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위님 중위님 꽃같은 우리들의 중위님 6
2012. 12. 8. 22:08
소심늘보 Generation Kill/꽃 중위님 시리즈 View Comments
* 막둥이랑 중위님이 수상해 2
*거친 언어 주의
눈감으면 선명하게 떠올랐다. 기갑 부대가 이동하며 지면을 울리는 진동. 모스크에서 울려 퍼져 도시 외곽까지 들리던 기도 소리. 건조한 열기를 품은 바람. 사막에서 올라오는 모래 먼지. 철모 밑으로 보이는 작은 얼굴. 길게 드리운 금갈색 속눈썹. 커다랗고 투명한 눈동자. 석양이 드리워 노란색에서 오렌지색으로 물들던 하얀 뺨. 그리고 소년 같은 미소. 브랫이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 간직한 보물이었다.
네이트는 표정이 꽤 풍부한 편이었다. 하나같이 멍청한 대대의 장교에게 질린 네이트는 알파 중대의 중대장 패터슨 대위 외의 다른 장교에게는 경직된 얼굴을 했지만, 이 젊은 소대장은 자신의 소대원에겐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었다. 장교가 지녀야 할 자세를 가르쳐주는 마이크 윈 중사를 의지하는 것과는 의미가 달랐지만, 네이트는 브랫을 많이 의지했고, 소대원 중 누구보다 브랫을 존중했다. 많은 의논과 대화를 했고, 따라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그때마다 브랫은 자신이 소대장과 소대원의 교량 역할을 하는 알파메일인 것이 자랑스러웠고 기뻤다.
네이트와 함께하는 시간은 무엇보다 즐거웠다. 장교로서 장점이 될 수 없는 생김새를 한 네이트는 평소 장교다운 표정을 짓는데 신경 썼지만, 가끔 브랫의 앞에서 방심하고 제 나이다운 표정을 할 때가 있었다. 의식적으로 낮게 깔지 않은 높고 맑은 목소리,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겼을 때 투덜거리며 짓는 샐쭉한 얼굴,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커다란 눈동자, 그리고 활짝 웃으며 브랫을 올려보는 얼굴. 연한 초록색 눈동자에 가득 찬 자신을 볼 때마다 브랫은 레이가 안다면 쏘게이 호모 에로틱하다며 소대의 선두에서 후미까지 발광하며 뛰어다닐 것이 분명한 기분이 가득 차올랐다.
하지만 전쟁은, 특히 지휘부의 삽질은 네이트의 얼굴에서 표정을 지웠다. 물론 네이트는 전투 후유증을 겪는 소대원을 부드러운 얼굴로 다독였지만, 그때의 얼굴은 어디까지나 소대장의 얼굴이었다. 브랫은 이제 네이트에게서 장교의 얼굴밖에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가끔 다른 소대원에겐 털어놓지 않는 속내를 브랫에게만 드러내며 살짝 웃을 때도 있었지만, 그 미소는 소대장 픽 중위가 소대원에게 보여주는 것이었지, 굳게 닫은 마음의 문 너머의 네이트의 모습이 아니었다.
브랫은 네이트가 웃는 얼굴이 보고 싶었다. 활짝 웃는 얼굴을 보려면 빅 게이 엘 흉내라도 내야 하나라고 실없는 고민을 할 정도로 전쟁에 짓눌리지 않은 네이트의 웃음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시선의 끝에 대화를 나누는 크리스텐슨과 네이트가 있었다. 중대장이 크리스텐슨을 찾았던 그날 이후, 두 사람은 저렇게 부쩍 단둘이 비밀스러운 대화를 자주 나누었다. 의기소침한 크리스텐슨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자 네이트가 어깨를 두드리며 웃어주었고, 아직 어린 19살 이등병은 힘없이 따라 웃었다. 저 얼굴은 브라보 중대 2소대 소대장의 얼굴이 아니었다. 25살 청년 네이트의 얼굴이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마주 보고 웃는 두 사람을 지켜보는 브랫의 입안에서 으드득 소리가 났다.
전투 식량 봉투에서 딸기 밀크셰이크를 꺼내 얼굴을 범벅으로 만들어가며 먹던 레이가 투덜거렸다.
“아~씨발. 망했어요. 우리 소대는 완전 망했어요. 조금 있으면 희랍 비극 하나 찍을 것 같아. 기자 양반, 그년 이름이 뭐였죠? 왜 남편이 자길 버리고 딴 년이랑 결혼한다니까 새 신부에겐 독 바른 드레스를 선물해 죽이고, 지가 낳은 아들도 죽인 년요.”
“메데이아요?”
“아, 몰라. 아무튼, 우리 아이스맨이 존나 그 여자한테 빙의할 것 같지 말예요. 씨발. 난 호모 에로틱 치정살인사건 증인으로 재판에 끌려갈 거예요. 아, 존나 짱나. 그건 나까지 게이가 된 것 같은 존나 좆 같은 기분일 거야.”
윈 중사가 오더니 픽 중위가 있는 곳으로 갔다. 브랫을 감싼 공기가 더 싸늘해졌다. 윈 중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네이트는 크리스텐슨의 어깨를 치고 건물 안으로 앞장섰다. 풀 죽은 표정의 크리스텐슨이 따라나섰다. 어린 해병을 돌아본 네이트가 고개를 까딱이며 씩 웃었고, 크리스텐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등병의 얼굴엔 소대장을 향한 믿음으로 가득했다.
“존나 지금 우리 아이스맨은 막둥이 얼굴 보조개도 얼려버리고 싶을 거야. 그런데 말이죠, 기자 양반. 난 가끔 우리 중위님이 너무 멋지고 근사해서 아쉬워. 솔직히 지금 저 상황이 얼마나 이빨 까기에 좋은 소재야? 존나 난 애새끼 밴 10대 애새끼 커플이 여자애 집 앞에서 남자애가 존나 자기만 믿으라고 하는 것 같다고 열흘은 자지 않고 주둥이를 털 수 있을 것 같은데.”
옆에서 에스페라가 이죽거렸다.
“미친 새끼. 잘도 그러겠다. 수송 중대 새 보충병 새끼가 중위님이 젊은 애 정기 빨려고 저런다고 이빨을 털자마자 아주 주둥이에 모터를 달고 쥐 잡듯 잡아서 눈물을 쏙 빼놓은 주제에.”
“제가 주둥이를 터는 옆에서 ‘지껄여봐라 새끼야. 혀뿌리가 간지럽나 보지? 뽑아서 긁어주랴?’라는 면상으로 나이프를 팩팩 돌리던 양반이 할 소리는 아니지 싶지 말입니다?”
소대원들은 낄낄거렸다. 브라보2 소대의 거친 농담에 중위도 곧잘 등장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너무나 멋진 중위에게 홀딱 빠진 소대원들이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군다는 내용이었다. 소대장을 바보 취급하지 않는 건 브라보2 소대의 불문율이었고, 나아가 픽 중위가 겁쟁이라고 떠드는 그리에고 중사의 헛소리를 믿고 다른 부대원들이 헛소리를 지껄일 때 다시는 정신 나간 소리를 못하게 자근자근 밟는 것은 신성한 임무였다. 하지만 그 신성하고도 통쾌한 임무를 수행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다.
네이트 픽은 예뻤다. 얼굴도 뽀얗고, 목소리에 힘을 주지 않으면 음색이 솜사탕처럼 달콤했다. 게다가 학사 장교였고, 십 대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동안이었다. 거친 해병대에 음담패설을 하라고 하늘에서 떨어진 존재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해병이란 하나같이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거친 군인이었다. 하지만 그 튀어나온 간 중 <해병은 무조건 되게 한다. 그러니 우린 존나 무시무시한 22인의 해병 도살단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번쩍거리는 전광판 밑에서 차라리 화를 내라고 애원하고 싶을 정도로 섬뜩하게 웃으며 이를 드러낸 브라보2 소대원이 눈을 시퍼렇게 뜬 앞에서 네이트를 저속한 반찬거리로 삼을 정도로 거대한 간은 없었다.
또, 자매 중대인 알파 중대의 중대장 패터슨 대위는 네이트를 아꼈고, 패터슨을 추앙하는 알파 중대는 네이트에게 호의적이었다. 자매 소대인 브라보3 소대의 경우, 소대원들이 믿고 따르는 알파메일 코커 병장이 네이트의 광신도였다. 그리고 전투가 거듭되며 네이트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진정한 장교를 조롱하는 사병은 없었다.
가끔 보충되어 들어온 신병이나 지나치게 예쁘게 생긴 어린 얼굴의 중위를 놀림거리로 삼아 허세를 부렸다. 그럴 때나 되어야 ‘기다렸다, 이 새끼야. 드디어 걸렸구나. 고맙다, 새끼야, 내가 요즘 존나 몸이 근질근질했다.’ 이렇게 날뛸 수 있었다. 그렇게 물을 뒤집어쓴 광견병 걸린 개의 기세로 으르렁거리는 브라보2에 제대로 깨져 자기 분대로 돌아와 입술을 바르르 떨고 눈물을 글썽이다 선임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건 갓파더 대대의 일종의 신병신고식이 되었다. 가끔 불행한 경우도 나왔다. 그 불행의 주인공은 브랫 콜버트의 추종자일 경우가 많았다. 대대장도 눈여겨볼 정도로 뛰어난 해병인 아이스맨은 사병들에겐 전설적인 존재였다. 그래서 다른 부대에서 온 보충병은 겉보기에 그리 위협적이지 않은 네이트에게 절대복종하는 브랫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저 곱상한 중위가 병장에게 말을 잘 듣는 대가로 엉덩이라도 대주냐며 빈정거렸다. 뒤에 시퍼런 눈에서 불꽃을 튀기는 브랫이 섬뜩하게 웃으며 서 있는 것도 모르고. 가엾게도. 발작을 동반한 공황을 일으킨 그 보충병은 결국 본국으로 호송 당했고, 나중에 자살했다, 미쳤다, 여러 가지 소문이 돌았다.
이렇게 네이트를 조롱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아니더라도 사실 크리스텐슨과 네이트를 정말 수상하게 여기는 소대원은 없었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이 수상하지 않다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둘이 비밀 이야기를 하거나, 함께 모습을 감춘 다음 같이 나타날 때 두 사람에게선 매우 불편한 방향으로 수상쩍고 소름이 쪽 돋을 정도로 기피하고 싶은 성적인 긴장감이 사막의 모래 한 톨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브라보2 소대원은 마음 놓고 두 사람을 수상쩍어했다. 그래서 지금 머리를 맞대며 중위님과 막둥이는 매일매일 두 시간 정도 슬쩍 사라져 어디에서 무엇을 하나 궁금해했다.
“그런데 말야, 딸칠 때도 대놓고 하는 이 존나 엿 같은 데서 꼭 남들 눈을 피해 몇 시간씩 둘이 할 일이 뭐지?”
매니멀의 말에 소대원은 고민했다. 그리고 샤핀이 입을 열었다.
“혹시 갓파더가 이번엔 대대 노래 경연대회를 여는 거 아냐?”
“그럼 막둥이가 중대 대표로 뽑혔고, 중위님이 우리 막둥이를 존나 비장의 무기로 키우는 거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새꺄, 말이 안 되긴 뭐가 안되냐? 갓파더는 콧수염 경연대회도 열었는데 노래 대회면 존나 양호하지.”
대대장은 기르라고 하고, 원사는 깎으라고 하고, 콧수염 때문에 시달렸던 걸 생각하면 아주 가능성이 없는 소리는 아니었다.
“야, 그럼 막둥이는 매일 우리 중위님 노래 들으면서 존나 꾀꼬리로 변신하는 트레이닝을 받는 거냐?”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존나 부러운 새끼.”
릴리의 말에 소대원 일동은 추운 겨울밤에 제과점 쇼 윈도우에 달라붙은 고아 얼굴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에반은 수첩에 소대원 전체의 다이어트 약 복용 의혹을 적었다.
네이트는 표정이 꽤 풍부한 편이었다. 하나같이 멍청한 대대의 장교에게 질린 네이트는 알파 중대의 중대장 패터슨 대위 외의 다른 장교에게는 경직된 얼굴을 했지만, 이 젊은 소대장은 자신의 소대원에겐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었다. 장교가 지녀야 할 자세를 가르쳐주는 마이크 윈 중사를 의지하는 것과는 의미가 달랐지만, 네이트는 브랫을 많이 의지했고, 소대원 중 누구보다 브랫을 존중했다. 많은 의논과 대화를 했고, 따라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그때마다 브랫은 자신이 소대장과 소대원의 교량 역할을 하는 알파메일인 것이 자랑스러웠고 기뻤다.
네이트와 함께하는 시간은 무엇보다 즐거웠다. 장교로서 장점이 될 수 없는 생김새를 한 네이트는 평소 장교다운 표정을 짓는데 신경 썼지만, 가끔 브랫의 앞에서 방심하고 제 나이다운 표정을 할 때가 있었다. 의식적으로 낮게 깔지 않은 높고 맑은 목소리,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겼을 때 투덜거리며 짓는 샐쭉한 얼굴,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커다란 눈동자, 그리고 활짝 웃으며 브랫을 올려보는 얼굴. 연한 초록색 눈동자에 가득 찬 자신을 볼 때마다 브랫은 레이가 안다면 쏘게이 호모 에로틱하다며 소대의 선두에서 후미까지 발광하며 뛰어다닐 것이 분명한 기분이 가득 차올랐다.
하지만 전쟁은, 특히 지휘부의 삽질은 네이트의 얼굴에서 표정을 지웠다. 물론 네이트는 전투 후유증을 겪는 소대원을 부드러운 얼굴로 다독였지만, 그때의 얼굴은 어디까지나 소대장의 얼굴이었다. 브랫은 이제 네이트에게서 장교의 얼굴밖에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가끔 다른 소대원에겐 털어놓지 않는 속내를 브랫에게만 드러내며 살짝 웃을 때도 있었지만, 그 미소는 소대장 픽 중위가 소대원에게 보여주는 것이었지, 굳게 닫은 마음의 문 너머의 네이트의 모습이 아니었다.
브랫은 네이트가 웃는 얼굴이 보고 싶었다. 활짝 웃는 얼굴을 보려면 빅 게이 엘 흉내라도 내야 하나라고 실없는 고민을 할 정도로 전쟁에 짓눌리지 않은 네이트의 웃음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시선의 끝에 대화를 나누는 크리스텐슨과 네이트가 있었다. 중대장이 크리스텐슨을 찾았던 그날 이후, 두 사람은 저렇게 부쩍 단둘이 비밀스러운 대화를 자주 나누었다. 의기소침한 크리스텐슨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자 네이트가 어깨를 두드리며 웃어주었고, 아직 어린 19살 이등병은 힘없이 따라 웃었다. 저 얼굴은 브라보 중대 2소대 소대장의 얼굴이 아니었다. 25살 청년 네이트의 얼굴이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마주 보고 웃는 두 사람을 지켜보는 브랫의 입안에서 으드득 소리가 났다.
전투 식량 봉투에서 딸기 밀크셰이크를 꺼내 얼굴을 범벅으로 만들어가며 먹던 레이가 투덜거렸다.
“아~씨발. 망했어요. 우리 소대는 완전 망했어요. 조금 있으면 희랍 비극 하나 찍을 것 같아. 기자 양반, 그년 이름이 뭐였죠? 왜 남편이 자길 버리고 딴 년이랑 결혼한다니까 새 신부에겐 독 바른 드레스를 선물해 죽이고, 지가 낳은 아들도 죽인 년요.”
“메데이아요?”
“아, 몰라. 아무튼, 우리 아이스맨이 존나 그 여자한테 빙의할 것 같지 말예요. 씨발. 난 호모 에로틱 치정살인사건 증인으로 재판에 끌려갈 거예요. 아, 존나 짱나. 그건 나까지 게이가 된 것 같은 존나 좆 같은 기분일 거야.”
윈 중사가 오더니 픽 중위가 있는 곳으로 갔다. 브랫을 감싼 공기가 더 싸늘해졌다. 윈 중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네이트는 크리스텐슨의 어깨를 치고 건물 안으로 앞장섰다. 풀 죽은 표정의 크리스텐슨이 따라나섰다. 어린 해병을 돌아본 네이트가 고개를 까딱이며 씩 웃었고, 크리스텐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등병의 얼굴엔 소대장을 향한 믿음으로 가득했다.
“존나 지금 우리 아이스맨은 막둥이 얼굴 보조개도 얼려버리고 싶을 거야. 그런데 말이죠, 기자 양반. 난 가끔 우리 중위님이 너무 멋지고 근사해서 아쉬워. 솔직히 지금 저 상황이 얼마나 이빨 까기에 좋은 소재야? 존나 난 애새끼 밴 10대 애새끼 커플이 여자애 집 앞에서 남자애가 존나 자기만 믿으라고 하는 것 같다고 열흘은 자지 않고 주둥이를 털 수 있을 것 같은데.”
옆에서 에스페라가 이죽거렸다.
“미친 새끼. 잘도 그러겠다. 수송 중대 새 보충병 새끼가 중위님이 젊은 애 정기 빨려고 저런다고 이빨을 털자마자 아주 주둥이에 모터를 달고 쥐 잡듯 잡아서 눈물을 쏙 빼놓은 주제에.”
“제가 주둥이를 터는 옆에서 ‘지껄여봐라 새끼야. 혀뿌리가 간지럽나 보지? 뽑아서 긁어주랴?’라는 면상으로 나이프를 팩팩 돌리던 양반이 할 소리는 아니지 싶지 말입니다?”
소대원들은 낄낄거렸다. 브라보2 소대의 거친 농담에 중위도 곧잘 등장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너무나 멋진 중위에게 홀딱 빠진 소대원들이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군다는 내용이었다. 소대장을 바보 취급하지 않는 건 브라보2 소대의 불문율이었고, 나아가 픽 중위가 겁쟁이라고 떠드는 그리에고 중사의 헛소리를 믿고 다른 부대원들이 헛소리를 지껄일 때 다시는 정신 나간 소리를 못하게 자근자근 밟는 것은 신성한 임무였다. 하지만 그 신성하고도 통쾌한 임무를 수행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다.
네이트 픽은 예뻤다. 얼굴도 뽀얗고, 목소리에 힘을 주지 않으면 음색이 솜사탕처럼 달콤했다. 게다가 학사 장교였고, 십 대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동안이었다. 거친 해병대에 음담패설을 하라고 하늘에서 떨어진 존재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해병이란 하나같이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거친 군인이었다. 하지만 그 튀어나온 간 중 <해병은 무조건 되게 한다. 그러니 우린 존나 무시무시한 22인의 해병 도살단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번쩍거리는 전광판 밑에서 차라리 화를 내라고 애원하고 싶을 정도로 섬뜩하게 웃으며 이를 드러낸 브라보2 소대원이 눈을 시퍼렇게 뜬 앞에서 네이트를 저속한 반찬거리로 삼을 정도로 거대한 간은 없었다.
또, 자매 중대인 알파 중대의 중대장 패터슨 대위는 네이트를 아꼈고, 패터슨을 추앙하는 알파 중대는 네이트에게 호의적이었다. 자매 소대인 브라보3 소대의 경우, 소대원들이 믿고 따르는 알파메일 코커 병장이 네이트의 광신도였다. 그리고 전투가 거듭되며 네이트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진정한 장교를 조롱하는 사병은 없었다.
가끔 보충되어 들어온 신병이나 지나치게 예쁘게 생긴 어린 얼굴의 중위를 놀림거리로 삼아 허세를 부렸다. 그럴 때나 되어야 ‘기다렸다, 이 새끼야. 드디어 걸렸구나. 고맙다, 새끼야, 내가 요즘 존나 몸이 근질근질했다.’ 이렇게 날뛸 수 있었다. 그렇게 물을 뒤집어쓴 광견병 걸린 개의 기세로 으르렁거리는 브라보2에 제대로 깨져 자기 분대로 돌아와 입술을 바르르 떨고 눈물을 글썽이다 선임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건 갓파더 대대의 일종의 신병신고식이 되었다. 가끔 불행한 경우도 나왔다. 그 불행의 주인공은 브랫 콜버트의 추종자일 경우가 많았다. 대대장도 눈여겨볼 정도로 뛰어난 해병인 아이스맨은 사병들에겐 전설적인 존재였다. 그래서 다른 부대에서 온 보충병은 겉보기에 그리 위협적이지 않은 네이트에게 절대복종하는 브랫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저 곱상한 중위가 병장에게 말을 잘 듣는 대가로 엉덩이라도 대주냐며 빈정거렸다. 뒤에 시퍼런 눈에서 불꽃을 튀기는 브랫이 섬뜩하게 웃으며 서 있는 것도 모르고. 가엾게도. 발작을 동반한 공황을 일으킨 그 보충병은 결국 본국으로 호송 당했고, 나중에 자살했다, 미쳤다, 여러 가지 소문이 돌았다.
이렇게 네이트를 조롱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아니더라도 사실 크리스텐슨과 네이트를 정말 수상하게 여기는 소대원은 없었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이 수상하지 않다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둘이 비밀 이야기를 하거나, 함께 모습을 감춘 다음 같이 나타날 때 두 사람에게선 매우 불편한 방향으로 수상쩍고 소름이 쪽 돋을 정도로 기피하고 싶은 성적인 긴장감이 사막의 모래 한 톨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브라보2 소대원은 마음 놓고 두 사람을 수상쩍어했다. 그래서 지금 머리를 맞대며 중위님과 막둥이는 매일매일 두 시간 정도 슬쩍 사라져 어디에서 무엇을 하나 궁금해했다.
“그런데 말야, 딸칠 때도 대놓고 하는 이 존나 엿 같은 데서 꼭 남들 눈을 피해 몇 시간씩 둘이 할 일이 뭐지?”
매니멀의 말에 소대원은 고민했다. 그리고 샤핀이 입을 열었다.
“혹시 갓파더가 이번엔 대대 노래 경연대회를 여는 거 아냐?”
“그럼 막둥이가 중대 대표로 뽑혔고, 중위님이 우리 막둥이를 존나 비장의 무기로 키우는 거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새꺄, 말이 안 되긴 뭐가 안되냐? 갓파더는 콧수염 경연대회도 열었는데 노래 대회면 존나 양호하지.”
대대장은 기르라고 하고, 원사는 깎으라고 하고, 콧수염 때문에 시달렸던 걸 생각하면 아주 가능성이 없는 소리는 아니었다.
“야, 그럼 막둥이는 매일 우리 중위님 노래 들으면서 존나 꾀꼬리로 변신하는 트레이닝을 받는 거냐?”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존나 부러운 새끼.”
릴리의 말에 소대원 일동은 추운 겨울밤에 제과점 쇼 윈도우에 달라붙은 고아 얼굴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에반은 수첩에 소대원 전체의 다이어트 약 복용 의혹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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