도 받으신 게 분명해."
그리고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역시나 윈 중사도 무슨 일인지 말해주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날이 흘렀다. 그리고 소대원들은 궁금했다.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소대의 막내 크리스텐슨과 소대장 사이의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는 게 눈에 확 보였던 것이다. 두 사람은 미묘하게 더 가까워졌고, 소대원들은 그 모습을 보며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고 싶어서 미치려 했다. 결국, 또 레이가 나서 브라보3 소대로 갔다. 맥그로우 대위는 조금만 추켜세워주면 쓸데없는 것까지 나불나불 다 털어놓을 테니 도대체 무슨 호모에로틱스러운 일이 생긴 건지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맥그로우 대위는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비밀서약이 어쩌니저쩌니 횡설수설을 하다 자리에서 도망갔다. 아이돌 중위님과 막내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누군가를 죽여서라도 알아내고 싶어하는 소대원들의 궁금증은 풍선처럼 점점 더 커졌다.
저쪽에서 네이트가 풀이 죽은 크리스텐슨의 어깨를 치며 뭐라 말했고 고개를 든 이등병이 소대장과 마주 보며 힘없이 웃었다. 그 모습을 보는 브랫을 감싼 공기는 사막도 얼려버릴 듯 싸늘했다.
"아- 존나. 존나 호모 같아. 숨이 목구멍에서 탁 걸릴 정도로 끔찍하게 호모에로틱 그리스 치정극 같다고요, 브랫."
레이는 중위와 이등병을 쏘아보는 브랫을 보며 아이스맨이 장래가 기대되는 막내를 얼려 죽이기 전에 진실을 알아내야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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