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s me 2
Generation Kill/꽃 중위님 시리즈 View Comments
브랫네잇 브랫네이트
Kiss me
디와니야에서 대기중인 미해병 제1수색대대에는 하나의 소문이 유령처럼 떠돌았다. <지옥에 매달리면 어떤 꼴이 되는지 알고 싶다면 브라보중대 2소대를 찾아가 그 새끼들 소대장을 욕해라>
왜일까? 어째서 2소대는 이런 불명예를 뒤집어쓰게 됐을까?
해병이란 사병은 장교를 사모하고 존경해 혹시 그림자조차 밟을까 저어하며 행동거지를 삼가는 그런 조신하고 수줍음 많은 집단일까? 설마. 나르시시즘과 그에 못지않은 서열주의에 빠진 독재자가 지배하는 나라라면 모를까, 자유민주주의국가에 그런 소름 끼치는 군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계급에 따른 사상통제에 대해서라면 극동근세 유교왕정국가에조차 이런 속담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선 나랏님 욕도 한다.’ 물론 이 속담은 관점에 따라 왕정국가에서조차 몰래 왕을 욕할 정도로 뒷담이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본성이라는 해석과, 몰려나와 드러내 현실적 문제만 일으키지 않으면 의사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해석으로 나뉠 수 있었다. 또 후자의 해석에도 정말로 사적인 언론의 자유는 보장했는지, 아니면 기어코 색출해 처벌했는지는 별도의 문제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남았다. 하지만 어쨌든 왕을 중심으로 중앙집권적 통치를 한, 유교의 영향이 강한 극동근세국가에 언론의 자유보장이라는 해석의 여지가 있는 속담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는 사실이었다. 마치 우리의 적은 적인 것처럼. 그런데 미국의 국가의 근본은 자유민주주의였다. 그리고 군대 파병의 명분은 그 속내가 어떻든 겉으로는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였다. 그러니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대답게 계급을 명령복종의 기준으로 세울지언정, 존경의 기준으로 강요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해병은, 특히 해병수색대는 전선의 가장 앞쪽에 서는 군인들이었다. 미국정신의 가치를 최전선에서 수호한다는 자부심때문에서라도 장교를 무조건적으로 존경하라는 요구는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 전쟁에서 장교는 대부분 멍청하고 무능한데다, 외부집단을 향한 공격은 내부결속에 그 무엇보다 좋은 수단이었다. 그래서 사병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속을 뒤집어놓는 장교를 욕하며 스트레스 해소를 했다. 그리고 하극상에서 오는 은밀한 카타르시스도 음미했다. 해병은 장교 욕을 즐겼다. 너와 나, 이미 진창에서 구르는 우리를 똥통에 밀어 넣는 장교의 항문의 안녕에 대한 화제는 민간인 번역기에 넣으면 ‘안녕하세요, 오늘은 날씨가 참 좋/궂네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브라보중대 2소대는 소속집단의 이 가벼운 놀이에 가까운 연대강화 의식을 거부하고 자기 소대장을 싸고도는 걸까? 과격한 계급근본주의자들이어서? 항렬과 서열 등 복잡하고 까다로운 관계를 파악해 줄 세우는 데 심취한 극단적인 유교주의자 모임이라서? 그래서 사병에게 장교란 신성불가침이라는 절대적인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럴 리가.
먼저 2소대원들의 명예를 위해 분명히 밝혀두자면 장교모독에 있어 가장 악랄한 소대가 바로 2소대였다. 여기엔 지옥에 떨어져도 무시무시한 수다를 떨어 마왕의 정신을 시간과 공간의 차원으로 보내버릴 수 있다는 재앙의 주둥아리 레이 뿐만이 아니라, 어그로를 끌어 마왕이 뒷목을 잡고 넘어가게 할 수 있다는 공포의 주둥이 에스페라마저 있었다. 이 두 사람은 거침없는 입담만큼이나 캐스팅도 대담해서, 자매소대 소대장, 중대장, 중대선임하사, 대대주임원사, 대대장은 물론 심지어 사단장까지 끌어들여 애욕과 애증과 시기와 선망과 배신과 복수로 점철된 라디오 드라마를 만들고는 했다. 보통 사람은 차마 체면상 직시하지 못하고 취향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노골적인 서사를 대담하게 풀어내며 압도적인 흡입력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소문을 들은 해병은 몰려와 넋을 잃고 몰입하고는 했다. 감탄하고, 맞장구를 치다 듣고 싶은 플롯을 요청하고 새 등장인물로 자기가 아는 장교를 추천하면 기존 이야기에 어찌나 자연스럽게 녹여내는지 청중은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러다 누군가, 주로 물정 모르는 신병이 두 사람을 존경하는 뜻에서, 너의 적은 곧 내게도 적이라는 호의와 연대의식으로 가득 차 픽 중위도 캐스팅하라고 소리지르는 순간, 태양이 작열하는 이라크의 사막에 시베리아의 북풍한설이 몰아치고, 지금까지 너에게 재미를 선사했던 입담은 지금부터 너의 영혼을 물어뜯는 이빨로 변해 희생자의 영혼은 멘탈 탈곡기 속에서 처참하게 탈탈 털리기 마련이었다.
그렇다면 악명 높은 2소대는 어째서 자기들 소대장을 유난하게 둥기둥기 싸고도는 걸까? 결론부터 간단하게 말하자면 브라보중대 2소대 소대장인 픽 중위는 멍청하지도, 무능하지도 않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픽 중위는 말 그대로 총알이 빗발치는 죽음의 길에 뛰어들어 다시 한번 말 그대로 자기 목숨을 걸고 부하를 구했다. 멍청하고, 무모하고, 공포나 전공 욕심에 히스테리를 일으키다 자기 앞가림 건사는커녕 부하까지 진창으로 끌어들여 경력에 오점을 남기는 장교들 틈에서 똑똑하고 유능하고 장교로서의 책임감과 자존심이 강하고 부하를 아끼고 용감한 픽 중위는 그야말로 군계일학 독야청청 빛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실을 2소대원들은 잘 알았고, 다른 해병들도 잘 알았다.
그래서 만약 누군가 다른 부대 해병이 너네 소대장이 그렇게 잘났냐고 심사 뒤틀린 질문을 한다면 2소대원은 누구다 가슴을 쫙 펴고 잘나셨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것이 사실이자 진심이라는 점을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모두 알고 있기 따름이었고, 애초에 그 질문의 목적이 진실규명이 아닌 ‘네가 모시는 그 소대장, 원래는 내 소대장이어야 했어’라는 질투라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2소대원은 하루 종일 24시간, 때론 대기 상황에 따라 48시간 연속으로, 기회만 된다면,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늬 부대엔 이런 소대장님 없지? 이분이 바로 우리 소대장님이시다!’라고 자랑하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이고는 했다. 그래서 픽 중위를 바라보는 소대원들의 시선은 따뜻하기 그지없었다.
누가 해병을 일컬어 지옥의 개라고 했던가? 중위를 바라보는 2소대원들을 보고 있자면, 굳이 해병을 개에 비유해야 한다면 순하고, 다정하고, 상냥한 골든 리트리버에 비유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중위는 충직한 부하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지극히 소대장다운 지시를 내렸다.
“브랫, 선적운송신청 DD40 서류를 세 통씩 작성해.”
소대원들은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으스러져라 가슴을 두드리며 땅을 구르고 싶었다. ‘들었냐, 새끼들아! 필드에서도 존나 유능하고 용감하셨던 우리 소대장님께서 이렇게 데스크 워크도 완벽하시다! 봤냐 새끼들아! 이분이 바로 우리 소대장님이시다!’ 이렇게 중대, 대대, 연대, 사단에 대고 쩌렁쩌렁 자랑하고 싶어서.
소대원들이 침묵 속에서 감동하는 사이, 중위는 잠시 말없이 체력단련장을 둘러보았다. 소대원들은 궁금했다. 소대장님께선 무슨 생각을 하실까? 하지만 빛이 스며들어 투명한 녹색 눈에선 침묵만큼이나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소대원들의 눈에 그 모습은 장교다운 감정관리로 보여 새삼스러운 존경심이 마음에서 용솟음치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작열하는 태양의 기세 못지않게 이글거리는 존경심과 감동과 호의 속에서 소대원들은 추측했다. 혹시 소대장님께선 운동하시고 싶으신 걸까?
2소대원들의 주장에 따르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소대장인 픽 중위는 장병구분에 있어서도 완벽해서 여가시간에 부하들 근처에 체신머리 없이 얼쩡거리지 않았다. 그러니 운동하고 싶어도 내색하지 못하는 거겠지. 추측은 이내 확신이 되고, 그 확신은 픽 중위 신격화의 근거가 되었다. 소대원들은 다시 마음속에서 세상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야, 이 새끼들아! 우리 소대장님이 어떤 분이신 줄 아냐? 무려 모래를 한웅큼 쥐고 알갱이 개수를 세고 싶을 정도로 지루한 이 대기 상황에서 체력단련장을 보시고도 사병들 노는데 장교가 끼어드는 거 아니라고 하고 싶으시다는 내색조차 않으시는 분이시다!’ 존경과 안타까움은 태풍이 되어 더욱 큰 존경과 경애를 불렀고, 그 바람은 가르자의 마음에 수줍고 은밀한 야망의 싹을 틔웠다.
해병은 되게 한다. 사병들 쓰는 체력단련장이라 우리 소대장님께서 쓰지 않으신다면 장교용을 만들면 되지. 물론 시간은 편이 아닌 적이었다. 부품을 주워 만들기도 전에 이동 명령이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헛수고라는 장애는 소대장을 향한 존경을 물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겟썸하기 위해 돌진하는 마음을 가로막지는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중위가 미간을 찌푸렸다. 소대원들의 마음에도 먹구름이 몰려왔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분노의 먹구름이었다. 뭐가 우리 중위님을 언짢게 했지? 혹시 엔시노맨? 씨발, 뒤에 엔시노맨 오는 거야? 씨발, 자기 멍청함으로 부하들 죽이지 못해 안달난 그 새끼가 명령불복종이랍시고 우리 중위님을 계속 들들 볶는 거 아냐? 좆 같은 새끼. 넌 내가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소대원들이 적의를 불태우며 중위의 시선을 따라가려던 순간, 중위의 얼굴에서 감정이 사라졌다. 그리고 소대원들은 각자 마음속 반성의 의자에 앉아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바보 같은 놈. 우리 중위님이 어떤 분이신데. 윗선에서 내려오는 멍청이 똥지랄을 자기 선에서 끊고 우리는 절대로 끌어들이지 않으시는 분이신데. 개인적인 감정은 드러내지 않으시는 분인데 우리가 여기서 우르르 나서서 엔시노맨을 노려보면 우리 중위님 마음이 어떠시겠어. 그래, 우리도 일단 여기선 못 본 척 하자. 아무 일도 없는 척 하자. 하지만 엔시노맨, 이 머저리 씹새끼야. 내가 오늘밤 네 맨들맨들한 머리에 좆그림 그려버린다. 존나 유성매직으로 그려버린다. 소대원들이 응징프로젝트를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하는데 중위가 1분대 분대장을 호명했다.
“브랫.”
소대원들은 다시 귀를 쫑긋 세웠다. 또 무슨 말씀을 하실까? 저렇게 순식간에 자기 개인 감정을 추스르시고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려는 걸까? 혹시 날이 뜨거우니 바보같이 일사병으로 쓰러지지 않게 조심시키라는 말씀을 하시려나?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신 우리 중위님께선 어쩌면 이렇게 날씨를 통찰하는 판단력도 날카로우시고 부하를 챙기는 마음도 이렇게 자상하실까?
소대원들은 중위가 무슨 말을 하든 긍정적인 과대해석으로 전세계 소대장의 귀감이 되어 마땅한 훌륭한 말이라고 주장할 모든 준비를 끝냈다. 픽은 이제 무슨 말이든 꺼내기만 하면 됐다. 아니, 말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중위가 이대로 돌아서도 소대원들은 괜히 낯간지러운 말로 걱정하느니 저렇게 침묵으로 돌아서는 것이 진정한 해병다운 태도라며 찬양할 테니까. 소대원들의 열렬한 눈빛과 터질 듯한 기대 속에서 마침내 중위가 입을 열었다.
“나한테 키스해.”
소대원들은 소리 없는 아비규환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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