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s me 4
Generation Kill/꽃 중위님 시리즈 View Comments
브랫네잇 브랫네이트
Kiss me
레이는 시나리오를 짰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그리고 치명적으로 촘촘하게, 그리고 치밀하게 작전 시나리오를 구성했다. 실수가 있어선 안 된다. 이 시나리오는 완벽해야 해. 지금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소대장과 분대장의 주둥이가 공공장소에서, 그것도 우리 눈앞에서 고의적 접촉 사고를 일으키는 참담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 나아가 이왕이면 두 사람이 귀국할 때까지 공적 관계 이상을 드러내는 그 어떤 제스처도 자제하도록 유도하는 미션> 이 시나리오를 완벽하게 구성하고, 빈틈없이 실행해 나의 정신 건강과 우리 소대 정신 건강을 지켜야 한다. 내 어깨에 소대의 운명이 걸렸다! 반드시 목적한 바를 달성하자! 레이는 시나리오 순서를 다시 되짚었다.
먼저 주둥이를 부딪치지 말라고 요구하자. 중위님이 이유를 묻기 전에 얼른 선수를 쳐서 나는 적이 아닌 아군이라고 주장하는 거야. 그것도 계약이나 이해관계가 얽힌 비즈니스적 가운이 아니라, 모두가 찢어지라고, 그만두라고 할 때, 홀로 나서 붙어있으라고, 그래도 된다고 일당백으로 피와 영혼과 철의 쉴드를 쳐줄 수 있는 과격하고 적극적이고 극성인 아군인 척하는 거야. 그리고, 그래, 어차피 찢어지게 할 거, 태양의 신전으로 향하는 무지갯빛 특급열차에 태우자. 두 사람은 영혼의 반쪽이고, 서로를 위해 태어났고,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두 사람이 하나의 인생을 만드는 건 운명이고, 숙명이고, 정해진 수순이라고 구름을 태우는 거야. 유능하고, 잘생기고, 똑똑하고, 책임감을 강한 중위님을 보고, 전우들 발목은 잡지 않고, 허우대도 봐줄 만하고, 멍청하지 않고, 분대원들을 내팽개치지 않는 우리 병장님이 사랑에 빠지지 않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입을 털자. 그리고 멋진 우리 중위님께 똥도 전략적으로 싸는 우리 아이스맨을 잘 부탁드린다고 하는 거야. 그러면 중위님께서 궁금해 하시겠지.
얜 우리편이 맞는 것 같은데 왜 하지 말라는 걸까? 그 의문은 경계심을 늦추겠지. 가드가 내려가 빈틈이 생겼을 때, 바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집중 공격하는 거야. 우리는 해병이다. 전선에서 무지개 깃발을 흔들며 서로의 후장에 관심을 기울이고, 후장의 안녕과 복지에 신경 쓴다. 그러니 이렇게 호모에로틱이 만발한 여기에서 호모의 사랑이 결실을 맺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 해병은 어떤 존재던가. 그리고 이 부분에서 중위님의 공감을 강요하는 거야. ‘중위님도 잘 아시다시피’ 해병이란 지극히 무자비하면서도 동시에 더없이 섬세하고 연약한 새끼들이 아니더냐. 나이, 성별, 인종, 심지어 종족마저 초월해 강간 판타지를 떠벌리고, 난교파티 경험을 주장하고, 네 가족과 보냈던 뜨거웠던 그날 밤 이야기로 허세를 부리고, 쏟아지는 구박과 시비와 학대에는 강도에 비례해 강해지지만, 다정한 위로에는 몸이 굳어버리고, 심지어 애정표현, 게다가 아는 얼굴들이 보이는 애정행각, 하다못해 야유로 충격을 분산시킬 수도 없는 아는 사람들이 자행하는 애정표시 만행에는 영혼이 부서지고, 마음이 파괴되고, 살아갈 용기를 잃는 새끼들이 아니더냐. 그러니 해병을 돌보시는 신이시여, 호모에로틱한 게이치정의 위험에서 저희의 영혼을 구하소서. 그러니 중위님과 브랫은 주둥이를 비비면 안 된다고 결론을 내리고, 그렇지 않냐고 동의를 요구하고, 얼렁뚱땅 그렇다는 답을 끌어내자. 이런 말, 저런 말, 주제와 연관이 있는 듯, 어떻게 보면 아무 상관도 없는 듯, 말이 되는 소리인 듯, 말도 안 되는 소리인 듯, 무차별 궤변과 아무 말 융단폭격으로 논점을 흐리고, 상대의 정신을 교란시켜, 상대가 무슨 요구인지 파악하지 못하는 사이에 내가 원하는 대답으로 유도하는 건 내 특기니까. 할 수 있어. 이번에도 존나 잘 할 수 있어!
레이는 확신했다. 작전 시나리오는 완벽했다. 이제 실행만 하면 된다. 기다리는 건 원하는 결과라고 레이는 다시 한번 확신했다. 그리고 레이의 가장 놀라운 점은 이 모든 과정, 즉 시나리오 구상에서 크랭크 인까지 단 2초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래, 무슨 말이지? 레이.”
중위와 눈이 마주친 레이는 습관적으로 방긋 웃었고, 이내 미약한 자기혐오에 휩싸였다. 니미, 무슨 주인이랑 눈이 마주친 개 새끼도 아니고, 왜 중위님만 봤다 하면 이렇게 영혼의 꼬리가 흔들린담? 곧게 응시하는 중위를 보며 레이는 새삼스럽게 브랫에게 감탄했다. 아이스맨이 난놈은 난놈이네. 난 중위님이랑 눈만 마주쳐도 쫄려서 오금이 저리는데, 어떻게 저 새끼는 중위님게 이런 짓, 저런 짓, 심지어 그런 짓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정말 저질러 버릴 수 있지? 대단한 놈.
“레이?”
상념에 빠졌던 레이는 얼른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며 혀뿌리에 장착한 가변 터보 12기통 엔진에 시동을 걸었다.
“두 분의 주둥, 아니 입술이 상호 마찰하는 상황은 절대로 발생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야 당연히 두 분의 편이지만-“
빛이 스민 녹색 눈이 투명하게 빛났다. 사막의 나라에 싱그러운 봄이 찾아온 것 같았다. 레이는 시선을 빼앗겼다. 중위는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아차. 퍼뜩 정신을 차린 레이는 당황했다. 순간의 방심으로 상황의 주도권을 놓치고 말았다. 레이의 특기는 상대의, 때로는 본인의 이해속도가 따라오지 못하는 압도적인 말의 속도로 상황을 제압하는 것이었다. 그 방법은 통했고, 따라서 레이는 되는대로 아무 말 무차별폭격 외길을 고집했다.
…다시 말해서 변수가 발생했을 때 그에 대응할 수 있는 대비책이 전혀 없다는 소리였다. 그래서 레이는 아직 나오면 안 되는 대사 앞에서 그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이런 생각을 했다. 중위님, 무서우신 분. 무시무시한 미인계로 이 레이레이를 현혹시켜 이런 곤경에 처하게 하다니, 정말 두려우신 분.
당치도 않은 오해를 샀다는 사실을 알리 없는 픽은 레이가 말이 없자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고, 2소대의 가장 뛰어난 통신병이자 운전병의 오해는 더욱 깊어졌다.
“레이?”
“그러니까 왜 안 되는가 하면 말이죠.”
레이는 엉켜버린 생각의 실타래를 풀려고 끙끙거렸다. 이 상황에서 내가 주장해야 하는 내용의 요점은 뭐였지? 그래, 공감과 동조. 난 이해자이자 조력자라는 입장을 강조하는 거였어. 두 사람을 두 사람보다 더 잘 안다고 주장하는 입장이야, 그래, 맞아 이거였어. 실타래의 끝을 잡은 레이는 다급하게 말했다.
“중위님은 멋쟁이이시고, 브랫은 똥쟁이라서요!”
잔잔한 시선으로 레이를 응시하는 중위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레이의 마음은 바싹 마르고, 초조함이 통신병을 덮쳤다. 이런 일이 발생할 줄이야. 바로잡아야 한다. 서둘러야 한다. 어서 이 오해를 풀어야 한다. 이게 아니었다고 얼른 수습하자. 브랫의 기세가 사막이라도 얼릴 듯 무시무시하지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지금 내 처지에 비하면 하찮기 짝이 없다. 중위님께서 날 바라보시는 이 눈을 보라고. 지금 난 존나 심각하다. 씨발, 저 눈은 캡틴 아메리카 그 멍청이가 미치지 않으려면 미쳐야 한다고 씨불이는 걸 들으셨을 때 그 눈이라고. 세상에. 난 이렇게는 못 살아. 이러고 어떻게 살아? 기껏 살아남아서 되는 꼴이 중위님의 이해불가능 영역 속 멍청이라고? 캡틴 아메리카 옆에 나란히 서서?
“아뇨, 그러니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게 아니라-“
레이의 가슴이 바싹 탔다. 이리저리 말을 고르던 레이는 결심했다. 그냥 말하자. 수식 없이, 비유 없이. 해병이란 쌈박질엔 열광해도 뽀뽀질엔 쪼그라드는 새끼 아니냐고 그냥 직구를 던지자. 심플 이즈 더 베스트. 레이 퍼슨, 넌 할 수 있다!
“ 두 분이 뽀뽀하시면 제 기분이 우울해지니까요!”
중위의 눈에 이번엔 시름이 깃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레이는 생각했다. 자살할까?
“저기… 혹시, 레이. “
가만히 레이를 바라보던 중위는 망설이듯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결심한 듯 다시 레이를 응시했다. 그 순간, 레이는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제다이 마이터는 아니었지만, 분명하게 엄습하는 배드 필링을.
“혹시… 나랑 하고 싶은 거야?”
순간, 레이는 벼락에라도 맞은 듯 펄쩍 뛰었다.
“아뇨, 씨발! 아닙니다! 그건 절대로 아니죠! 지저스 뻐킹 크라이스트! 절대로! 전혀!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듯 절대로 그건 아닙니다!”
격렬하게 부정하며 진저리치던 레이는 이내 후회에 젖었다. 잠깐, 이렇게 질색팔색 난리를 치면 중위님께서 날 호모포비아 새끼라고 오해하게 되시는 거 아냐? 그러다 내가 중위님을 혐오하고 경멸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시면? 오, 씨발. 아니지, 그건 아니지. 절대로 아니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지. 씨발 중위님, 저란 놈은 말이죠, 만약 두 분이 결혼하고 아이를 입양하면 걔 대부가 되려고 카톨릭에 몸을 던질 놈이거든요? 중위님께서 말도 안 되는 오해로 절 멀리하시면 제 가슴은 슬픔으로 가득차 터져서 죽지 말입니다! 그래서 레이는 얼른 말을 정정했다.
“아뇨, 뭐, 그렇다고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로 절대로 싫다는 소리는 아니고요. 사람 앞일은 알 수 없으니까 살다 보면 중위님 입술이랑 제 주둥이가 부딪치는 날이 생길 수도 있겠죠. 그런 날이 오면 전 절대로 목을 멜 밧줄을 쥐고 숲속으로 가거나, 벼랑 끝으로 차를 모는 일은 저지르지 않을 거고요. 아니, 어떻게 생각하면 오히려 영광이네요. 제가 어디 가서 중위님처럼 똑똑하고, 유능하고, 용감하고, 잘생긴 장교님이랑 키스할 수 있겠어요? 하하하. 하하. 아하하하하하-“
“…”
중위는 침묵했고, 어색한 웃음은 어색한 분위기에 부딪쳐 어색하게 흩어졌다. 레이는 울고 싶었다.
“그렇다고 제가 중위님이랑 키스하고 싶다는 소리는 또 아니고요. 하지만 만약 하게 돼도 중위님은 여전히 세상에서 제일 멋진 우리 소대장님이시고요. 그렇다고 키스하자는 거냐고 물으시면 아니라고 대답하겠지만, 끔찍하게 싫어서 아닌 건 아니고요, 그래서 키스하게 되면 제 정신건강은 위기 상황에 들어가겠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레이.”
“네, 중위님.”
“미안하지만,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
저도 그래요. 레이는 침울하게 맞장구를 쳤다. 왜? 어째서?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 됐는지 레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 레이는 그저 키스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었다. 단지 그 말을 조금 더 재미있게, 재치 있게, 현란한 말솜씨를 뽐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어쩌다 두 사람 사이를 질투해 훼방을 놓는 처지처럼 됐는지 레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시점에서 내 포지션은 호모포비아가 나은 걸까, 질투에 먼 훼방쟁이가 나은 걸까? 나는 왜 이런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레이는 포기할 수 없었다. 레이는 그 어떤 역경과 고난에도 굴복하지 않는 해병수색대원이었으니까.
“음… 아무래도 DADT 문제도 있고요.”
“레이.”
통신병을 응시하는 소대장의 표정은 단호했다. 레이는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곧게 펴며 대답했다.
“네, 중위님.”
“자네들이 우리를 고발할 리가 없잖아.”
“그렇긴… 하죠.”
“그래.”
“그런가요?”
“그렇다니까.”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내 소대원들을 믿지 않으면 누굴 믿겠어?”
중위는 가지런한 이를 보이며 씩 웃었다. 레이는 힘없는 웃음을 보이며 쓸쓸하게 돌아섰다. 소대원들은 절망했다. 주둥이를 털어 상대의 정신을 교란시키는 재앙의 주둥이가 본론을 꺼내기도 전에 저렇게 무참하게 참패했는데 이제 그 누가 있어서 우리를 이 위기에서 구할 것인가!
중위와 콜버트가 다시 서로를 마주보았고, 소대원들의 속은 사막보다 더 바싹 타들어갔다. 그리고 그때 소대원들은 떠올렸다. 큰 힘에는 책임이 따라온다는 사실을. 그래, 지금에야말로 책임과 권한을 가진 분대장들이 분연히 일어서 대원들을 지켜야 하는 순간이 아니던가. 그래! 그래서 소대원들은 일제히 1분대 분대장을 바라보았고, 바로 표정을 구겼다. 중위가 드러낸 소유욕에 만족을 감추지 못하는 브랫, 바로 원흉이었다. 그래서 소대원들은 바로 1분대 부분대장을 응시했다. 원하는 바는 간단했다. ‘분대장이 저러면 부분대장이 말려야 하는 거 아냐?’ 그리고 부분대장은 부리부리한 눈만으로 분명히 뜻을 밝혔다. ‘너네 설마 내가 백인들 멍청이짓을 말릴 거라고 기대하는 건 아니겠지?’ 그랬다. 존재하는 모든 인종을 차별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백인을 특별한 열정으로 차별하는 포크가 백인들의 바보짓을 말릴 거라는 건 덧없고, 부질없고, 가망 없는 기대였다. 그나마 릴리의 촬영을 제지해 이 순간을 영원히 기록으로 남기지 않도록 배려한 건 포크가 중위를 지극히 경애하기 때문이었다. 1분대에서 희망을 잃은 소대원들은 이번엔 2분대를 응시했다. 파피가 부상으로 후송된 후 분대장이 된 루디의 눈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평소에도 빛났지만 유독 빛나는 저 눈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잘생기고 멋진 사람과 잘생기고 예쁜 사람이 함께 있으니 더 잘생기고 예쁘고 멋지고 아름다운 커플이네. 아름다움은 세상을 구한다. 루디가 깊은 감명을 받은 얼굴로 뉴트로지나 로션을 꺼내 얼굴에 바르는 모습을 보며 소대원들은 고개를 떨구었다. 틀렸어… 힘을 가진 놈들 중 제정신인 놈은 없어. 운명은 우리를 버렸고, 결국 콜버트와 중위가 입맞추는 꼴을 보게 될 거야. 그래서 결국 부관이 나섰다. 마이크는 온화한 웃음과 함께 네이트를 제지했다.
“사적인 일은 사적인 공간에서 하시는 게 좋습니다.”
“왜? 떡을 치자는 것도 아니잖아.”
중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반문했고, 마이크의 얼굴에 떠오른 온화한 웃음은 잠깐 흔들렸지만 다시 자리를 잡았다. 괜히 전설적인 보모, 아니 부관이 아니었다.
“친밀한 사람들의 애정표현은 아무래도 어색하니까요. 지나치게 은밀한 영역을 보는 기분이죠. 부모님 침실 사정을 알고 싶지 않다는 심정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내가 있다는 소리는 두 분께서…”
잠시 말을 멈춘 중위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리고 경악으로 눈을 크게 뜨며 소대원들을 바라보았다.
“자네들 설마 아직도 아기는 황새가 물어다 준다고 생각하는 거야?”
왜 이야기가 그쪽으로 튀는데! 소대원들은 다시 한번 영혼으로 절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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